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김종대의 뉴스업=""> FM 98.1 (18:25~20:00)
■ 진행 : 김종대 (연세대 객원교수)
■ 대담 :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
김민하 평론가 (뉴스 빙하),김수민 평론가 (뉴스 화산),임경빈 작가 (퀵마우스)
◇ 김종대> 4월 7일. 보궐선거 특집으로 매주 후보로 보는 한국현대사 시간 마련해 드렸죠. 오늘도 이어서 특별한 시간을 위해 세 분 자리하셨습니다.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 안녕하세요.
◆ 박원석> 안녕하세요.
◇ 김종대> 반갑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김민하, 뉴스화산 김수민 두 시사평론가 나오셨습니다. 지난주까지 오세훈, 박영선, 안철수 후보까지 여야의 유력 후보들을 모두 분석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좀 더 범위를 확장해서 후보 주변 인물까지 넓혀가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뉴스 빙하가 소개해 주시죠.
◆ 김수민> 국회의원을 5번이나 했는데 전부 다 비례대표로 한 기록의 소유자 그리고 한편에서는 직업적 비대위원장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의 어느 국면의 어디서든 존재감을 드러내고 나타난 한국의 포레스트 검프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 김종대> 한국의 포레스트 검프라고 소개해 주셨어요. 참 특이한 인물 아닙니까?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정치 이력을 살펴보려면 물경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퀵마우스 임경빈 작가가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정치 이력의 간추려 봤습니다.
◆ 임경빈> 모두의 이력서는 역사가 된다. 정치인의 김종인 위원장의 정치 약사. 1940년생 올해 우리 나이로 82세에 여전한 현역 정당 대표입니다. 1970년대 이후 꾸준히 활동을 하면서 중요한 역사적 현장에 불쑥불쑥 등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포레스트 검프라고 불리는데요. 늘 권력 중심부 주위를 배회했다는 평가와 필요할 때 필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엇갈립니다. 정치 인생 전반부는 대통령들의 경제 교사 시절입니다. 1970년대에는 독일 유학 경험을 살려 의료보험과 부가세 도입의 역할을 했고 1980년에는 전두환의 국보위에 참여했다가 민정당 전국구 의원에 당선됩니다. 이후 40년 넘는 정치 인생 동안 지역구 당선 단 한 번 없이 오직 비례대표로만 5선을 지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면서 전두환노태우의 민정당, 김영삼의 민자당, 김대중의 새천년민주당, 문재인의 더불어민주당에서 모두 국회의원을 지낸 그야말로 진보, 보수 구분 없는 정치인입니다. 1987년 헌법 개정 때는 경제분과위원장으로 참여 헌법 제119조 2항 일명 경제민주화 조항을 설계했다고 하죠. 이후 1989년 노태우 정권 때는 지금의 보건복지부인 보사부 장관에 임명됐는데 라면 업계의 판도를 바꾼 일명 공업용 우지 파동이 이때 일어났습니다. 당시 주무장관으로 비식용 쇠기름의 사용이 인체에 해를 끼치는 건 아니다 이런 조사 결과를 직접 발표하기도 했죠. 이후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내면서 재벌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강제 매각하는 일명 5. 8 조치를 단행했고 부동산 개발이익환수제 같은 토지공개념을 적극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민정부로 정권이 바뀐 1993년, 김종인은 동아은행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구속, 한동안 정치 일선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 김종대>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정치이력 전반부를 지금 살펴본 거예요. 퀵마가 여의도 포레스트 검프라고 또 한 번 강조해 주시는데 우리 세 분은 김종인 위원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한 줄 평을 듣고 싶습니다. 먼저 박원석 전 의원님.
◆ 박원석> 사실 한마디로 평가하기 굉장히 어려운 복잡한 인물입니다. 이분이 정책 전문가이면서 또 선거 전문가이기도 하고 정치 인생 초반부에는 참모형 정치인으로 시작을 했지만 뒤에 가서는 대표적인 대한민국 정치의 책략가 이런 역할로 불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굳이 한마디로 규정을 하자면, 한국 정치에서 참 찾아보기 드문 용병책사다.
◇ 김종대> 용병책사?
