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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韓배우 첫 오스카 윤여정 "절실하게 연기…배우로 죽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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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한국 배우 최초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아시아 배우 두 번째 기록
시상식 이후 LA 한국총영사관서 한국 기자들과 인터뷰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선택한 '미나리'…"진정성 갖춘 이야기에 매력 느껴"
절실하게 한 연기, 노력으로 일군 50년 연기 인생
재치 있는 입담 비결 묻는 말에 "오래 살았다"
"대본 외울 수 있을 때까지 일하다 죽을 것"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74)이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저는 수상한다고 생각도 안 했고, (오스카에) 8번 노미네이트 됐던 글렌 클로즈가 진심으로 타길 바랐어요. 2001년도인가 그가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쉐 역을 한 걸 봤는데, 참 대단하고 정말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나이에 할 수 없는 건데,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그가 (여우조연상을) 받길 바랐어요." _배우 윤여정, LA 기자회견 중

김기영 감독 작품 '화녀'로 영화계에 뛰어든 배우 윤여정이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로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그는 자신의 수상을 기대하지 않았다며, 앞으로도 대본을 외울 수 있을 때까지 배우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에서 할머니 순자 역으로 열연한 윤여정은 25일(현지시간)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 마리아 바칼로바, '힐빌리의 노래' 글렌 클로즈, '더 파더' 올리비아 콜맨, '맹크'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제치고 한국 배우 최초이자 유일한 아시안 후보로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특히 오스카에 8번이나 노미네이트된 글렌 클로즈를 넘어 '한국 최초' 타이틀을 달게 됐다.

윤여정은 시상식 이후 LA 한국총영사관에서 한국 기자들과 기자회견을 갖고 글렌 클로즈가 받았어야 한다며 그의 연기를 극찬했다. 수상에 대한 솔직한 소감으로 시작된 인터뷰는 윤여정의 재치 넘치면서도 솔직한 답변으로 채워졌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된 배우 윤여정이 무대 위로 올라 소감을 말하고 있다. 화면캡처

 

◇ 최고도, 경쟁도 싫은 윤여정…진심에 끌려 선택한 '미나리'

- 배우 윤여정에게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최고의 순간은 없겠죠. 난 '최고' 그런 말이 참 싫어요. 영어 잘하는 애들이 나한테 충고하더라고요. 그렇게 경쟁을 싫어한다고 말하지 말라고 그러는데, 너무 '1등' '최고' 그런 거 하지 말고 우리 다 '최중'하면 안 돼요? 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최고가 되려고 그러지 맙시다. 우리 최중만 되면서 살면 되지 않나요? 다 동등하게 살면 안 돼요? 그럼 나 또 사회주의자가 되나?"

- '미나리'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스크립트를 잘 썼죠. 제가 잘한 게 아니고 그건 대본을 잘 쓴 거예요. 할머니, 부모가 희생하는 건 전 세계 보편적인 이야기예요. 그게 사람들을 움직였을 거예요. 그리고 아이작(정이삭 감독)이 진심으로 썼으니까요."

- '미나리'를 선택할 때 대본을 다 안 읽고 선택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이유로 '미나리'에 출연을 결심하게 된 건가요?

"작품 선택 기준이 60세 넘어서 바뀌었어요. 그전에는 이걸 하면 성과가 좋겠다고 나름 계산했죠. 그런데 60세 넘어서 저 혼자 약속한 게 있어요. 난 그냥 사람을 보고, 사람이 좋으면, 그걸(대본) 갖고 온 프로듀서가 내가 믿는 사람이면 하리라 했죠. 그때부터는 제가 사치스럽게 살기로 결심했어요. 제 사치는 (끼고 있는 반지를 가리키며) 이런 게 아니고,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사치스러운 거 아닌가요.

저도 (배우를 한) 세월이 오래돼서 이제 대본을 읽으면 딱 알아요. 이게 진짜 이야기인가 아닌가. '미나리'는 굉장히 순수하고, 진지하고, 진짜 이야기였어요. 대단한 기교가 있어서 쓴 작품이 아니고 정말로 진심으로, 정말로 이야기를 썼어요. 그게 늙은 나를 건드렸어요.

그래도 또 제가 잘 안 넘어가요. 그래서 감독을 만났는데 '요새 이런 사람이 있나?' 그랬어요. 그래서 한 거예요. 그리고 나는 안목은 중요치 않은 거 같아요. 안목은 서로 다 다를 수 있거든요. 안목을 믿는다는 건 계산이 있는 건데, 난 그 사람의 진심을 믿었어요."


- '미나리'의 엔딩이 갑작스럽게 끝난다는 느낌을 받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윤여정 배우께서는 어떻게 보셨나요?

"저도 걱정했어요. MSG가 안 들어간 심심한 영화를 누가 좋아할까 했는데, 나는 엔딩 포인트를 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처음 스크립트 엔딩은 한국 할머니(순자)가 한참 뒤에 죽는 거였어요. 손자들이 양로원에 와서 화투 치는 걸 같이 해주려 하는데 그것도 못 하죠. 그리고 미나리에 관한 내레이션이 나와요. 우린 그 엔딩이 좋았어요. 그런데 아이작이 바꾸더라고요. 아이작이 그럴 때 참 현명하더라고요. 바꾼 대본을 안 보여줬어요.

그런데 선댄스에서 처음 보고 그 엔딩이 너무 좋았어요. 우리는 이런 영화를 많이 봤어요. 이탈리안 미국인으로서 성공하는 이야기, '아이리시맨'도 그렇고요. 스티븐이 극 중에서 맨날 아들한테 이야기해요. 한국 사람은 머리가 있고, 우리는 머리를 쓰는 거라고요. 그러면서 처음에는 물 찾는 사람을 안 믿어요. 안 믿다가 나중에 믿어서 물을 찾게 되죠.

