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덕질'이라지만 어느덧 제도권 정치에 주요한 변수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 자칭 '문파(文派)' 얘기다. CBS노컷뉴스는 수백통 문자폭탄에 가려져 있던 이들의 실체를 본격 파헤친다. [편집자 주]
그래픽=김성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열성지지자(문파)들에게 인터넷 카페와 커뮤니티 게시판은 산소와 같은 공간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하루종일 문 대통령과 관련한 뉴스를 접하고, 그에게 해가 될 법한 이슈라고 판단하면 단체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독려하는 것도, 거슬리는 발언을 한 국회의원 연락처와 문자메시지 샘플을 공유하는 것도 모두 온라인에서 이뤄진다.
◇'나도 보냈다' 릴레이…문자폭탄 '답장'까지 공유
문파는 주로 다음(Daum)에 있는 문 대통령 팬 카페나, '클리앙'과 같은 친문(親문재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뉴스를 접하고 의견을 공유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상 교류도 활발하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의원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2030의원 입장문' 발표에 앞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문자폭탄'과 같은 집단행동이 펼쳐지는 건 최근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조국 반성문 발표'와 같이 문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이슈가 터졌을 때다.
여러 카페와 커뮤니티 등을 살펴본 결과, 문파들은 게시판에 관련 뉴스와 함께 자신의 분석이 담긴 의견을 올리면서, 문제를 야기한 의원들에게 항의성 문자메시지를 보내자고 권유하고 있었다.
자신이 의원에게 직접 보낸 문자를 예시로 올려두는 경우도 많았다. 공격 대상 '좌표'를 찍고 지원군 참전을 요청한 셈이다.
최근 재·보궐선거 이후 문자행동에 적극 나섰다는 한 40대 지지자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자 보내는 방식은 각양각색"이라며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집중 포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 같은 경우는 4~50명 리스트를 만들어 단체로 보낸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 180명의 연락처는 이미 카페나 커뮤니티에 나돈 지 오래다. 자칫 잘못된 번호로 '오폭'이 될까 싶어, 댓글을 통해 친절히 번호를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게시판 곳곳에는 의원들로부터 실제 받았다는 답장 메시지를 캡처한 사진도 눈에 띄었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후원계좌 '폭탄입금'까지…진화하는 문자폭탄최근에는 문자폭탄 등 온라인 행동에서 나아가 오프라인 항의로 이어지는 모습도 나타난다.
의원들이 몇몇 전화번호에 '수신차단'을 걸면서 이제 문자폭탄만으로는 압력을 주기 어려워지자 이들의 의사 전달 방식에도 변화가 생긴 것.
카페 게시판에서는 삼삼오오 국회의원 지역구 사무실 방문 일정을 잡는 지지자들의 움직임을 심심찮게 엿볼 수 있다.
후원계좌에 욕설을 의미하는 '18원'씩을 입금한 후 환불을 요청해 의원을 괴롭히는, 과거 유행했던 방식도 여전히 이뤄지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는 마지막 세대'를 자처한 또 다른 40대 지지자는 인터뷰에서 "의원들이 문자폭탄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는 뉴스를 보면 '우리를 신경은 쓰고 있구나'를 알 수 있고, 또 나 혼자만 이런 미친 짓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느낀다"고 설명했다.
한편, 선배 격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인터넷 카페와 병행했던 '지역 조직' 중심의 오프라인 모임은 점차 흐려지는 추세다.
노사모 출신 김기문(57)씨는 최근 취재진과 만나 "20년이나 지났으니 지지 방식도 바뀌지 않았겠느냐"며 "그나마 문팬이 노사모 활동과 비슷하게 온·오프라인을 겸비했지만 이제는 모임도 다양해졌다"고 전했다.
◇'지령 받았다?'…문파 "철저히 개인 판단 따른 것"상·하부 조직이 뚜렷한 과거 방식과 달리, 문파는 온라인 중심의 '흩어진 형태'로 커뮤니티를 구성한 터라 스펙트럼이 넓은 반면, 구심점은 비교적 크지 않다는 특징을 보인다.
일각에선 소수 지령을 통해 단일대오로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오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판단에 따라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는 항변이 뒤따르는 이유다.
한 열성 지지자는 어떤 포식자 앞에서도 기죽질 않아 지구상 가장 용감한 동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오소리'를 문파에 빗대 "우리는 이니(문 대통령) 말도 안 듣는 문꿀오소리"리고 밝혔다.
인터넷상에서 일부의 선동이 있을 순 있지만,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몫임을 강조한 것이다.
김기문씨 역시 "개인이 모이니까 단체로 보이는 것일 뿐, 철저하게 개별 행동"이라며 "실체가 없다. 그냥 좋아서 하는 거다. 그래서 막을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또 일부 강성당원이 특정 기계를 이용해 문자폭탄을 돌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실체는 없다.
최근 문파들로부터 문자폭탄 세례를 받은 한 초선 의원 측 관계자는 "문자폭탄 내용은 서로 비슷하지만 표현 등은 조금씩 다 달라 기계로 돌리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