◆ 박원석> 이게 용병이다 보니까 끝이 늘 안 좋아요. 그래서 이분이 권력을 만드는 탁월한 기술과 감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과 한 번도 제대로 화합해 본 적이 없어요. 늘 불화가 생겨서 떠나고. 그러나 그 권력에 대한 의지는 굉장히 높으시기 때문에 완전히 떠나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권력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일종의 용병이죠.
◇ 김종대> 들으면 들을수록 더 정체가 더 헷갈려요. 이게 안 해본게 없고 폭이 워낙 넓어서 딱 규정이 힘든 것 같아요. 거의 용병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해요. 어떻게 보십니까?
◆ 김수민> 저는 리틀 김병로 이렇게 부르고 싶은데. 초대 대법원장을 했던 가인 김병로의 손자이죠. 그리고 할아버지를 통해서 정치를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1960년대 야권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만들었던 당 이름 중 하나가 '국민의당'이었어요, 하필이면. 그러면서 이제 야권 통합운동도 하고 그랬는데 당시에는 집에 사람들이 찾아가서 식사도 같이 하고 회의도 같이 하는 이런 문화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때 이제 김종인 위원장 같은 경우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있었던 비서에 가까운 위치였단 말이죠.
◇ 김종대> 그러면 영향을 받았겠네요.
◆ 김수민> 그렇습니다. 그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이고 그리고 기질적으로 닮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김병로 원장 같은 경우도 정치를 하면서 지역구에서 가서 인사하고 이런 것들을 잘 못했다고 합니다. 뻣뻣했다 라는 건데 김종인 위원장도 지역구에서는 한 번도 당선이 된 적이 없죠. 1988년 총선 때 이해찬.
◇ 김종대> 한 번 딱 출마했는데.
◆ 김수민> 당시 후보한테 밀려서 떨어졌고 나머지는 다 비례대표 전국구로 정치를 했었습니다.
◇ 김종대>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도 이승만 대통령한테 좀 밉보이지 않았습니까?
◆ 김수민> 굉장히 불화했었고.
◇ 김종대> 할아버지도 대통령한테 밉보이고. 지금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역대 대통령 하고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아요.
◆ 김수민> 그래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 대통령들을 보좌해서 하기는 했었죠.
◇ 김종대> 빙하는 왜 말이 없어요?
◆ 김민하> 다들 좋은 얘기만 하니까 그래서요. 약간 그래도 안 좋은 얘기도 하고 그래야겠죠. 김종인 비대위원장 보면 철새도 오래 하면 사람들이 알아준다 이런 생각도 드는데, 사실은 긴 기간 동안 정치를 해 왔고 그다음에 여러 가지 통치에 개입을 해 왔는데, 당적이나 이렇게 좀 이런 걸 기준으로 보면 왔다갔다 하지 않았습니까? 앞에 민정당에도 있었다고 하고 뒤에 보면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시절도 있었고 그다음에 또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의 비대위원장도 하고 또 이제 국민의힘의 비대위원장도 하고 있는데, 이렇게 긴 기간 동안 여러 정치세력을 옮겨다니면서 그리고 대권주자들을 옮겨다니면서 이렇게 오랜 기간 살아남은 것도 자기의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죠. 그런데 그 능력의 중심에는 자기 중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기 주장이 명확하고 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다른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을 활용하는 그런 모습을 계속 보여주다 보니까 이렇게 오랫동안 세력을 옮겨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책사형 정치인들 중에 가장 오래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목소리를 남기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분하고 겨룰 만한 정도의 고연령대 책사형 정치인 윤여준 전 장관 정도로 꼽을 수 있는데, 요즘에 이분만큼 활약하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그것만큼은 정말 대단한 점이다 싶습니다.
◇ 김종대> 말씀 듣다 보니까 김종인 위원장이 이 당, 저 당을 옮겨다닌 게 아니라 이 당,저 당이 김종인 위원장한테 왔다갔다 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1981년 11대 국회의원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실 그 전부터 정치에 발을 들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련 내용 한번 들어보시죠.
◆ 김종인> 의료보험 제도를 만든 당사자로서 또 지난 89년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앉아 보훈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한 사람으로서 이번 보건 위기를 보는 감회가 특별합니다.