그게 굉장히 유니피케이션(unification·단합, 통합)하다고 생각했어요. 서로 나누고, 내가 옳다고 주장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 내가 좋은 점(을 받아들이는 거죠). 사람이 완전할 수 없거든요. 그걸 받아들이는 게, 엔딩이 너무 좋았어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영화 '미나리' 속 배우 윤여정. 판씨네마㈜ 제공

 

◇ 열등의식에서 시작한 배우, 노력으로 '오스카'까지

- 어느덧 연기한 지도 50년째를 맞이하셨는데요. 처음 연기를 할 때와 비교해서 세월이 흐르며 달라진 연기 철학이 있을까요?

"연기 철학은요. 제 열등의식에서 시작됐을 거예요. 제가 무슨 연극 무대 출신도 아니고 연극영화과 출신도 아니고, 아르바이트하다가 했기 때문에…. 그냥 제가 제 약점을 아니까 열심히 외우는 거죠. 열심히 대사를 외워서 남한테 피해를 안 주자가 처음 시작이었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절실해야 한다는 건 알았어요. 연기를 좋아해야 하는 것도 있겠지만, 저는 절실해서 했어요. 정말 먹고 살려고 했기 때문에 저한테는 대본이 성경 같았어요. 상 탔다고 너무 이상하게 멋있게 이야기하는 거 같네.(웃음)

그냥 많이 노력했어요. 많이 노력해요. 브로드웨이 명언도 있어요. 누가 길을 물었대요. 브로드웨이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프랙티스(연습)'이라고 답했대요."


- 연기뿐 아니라 솔직하고 당당하고 재치 있는 언변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평가를 받으시는데요. 말의 비결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입담은 제가 오래 살았잖아요. 오래 살고, 제가 그냥 좋은 친구들하고 수다를 잘 떨어요. 수다에서 입담이 나왔나 보죠."(웃음)

- 오늘 수상 소감 중에 정이삭 감독과 김기영 감독을 언급하셨는데요. 정이삭 감독과 김기영 감독이 윤여정 배우의 연기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사람인가요?

"영화는 감독이에요. 감독이 굉장히 중요해요. 60세 넘어서 알았어요. 감독이 하는 역할은 정말로 많아요. 정말 영화라는 게 우리가 배웠듯이 종합 예술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울러야 하고, 그걸 할 수 있는 건 대단한 능력이고 대단한 힘이에요. 봉준호 감독 등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이 다 대단한 거예요.

김기영 감독님은 제가 20대 때 만났는데, 제가 정말 죄송한 건 제가 그분을 감사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게 60세 넘어서, 그분 돌아가시고 난 다음이에요. 그 전엔 몰랐어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사람들은 다 천재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힘들고 싫었어요. 지금까지 후회하는 일이에요.

늘 그 이야기를 해요. 늙었다고 다 아는 건 아니에요. 정이삭 감독은 나보다 너무 어린 앤데, 아들보다 어린데, 어떻게 이렇게 차분하게 컨트롤할까. 아무도 모욕 주지 않고 업신여기지 않고 다 존중하면서 해요. 친구들이 감독과 일하면서 흉 안 보는 감독은 정이삭 감독이 처음이라고 해요. 내가 (그에게서) 희망을 봤어요. 마흔세 살 먹은 감독이지만 내가 존경한다고 했어요.


김기영 감독님께 못한 거를 지금 정이삭 감독이 다 받는 거 같아요. 감사를 아는 나이가 됐어요, 내가. 지금 75세인데, 그래도 철이 안 나요."(웃음)

배우 윤여정. 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 백스테이지에서 브래드 피트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브래드 피트가 '미나리' 제작자예요. 다음에 영화 만들 때 돈 좀 더 써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주 잘 빠져나갔어요. 조금 더 쓰겠다고 그러더라고요. 크게 쓰겠다고는 안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브래드 피트는 유명한 배우니까 한국에 한번 오라고 했어요. 나도 좋아하고, 여러 사람이 좋아한다고요. 한국에 오라고, 팬 많다고 그랬더니 온다고 하더라고요. 꼭 올 거라고 그래서 내가 꼭 오라고 그랬어요. 약속한다고 그랬어요."


- 이번을 계기로 해외에서 영화 하자고 러브콜이 온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저는 영어 못해서 해외에서 들어올 일 없어요."(웃음)

- 한국에 계신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상 타서 보답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영화 찍으면서 아무 계획한 것도 없고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 온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응원하니 눈 실핏줄이 다 터졌어요. 너무 힘들어서. 그 사람들은 성원인데 (내가 상을) 못 받으면 어떡하나가 됐죠.

받을 생각도 없었고 노미네이트 된 것만도 영광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러니까 너무 힘들어서 운동선수 심정을 알겠더라고요. 2002년 월드컵 할 때 그 사람들(축구 선수들) 발 하나로 온 국민이 집중하니 걔네는 얼마나 정신이 없었을까, 김연아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운동선수가 된 기분이었어요. 세상에 나서 처음 받는 스트레스였어요. 별로 즐겁지 않았어요.

우리는 그냥 즐겁게 보내려 했어요. 세상에 우리가 오스카까지 가는구나. 구경이나 해보자. 나는 오늘도 예리(한예리)랑 구경했어요."


- 앞으로 배우 윤여정의 계획, 인간 윤여정으로서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앞으로 계획? 없죠. 저 그냥 살던 대로…. 제가 오스카 탔다고 해서 윤여정이 김여정 되는 거 아니잖아요. 옛날부터 결심한 게 있어요. 대사 외우는 게 늙으니 힘들어요. 남한테 민폐 끼치는 거 싫으니까 민폐가 되지 않을 때까지 이 일 하다가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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