코리안 드림, 부끄럽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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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노동절 특집]'노동자 권리'에서 소외된 외국인
기피 일자리 제공하면서도 '시혜' 착각에 빠진 한국인
임금 문제 차치하고 '안전·위생' 보장도 안돼

※4월 28일은 세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다. CBS노컷뉴스는 두 기념일을 맞아 과로, 차별, 안전사고 등으로 인해 위험천만한 우리나라의 노동 환경에 대해 분석하고 시대적 과제를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3편의 기획 기사를 준비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당신은, 당신의 가족은 '과로'로부터 안전한가요?
②코리안 드림, 부끄럽지 않습니까?
(계속)


지난해 말,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캄보디아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 속헹씨가 숨졌다.

코리안 드림을 꿈꿨던 그녀가 '집'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열악한 곳에서 생활하다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자 논란이 일었다.

외국인 노동자가 당하는 인권침해, 안전 위협에 대한 이슈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여론이 들끓은 것도 잠시뿐. 논란은 금세 잦아들었고 여전히 변한 건 없다.

이주노동자의 삶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열악할 뿐이다.

대구 성서공단의 한 외국인 노동자 숙소. 대경이주연대회의 제공

 

#1. 대구 성서공단에 근무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기숙사.

수세식 화장실에선 냄새가 진동하고, 고된 근로 뒤 몸을 뉘이는 방에는 사방의 벽지에 곰팡이가 쓸었다.

주방 조리대는 선반 곳곳에 녹이 슬어 음식을 조리할 수조차 없어 보였다.

외국인 노동자 숙소로 쓰이는 경북 김천의 한 비닐하우스. 대경이주연대회의 제공

 

#2. 경북 김천의 한 비닐하우스. 작업을 하다가 잠시 휴식하는 쉼터라면 이해가 가지만 거주지라기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곳.

비바람을 견딜 수 없을 만큼 허술해보이고 곳곳에 늘어진 전선으로 인해 위험한 사고가 날 것만 같은 장소.

매일 암흑이 찾아올 때쯤 외딴 논밭에 위치한 이곳으로 퇴근하는 여성 외국인 노동자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경북 영천의 한 외국인 노동자 숙소. 대경이주민선교센터 제공

 

#3. 경북 영천 한 공장 옆에 위치한 녹이 슨 컨테이너.

이곳은 공장에 근무하는 남성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다.

1년 넘게 여기서 거주했던 방글라데시 국적의 A(43)씨는 '너무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화장실은 컨테이너 옆 간이식뿐이었고 샤워는 온수가 나오지 않는 공장에서 찬물을 이용해야만 가능했다.

냉방 기구가 없어 더운 여름을 나는 것도 문제였지만, 겨울엔 잠을 못잘 정도로 추웠다고 한다.

컨테이너 틈새로 찬 바람이 불어 닥치기 일쑤였고 보일러나 다른 난방기구 없이 전기장판만으로 한겨울을 버텨야 했다.

올해초 대경이주연대회의가 주거 실태를 파악하면서 이들의 열악한 거주 환경이 드러났다.

참혹하게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사례가 지난해 말 경기 포천 사례에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대경이주연대회의 최선희 집행위원장은 "현재 대구, 경북에 이런 열악한 외국인 노동자 주거가 확인된 곳이 약 6-7군데다. 공개가 안되었을 뿐 훨씬 더 많이 존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런 곳에서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열악한 보금자리를 제공받고도 항의할 형편이 못 된다.

가장 큰 원인은 사업주가 숙소를 제공하는 대신 숙소비를 월급에서 원천 징수하고 있다는 점.

사업주가 최소한의 안전과 위생조차 보장하지 않는 숙소에 노동자를 머물게 하면서 한 달에 십수만원씩 숙소비를 떼어가고 있기 때문인데, 숙소비가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다른 곳으로 옮길 여유가 없는 못하는 딱한 사정이 많다.

또 자칫 사업주에게 대들었다가 임금을 못받을까 움츠러들거나, 미등록 외국인 즉 불법체류 외국인의 경우 사업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이들이 열악한 숙소에서 버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 위원장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그런 곳에 살게 하겠냐. 외국인 노동자는 못한 곳에 살아도 괜찮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곳에서 살게 한다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인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업주가 많다. 반인권적인 문화가 만연하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말, 캄보디아 출신 30대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에 사망한 것과 관련해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가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황진환 기자

 

'안전하게 주거할 권리'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이들 중에는 심지어 사업주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거나 약속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부당함을 겪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어려움 해결을 돕고 있는 대경이주민선교센터 박성민 목사는 한국 사람들이 '시혜적 태도'를 바꿔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박 목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와서 한국에서 돈을 벌어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우리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성실하게 일하고 그 기회를 찾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하는 일이 대부분 험하고 힘든 일인데, 우리나라 경제구조상 그런 일에 들어갈 근로 인력이 없다. 우리가 필요해서 그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이지 우리가 도와주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필요에 의한 고용인 만큼 아주 좋은 환경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보편적 기준에 맞게 생활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주거는 기본적인 인권에 관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 역시 올해 초, 외국인 노동자가 열악한 주거로 인해 각종 안전사고에 노출돼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대안을 내놨다.

하지만 부적절한 숙소의 경우 신규 혹은 사업장 변경 등 고용허가 신청시에만 불이익을 주도록 해 반쪽자리 해법에 그쳤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이 계획 중인 외국인 주거 실태 조사 역시 현실적으로 환경 개선을 이끌어내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청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조사가 늦춰지고 있고, 사업장이 워낙 많은 탓에 대부분 사업주가 제출하는 사진으로 조사를 갈음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의심 사업장은 현장 조사로 적발이 가능하겠지만 전반적인 상황 개선은 쉽지 않을 거란 회의적인 예상이 가능하다.

다만 속헹씨의 죽음 이후 노동당국이 조금씩이나마 움직이고 있다는 점은 한 줄기 희망적이다.

최 위원장과 박 목사는 노동당국의 감독 강화와 개선 촉구만이 답이라며, 더 적극적인 움직임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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