◇ 김종대> 최근에 코로나 위기, 이 보건위기를 비판하면서 나온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발언 중에 77년 의료보험제도를 만든 당사자다 이런 주장이 나오네요.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
◆ 박원석> 우리나라 의료보험 도입 역사를 잠깐 짧게 설명을 해 드려야 될 것 같은데요. 의료보험법이 처음 생긴 건 1963년이고 64년도부터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을 했는데, 당시에는 임의가입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가입률이 한 자릿수였었죠. 77년에 거의 박정희 정권이 말기로 가면서 이게 사회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 됐고, 무엇보다 그때 막 경제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대기업 노동자들 노동계층이 형성이 됐는데 이들이 굉장히 저임금 상태였어요. 그걸 방치해서는 정권을 유지하기 힘들다. 또 당시에 박정희 정권의 주요 지지 기반이었던 공무원, 군인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의료보험제도를 확대해서 도입을 했는데, 당시 의료보험제도는 굉장히 특권적인 제도였습니다. 아무나 가입할 수 없는 제도. 그래서 일설에 의하면 의료보험증을 맡기고 술도 먹고 그랬다고 그래요. 그런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했던 거죠, 77년도에. 그런데 이렇게 절반만의 의료보험제도가 전 국민 의료보험으로 확대된 건 89년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김종인 위원장이 77년도 이 제도를 도입할 때는 평가 교수단의 단원으로서 거기에 개입을 했고, 89년도에는 보건사회부 장관, 지금은 보건복지부 장관이죠. 전 국민 도입을 확대했던 그 역사적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김종대> 그럼 본인이 주인공인 건 맞네요.
◆ 박원석> 그렇게 스스로 평가해도 크게 틀린 사실은 아닌 것 같습니다.
◆ 김민하> 다만 조금 첨언을 하자면 엄혹하던 시절 아닙니까, 77년 이런 때. 김종인 비대위원장 혼자 이런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관철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권력의 의지가 같이 작용하면서부터 시작이 된 사건이기 때문에 77년도부터의 일을 다 본인이 주도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평가다 이런 생각도 한편 드는데요.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89년도에 장관 입장에서 정책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탠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어쨌든 전 국민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의 확대 이런 데서는 공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거죠.
◇ 김종대> 지금 청취자 질문이 들어왔는데 빙하한테 꼭 물어보래요. 아까 김종인 위원장의 목소리에 라면은 안전하다. 과거 보사부 장관 때 목소리 들리는데 그건 무슨 내용이냐고 그러는데 짧게 설명 좀 해 보세요.
◆ 김민하> 라면은 저도 즐겨 먹는데요. 그 당시에 우지 파동이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라면을 만드는데 소기름을 쓰는데 공업용 우지를 쓰고 있다 이런 논란이 일고.
◇ 김종대> 공업용 기름.
◆ 김민하> 그렇죠. 그래서 그거 때문에 라면을 안 먹기도 하고. 저도 어렸을 때 그런 이제 문제가 무서워서 라면을 먹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결과적으로 그것은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 거죠. 뉴스 화산님도 라면 많이 먹지 않았어요?
◆ 김수민> 그랬었죠. 그리고 이 파동 때문에 한동안 묫 먹었었습니다. 기억이 나요.
◇ 김종대> 군대에도 라면이 못 들어가서 난리 났었어요, 그때. 기억이 납니다. 워낙 큰 사건이었는데 조사해 보니까 그 정도는 아니더라 이런 얘기입니다. 본격적인 정계 입문 이야기하기 전에 또 청취자. 오늘 질문 많이 주시네. 왜 김종인 위원장이 포레스트 검프냐. 화산, 왜 그런 표현 쓴 거죠?
◆ 김수민> 이따가 계속해서 이야기해 드리겠지만 별의별 사건에 다 등장을 합니다. 정부에서 했던 일을 한 사람이 여러 사건에 관여되고 이런 것들이 좀 드물잖아요,각자 분야가 있기 때문에. 예를 들면 김종인 위원장 같은 경우는 제6공화국 초반에 노태우 정부로 국한을 해서 보더라도 아까 말씀드렸던 라면 우지 파동에도 등장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북방외교에도 등장을 해요.
◇ 김종대> 북방외교.
◆ 김수민> 소련, 중국 하고 수교를 맺지 않았습니까? 거기서도 등장을 하고. 그리고 재벌 관련한 논란에도 등장을 하고.
◇ 김종대> 또 등장하고, 안 끼는 데가 없네.
