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기]윤여정 개인적 성취 깎아내리는 개인적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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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 연기 인생 윤여정, 한국 배우 '최초' 오스카 수상
뜬금없이 전(前) 남편 소환해 의미 흐리기…개인적 성취를 개인적 감정으로 폄하
전 남편의 불필요한 이야기 전달한 언론은 문제 없을까
지금 필요한 건 윤여정에 대한 '축하'의 말뿐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74)이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배우 윤여정의 반세기에 걸친 노력에 오스카도 화답했다. 영화계에 발 들인 후 어느새 절실함으로 바뀐 그의 연기 철학에 대한 보답이다. 그런 윤여정의 개인적 성취에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덧대어 그의 성취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미국 이민자 가족의 삶을 다룬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 순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윤여정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배우 윤여정'으로서 걸어온 50년 넘는 세월을 콧대 높은 백인들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 성과다.

'레이스'라 불리는 오스카 캠페인 내내 윤여정은 경쟁보다 각 배우의 연기와 업적을 존중하는 발언을 남겼다. 윤여정은 인터뷰에서 배우 사이 경쟁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회는 그의 개인사를 배우의 삶까지 끌어들이며 그를 경쟁에 내몰았다.

윤여정은 지난 1974년 결혼해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하다 이후 1987년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오스카 캠페인 중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윤여정은 과거 여배우에게 결혼이란 경력 단절을 의미한다는 점, 이후 이혼하게 되자 '주홍 글씨'처럼 낙인찍혀 배우 활동에 어려움을 겪은 점 등을 토로하며 "끔찍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윤여정은 "두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떤 역할이라도 맡으려 노력했다"며 "데뷔 20년 전 스타였을 때의 자존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아주 성숙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윤여정은 한국 사회가 가진 여성, 여배우, 이혼한 삶에 대한 편견과 이로 인한 부당함에 맞서며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 왔다. 부단하게 노력해 온 결과가 바로 또 다른 편견과 보수성의 유리천장을 내세운 오스카의 벽을 깨뜨린 것이다.

윤여정은 수상 직후 미국 내 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연기 철학에 관해 "연기를 좋아해야 하는 것도 있겠지만, 나는 절실해서 했다. 정말 먹고 살려고 했기 때문에 나한테는 대본이 성경 같았다. 많이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사람이기에 봉준호 감독은 "개인의 승리"라고까지 표현했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26일 오전 서울역 맞이방에서 시민들이 영화 ‘미나리’ 출연배우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 모습을 시청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그런 윤여정의 낭보가 들려오던 날에도 한편에서는 그에게 사회적 주홍 글씨를 남기게 된 사건을 만든 장본인이 윤여정 개인의 성취에 매우 개인적인 감상을 덧대어 그 의미를 퇴색시키려 했다.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전(前) 남편은 시상식 당일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일(윤여정의 수상)이 바람피우는 남자들에 대한 최고의 멋진 한 방, 복수 아니겠나"라며 망언에 가까운 실언을 했다.

이는 지금의 상황을 지극히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본 발언이자, '복수'라는 이 자잘한 감정의 단어로 개인적 성취를 폄하하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경력 단절을 겪었던 윤여정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절실함으로 연기해야 했던 그 시작점이 이혼에 있을지 몰라도, 이혼 후 온갖 차별과 편견에 맞서 온 것은 오롯이 윤여정 개인의 노력이다.

그리고 윤여정의 쾌거를 축하하는 자리에 전혀 상관없는 전 남편의 축하 메시지까지 듣고자 했던 언론은 문제가 없을까.

1개의 매체가 전 남편을 인터뷰하자 26개 매체가 이를 고스란히 옮겼다. 전 남편의 부적절한 발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26개 매체 중 21개 매체는 다시 비판의 목소리를 실었다. 수상 축하에 불필요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전달한 언론 역시 과연 적절했는지 묻고 싶다.

어디에서는 윤여정의 성취 속에 담긴 노동자로서의 삶, 워킹맘이자 싱글맘으로서의 삶, 그 안에 담긴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 영화·연예 산업의 차별과 부당 대우를 조명했다. 어디에서는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전 남편에게 소감을 물었다.

지금 필요한 건 그저 축하의 말이다. 이 이상으로 윤여정 개인의 성취를 자잘하고 불필요한 감정과 언어로 깎아내리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다시, 보기'는 CBS노컷뉴스 문화·연예 기자들이 이슈에 한 걸음 더 다가가 현상 너머 본질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발빠른 미리 보기만큼이나, 놓치고 지나친 것들을 돌아보는 일은 우리 시대의 간절한 요청입니다. '다시, 보기'에 담긴 쉼표의 가치를 잊지 않겠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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