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현대판 '레 미제라블'이 세상에 던지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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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레 미제라블'(감독 레쥬 리)

외화 '레 미제라블'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차별과 불신, 증오와 분노가 넘치는 사회에서 차분하면서도 강렬하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하는 것만큼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없다. 레쥬 리 감독은 영화 '레 미제라블'을 통해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잃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우리가 외면했던 현실의 구석진 곳을 비춘다. 그는 사회를 향한 경고와 동시에 세상을 바꿀 여지가 아직 남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방에서 전근 온 경감 스테판(다미엔 보나드)은 크리스(알렉시스 마넨티), 그와다(제브릴 종가)와 같은 순찰팀에 배정받는다. 몽페르메유는 빅토리 위고가 소설 '레 미제라블'을 집필한 지 2세기가 흘렀음에도 여전히 증오와 불신이 난무한다. 그곳에서 스테판은 같은 팀 강력반 경찰들의 폭력에 충격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서커스단 아기 사자 도난사건이 발생하고 소년 이사(이사 페리카)가 여기에 얽히면서 사건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어쩌면 이미 예견된 것인지도 모를 방향으로 말이다.

외화 '레 미제라블'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레 미제라블'은 2018년 프랑스가 월드컵 결승전에서 우승하던 날을 시작점으로 잡는다. 소년 이사와 친구들은 프랑스 국기 트리컬러를 두르고 개선문이 보이는 프랑스 시내로 뛰어나온다. 자유와 평등, 박애의 상징인 프랑스 국기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는 속에 이사도 한 부분을 이룬다. 그곳에는 인종이나 계층, 이민자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프랑스'의 승리에 프랑스라는 이름으로 묶인 모두가 그저 기뻐할 뿐이다.

이 의미심장한 오프닝 이후 이사와 소년들, 그리고 주요 인물들 모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바로 인종, 계층, 출신지가 나뉜 채 살아가는 원래의 일상 말이다.

영화는 몽페르메유로 온 경찰 스테판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스테판이 팀원들을 따라가는 곳엔 프랑스조차 제대로 들여 보지 않았던 교외 지역의 현실이 펼쳐진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 몽페르메유에는 온갖 나라에서 온 이민자와 경제 빈곤층이 한데 어우러져 살고 있다. 차별과 빈곤, 억압과 분노가 뒤엉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곳이다.

잠재돼 있던 분노라는 뇌관을 터트리는 중심 인물은 소년 이사다. 서커스단 아기 사자 도난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몽페르메유의 인물을 의심하게 되고, 마침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온 사진 한 장으로 이사를 범인으로 확정 짓는다. 그는 이미 문제아로 낙인찍혔고, 당장 경찰서에서도 마주한 인물이다. 이사에게 중요한 건 앞뒤 문맥이나 경위가 아니라 사자를 들고 있었다는 사실이고, 그것을 경찰이 목격했다는 것이다.

이사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쏘아진 고무탄이 그의 얼굴을 맞게 되고, 이를 몽페르메유의 또 다른 소년이자 영화의 또 다른 목격자 뷔즈가 드론 영상으로 담아낸다. 경찰은 고무탄을 맞은 이사의 상태보다 당장 자신들의 경력을 위태롭게 만들 드론을 쫒게 된다. 그리고 이사에게는 거짓 진술을 강요한다.

외화 '레 미제라블'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내내 보였던 경찰과 몽페르메유 이민자 사이 충돌과 불신은 결국 이사를 통해 밖으로 표출된다. 이사는 다른 아이들과 반란을 꾀하고, 스테판과 그의 일행은 분노의 표적이 되어 공격당한다.

마지막까지도 이사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를 표현하는 것은 그저 주변인의 평가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다. 공격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기 전까지 우리는 이사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다. 그전까지 그는 약자에 머물러 있을 뿐이고, 우리 사회는 약자의 말에는 그다지 귀기울이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삶이 위협과 마주했을 때조차 말을 꺼내기 쉽지 않다. 억압과 공포가 여전히 약자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과정에 오기까지 함부로 이쪽과 저쪽, 선과 악을 가르지 않는다. 모두 각자 자리에서 각자만의 이유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경찰들 역시 각자 집에서는 몽페르메유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 집안의 일원임을 보여준다.

어느 한쪽만을 편들기에는 다층적이고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고, 이는 단순히 어느 한 쪽이 옳다고 결론지을 수 없는 문제다. 그렇기에 감독도 몽페르메유의 아이들과 경찰들 사이에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외화 '레 미제라블'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이러한 감독의 시선은 결국 왜 모두가 이처럼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느냐는 질문을 관객 스스로 던져보고 찾아보도록 만든다. 왜 우리는 이사의 말에 한 번도 귀 기울이지 않고 그를 극단으로 몰았는지, 왜 경찰들은 그렇게까지 폭력적인 모습으로 변해야 했는지, 왜 이사와 몽페르메유의 소년들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었는지 등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의 끝에는 2세기가 넘도록 변하지 않은 사회와 정치에 대한 비판, 그리고 몽페르메유에서 끊임없이 들려왔던 외침을 외면할 경우 어떤 결말에 이를지에 관해 지금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강렬하게 경고한다. 영화 속 이사와 소년들이 표출한 분노의 행방이 명확히 나오지 않은 것은, 어쩌면 어떤 결말로 갈 것이냐는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오프닝에서 보였던 자유와 평등, 박애의 물결이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더욱 의미심장하고 두렵게 다가온다. 진정으로 프랑스 국민들을 트리컬러 아래 모이게 하기 위해 필요한 건 일시적인 기쁨에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분노와 침묵을 강요당한 이들의 소리 없는 외침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레쥬 리 감독은 제72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으며 "이 영화를 세상의 모든 '미제라블(불쌍한, 비참한 사람들)'에게 바친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세상의 모든 이가 새겨들어야 할 한 마디다.

102분 상영, 4월 15일 개봉, 15세 관람가.
외화 '레 미제라블' 포스터. ㈜영화사 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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