◆ 김수민> 그렇습니다.
◆ 김민하>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가 기억을 하실지 모르겠지만 톰 행크스라는 배우가 나와서 뭔가를 그 배우가 열심히 하는데 그 열심히 한 결과로 세계사의 주요 장면에 자꾸 등장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2차 대전에도 나가고.
◇ 김종대> 저기서 또 나와. 여기서도 나와.
◆ 김민하> 냉전 종식에도 역할을 하고 무슨 온갖 장면에 나오는데, 그걸 빗대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김수민> 아까 의료보험 얘기했었는데 부가가치세에서도 등장을 합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처음에 박정희 정부 때 할 때는 반대를 했는데 전두환 정권 들어오면서 없애려고 하는 걸 자기가 또 반대했다. 그냥 이건 정착을 하도록 놔둬라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는 거죠.
◆ 김민하> 그게 회고록에 보면, 처음에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부가가치세 반대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 자기가 반대한 의도는 부가가치세 자체에 반대했다기보다는 한국에서 논의되고 도입되는 방식이 졸속으로 진행이 돼서, 그것을 반대한 것이다라고 설명을 하거든요. 그런데 이제 부가가치세 도입에 엄청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분 중에는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있어요. 지금은 이제 좀 안 좋게 돼 있는 상황인 것 같은데. 그런데 이분 같은 경우에 김종인 비대위원장 회고록에 보면 이름은 써놓지 않았는데 이분이 아주 졸속으로 도입하는 데 역할을 해서 자기는 그때부터 안 좋게 생각했다고 이름도 안 써놓고 그렇게 비난을 해 놨습니다.
◇ 김종대> 그래요? 왜 또 그렇게 싸우십니까. 다 같이 해 놓고.
◆ 김민하> 뒤끝이 대단한 분이에요, 이분이.
◆ 김수민> 김종인 위원장 회고록을 보면 이름을 적지 않고 비판하는 사례가 굉장히 많습니다. 사실 그런데 가만히 읽어보면 다 알 수 있는 정주영 회장이라든지 이런 인물들을 비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 김종대> 그런데 시작이 이게 국보위에서 정치를 시작했단 말입니다. 국보위 하면 다 아실 겁니다. 1980년에 신군부가 만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거기에 전두환 대통령이 아주 권력자로 등장하지 않습니까? 왜 하필이면 이렇게 시작하셨나.
◆ 박원석> 이게 김종인 위원장의 정치 이력의 일종의 어두운 그늘 중 하나죠. 간간이 그걸로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본인의 회고록에 나온 얘기나 본인의 항변에 따르면 당시 국보위에서 부가가치세를 폐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자기가 어쨌든 학자로서 그걸 막기 위해서 거기에 참여해서 적극적인 정책 의견을 냈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그러나 지금 와서 그다지 자랑스러운 과거는 아니다 이런 식으로 다소는 우회적으로 비켜가는 면이 있는데요. 그 당시에 사실은 국보위에 참여한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분뿐만 아니라. 때문에 그것만 가지고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정치 이력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또 그와 정반대의 이력도 있거든요. 그러나 어쨌든 본인이 개인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흑역사인 거는 분명하죠.
◇ 김종대> 그래요. 쭉쭉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김종인 비대위원장 하면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경제민주화예요. 사실 어떤 하나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왜 경제민주화 하면 김종인, 이렇게 됐을까요? 어떤 이유에서?
김민하 시사평론가.
◆ 김민하> 87년 헌법을 만들 때 이른바 119조 2항에 보면 거기에 경제민주화 관련 표현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119조를 보면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기본으로 한다 이렇게 돼 있는데, 2항에 보면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해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즉 경제민주화를 국가권력에 의해서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그걸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조항이 나와 있거든요.
◇ 김종대> 그러니까 이 조항을 만드신 분이 김종인 위원장이에요?
◆ 김민하> 지금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이 조항이 필요하다고 주장을 해서 관철을 한 것이다라고 계속해서 주장을 해 왔고 그런 것으로 확인이 돼서, 지금도 경제민주화 하면 김종인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 김종대> 그렇군요. 이런 건 우리가 기념비적으로 봐야 될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김종인 위원장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 경제 모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지금 여러 정당들 많이 이야기하고 있고 한때 시대정신이라고 했어요. 김종인표 경제민주화, 이거 뭡니까?
◆ 박원석> 이분이 독일에서 경제학을 공부를 하시고 서강대에서 교수로서 학자로서 인생을 살았는데. 시장 경제를 받아들이되 그로 인해서 발생할 수 있는 현저한 불평등이라든지 또 경제의 불균형 이런 것은 국가가 개입해서 적극적으로 조정해야 된다.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독일의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을 보고 와서 이분이 주장했던 건강보험제도라든지 의료보험제도라든지 또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국가가 강제적으로 매각하게 한 조치라든지.
◇ 김종대>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죠?
◆ 박원석> 그렇죠. 그리고 토지공개념에 대해서는 증언이 엇갈립니다. 본인은 사실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개념은 경제학적으로 없다고 얘기를 하고 있는 데 반해서 일각에서는 토지공개념이라는 정책을 도입하는 데도 김종인 위원장이 일정한 역할을 했다 이런 등등의 이분의 정책 노선이죠, 일종의. 정책 경향에 대한 평가로 봤을 때,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모델로 한 경제민주화를 대한민국에서 좀 제도적으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그런 열망을 가졌던 걸로 보입니다.
◇ 김종대> 저는 더불어민주당의 비대위원장으로 김종인 의원장이 있을 때 국회 대표연설에서 아주 재벌 공격하는 거 보고, 아주 그때는 재벌이라는 말을 안 하고 거대 경제 세력이라고 해서 아주 날선 비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런 정치인이 다 있구나 하고 굉장히 놀란 적이 있습니다. 독일의 영향을 받았군요.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요직을 도맡아서 그때 경제수석이었습니다. 거기서 5. 8조치. 이거 참 그때 파격적 조치 아니었습니까?
1991년 노태우 대통령과 김종인 경제수석(왼쪽 사진) 1990년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김종인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오른쪽 사진) 연합뉴스.
◆ 김수민> 그때 한국 경제가 한참 성장을 할 상황에 있었는데 재벌이 재산들이 상당히 부동산 쪽으로 가 있었던 거죠. 이걸 놔두면 여러 가지 산업경쟁력에도 도움이 안 되고 또 부동산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판단을 하고 이것을 매각토록하기 위해서 조치를 취한 건데. 어떻게 보면 정책적으로 정교하다기보다는 힘과 힘의 대결이었다라고 볼 수 있겠고, 이때 이제 김종인 위원장 특유의 어떤 뭐라고 해야 될까요. 강단이라고 해야 될지 그런 것들이 발휘가 돼서 정책이 시행이 된 것이죠. 사실 아까 토지공개념 얘기가 나왔는데 김종인 위원장 회고록에 보면 자신은 토지공개념에 반대한다, 말도 안 되는 개념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거 같은 경우에는 토지공개념까지 갈 것 없이 재벌들이 이렇게 부동산 소유하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이걸 놔두면 안 된다 이렇게 조금 더.
◆ 김민하> 그때 상황을 조금 부연하자면 제가 봤을 때 그때 부동산 시장이 굉장히 불안하고 가격이 엄청나게 오르던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동산을 남쪽에서 막지 않으면 북쪽에서 터져내려올 것이다, 이러한 논리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을 해야 된다, 이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시장주의로 사실은 분류되던 사람들까지도, 다 이거 부동산 문제는 해결해야 된다, 즉 토지공개념 도입까지도 고려해야 된다, 그게 조순 경제부총리라든지 이런 분들의 주장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김종인 경제수석은 그럴 거 뭐 있냐. 지금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상당수는 재벌들인데 비업무용 부동산을 다 매각하도록 강제해서 이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가 있다. 실제로 청와대에 다 불러서 각 재벌기업에 예를 들면 기조실장 정도 되는 사람들 다 불러서 비업무용은 다 팔아라 이렇게 강제를 했는데.
◇ 김종대> 그래서 얼마나 실제 팔았습니까?
◆ 김민하> 실제로 팔다가 말다가 한. . . 판 것도 있고 안 판 것도 있는데 끝까지 고집을 가장 강하게 세운 것이 아마도 현대그룹으로 알려져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현대그룹이 가장 억울하다는 입장을 피력을 하면서 나중에 대선 출마까지 가는 그런 징검다리가 된 사건이다 이런 평가도 있는 것 같습니다.
◇ 김종대> 그때 정주영 회장이 이제 안 되겠다, 더럽고 아니꼬와서 나도 나가야 되겠다 이랬다는 거죠?
◆ 김수민> 자다가 일어나서 김종인 위원장을 욕했다 이런 설도 있고. 그런데 두 사람의 악연이 이것뿐만이 아닌 게 김종인 위원장 같은 경우 독일 유학 역량 이런 것들이 있어서 노조를 기업별 노조가 아니라 산별 노조로 가야 된다.
◇ 김종대> 그때 당시에 노동조합 주장인데.
◆ 김수민> 그래서 1970년대, 19780년대 김종인 위원장이 그런 주장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김종인 위원장 회고록에는 익명으로 나오지만 , 정주영 회장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우리 회사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라고 했다고 하고 거기에 대해서 김종인 위원장이 뒤끝을 발휘해서 그 회사 어떻게 됐냐, 가장 귀족 노조가 생겼다 이런 식으로 비아냥대는 대목도 나옵니다.
◆ 김민하> 부동산 문제는 박원석 의원님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
◆ 박원석> 사실은 지금도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노태우 정부를 돌아보면 김종인 위원장의 역할을 떠나서 굉장히 대단한 개혁조치들을 했어요, 특히 부동산과 관련해서는. 당시에 아파트 200만 호 공급도 그렇고 그리고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도 그랬고 그리고 토지공개념 3법이라고 얘기하는 택지소유상한제나 개발이익환수제나 또 토지추가이득세나 물론 나중에.
◇ 김종대> 거의 뭐 정의당에서 주장할 법한.
◆ 박원석> 일부 위헌 결정을 받아서 지금 개발이익상환제만 부분적으로 남아있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87년 민주항쟁 이후에 당시까지 권력을 유지했던 방식으로 권력을 운영해서는 더 이상 이런 국민들의 불만과 사회, 경제적 불균형과 불평등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해서 과감한 조치를 취했던 거죠. 그 과정의 한 장면에 김종인 위원장이 있었던 거죠.
◇ 김종대> 아까 그 얘기할 때 화산은 혁명이라는 얘기까지 했어요. 북이 내려오기 전에 여기서 먼저 혁명이 일어났다. 참 그 정도로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어떤 부동산 투기 열풍과 그로 인한 위기감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는 이분이 어땠는가. 아까 말씀 중에 지역구에 한 번 나가기는 나갔다는 거예요. 그래서 떨어진 게 88년 13대 총선이다 이겁니다. 이때 상대가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네요.
◆ 김민하> 그렇습니다. 이 두 사람의 악연이 88년 제13대 총선부터 시작이 됐다 이 얘기를 많이 보도도 하고 그랬는데요.
◇ 김종대> 지금 유튜브에 그때 선거 포스터 나가고 있습니다. 기호 1 김종인, 기호 3 이해찬.
1988년 13대 총선 서울 관악을 포스터.
◆ 김민하> 포스터를 보니까 김종인 위원장이 질 만해요. (웃음) 당시 이해찬 전 대표는 상당히 패기 있는 이러한 모습으로 재야의 양심 이렇게 돼 있는데.
◇ 김종대> 그런데 무명이었잖아요.
◆ 김민하> 김종인 위원장은 설명이 깁니다. 참된 마음 바른 행동, 이렇게 재미없는 슬로건과 재미없는 표정인데. 이때 결국 서울 관악을에서 여당 후보가 무명의 신인에 가깝던 이해찬 전 대표에게, 이분에게 여러 가지 지역구에 유권자 구도 이런 것 등등을 다 감안하더라도 지면 안 되는 선거를 진 거죠. 그 이후에 그래서 지역구에 안 나가는 게 이때 트라우마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렇게까지는 아니겠죠.
◇ 김종대> 비례대표를 잘 주니까 나갈 필요가 없었겠죠.
◆ 김민하> 경험자 입장에서 말씀하시는 겁니까?
◇ 김종대> 뭐 또 그렇게. . .(웃음)
◆ 박원석> 선거 트라우마의 경험자죠.
◇ 김종대> 저는 지역구에도 나갔습니다.
◆ 박원석> 저도 2번 떨어져 봤고.
◇ 김종대> 이해찬 대표와 김종인 위원장의 악연이 이렇게 오래됐구나 하는 거 이제 알게 되셨을 겁니다. 이런 흑역사에도 불구하고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각인되면서 지금까지도 정치권의 러브콜 계속돼 왔습니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말 그대로 직업이 비대위원장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의 정치인생 2막, 역시 퀵마가 정리했습니다.
◆ 임경빈> 김종인 정치 인생의 후반부는 직업이 비대위원장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1년 새누리당 비대위에 참여해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 됐고 2016년에는 문재인 대표의 민주당 비대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총선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2017년 대선 때는 안철수의 국민의당에서 개혁공동정부 추진위원장으로 참여를 했다가 2020년에는 다시 황교안의 미래통합당에서 총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이후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으로 추대가 됩니다. 어떤 정치인이든 어떤 정치 세력이든 뭔가 일이 잘 안 풀리고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 싶을 때 아, 김치찌개 맛이 좀 심심한데 싶을 때 맛소금처럼 떠올리는 존재, 그런 존재가 된 거죠. 하지만 자신이 책임지고 이끌었던 정치 세력들과 늘 갈등을 하면서 볼일 끝나면 이별한다고 해서 토사구팽의 아이콘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직선적이고 거침없는 화법 때문이기도 한데 민주당 비대위원장 시절에는 이따위로 대접하는 당에서는 일할 생각이 없다고 하거나. 국민의힘 위원장을 하면서 한심한 사람들이랑 뭘 하겠냐. 나는 사라질 거다.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상대인 안철수 후보 를 향해서는 거론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기도 했죠. 한국 정치 사회에서 본인이 주인공이었던 적은 없지만 동시에 언제나 주인공이기도 했던, 문제적 인물이자 항상 문제를 던지는 인물. 한국의 포레스트 검프 김종인의 다음 행보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 김종대> 제가 이 코너 여러 번 진행하고 있지만 지금 퀵마 참 맛깔스럽게 정리하시네. 보니까 김종인 위원장이 묵은지 같잖아요,김치찌개 얘기도 나오고. 이번에는 그러면 2막을 한번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에서 비대위원장을 지냈다. 참 대단해요, 대단해.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도 힘을 보태기도 했다. 결국은 일등공신 아닙니까? 이렇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행보, 어떤 것들이 기억에 남습니까?
◆ 박원석> 일단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책략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게 2011년 박근혜 비대위에 참여하면서 결국 2012년에 이른바 좌클릭,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내세운 좌클릭을 이끌어내고 그걸로 중도층까지의 확장성을 확보해서 대선에서 이겼는데, 회고록에 보면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후보 등록한 다음 날 혼자도 아니고 9명이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찾아와서 거의 협박 내지는 압박하듯이 김종인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너무 과격해서 우리가 채택을 못하겠다. 그때 박근혜라는 정치인의 바닥을 봤고 거의 깡패 같은 그런 모습을 봤다 이런 회고록의 장면이 나오는데. 대선이 끝나기 전부터 틀어졌던 거고 이분은 더 이상 당시에 새누리당과 함께할 생각이 없다 이런 판단을 했던 것 같고.
문재인 대통령이 20대 총선 앞두고서 그로기상태에 몰렸었는데, 당대표를 하면서. 그때 또 구원투수로 등장해서 비대위원장을 하면서 총선에서 1당이 됩니다. 그러나 총선이 끝나자마자 비례대표 2번 셀프공천 논란 등등을 빚으면서, 결국은 이제 비례대표를 던지고 문재인 정권과도 결별을 하게 되는데. 회고록에 나온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보면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 어려울 때는 와서 도와달라고 그러고 나중에 가서 당내에 그런 논란이 있으니 은근히 그걸 즐기더라. 그리고 주변이 복잡한 사람. 그래서 이들이 권력을 잡으면 그 말로가 좋지 않을 거다 이런 굉장히 독설에 가까운 악담을 퍼붓습니다.
2016년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선대위원장.연합뉴스.
◇ 김종대> 강도가 높네요. 그러면요. 도대체 회고록에서 좋게 평가한 정치인은 있어요? 다 나쁜 이야기만 나오고.
◆ 박원석> 거의 없는 것 같아요.
◆ 김수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대목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과연 김종인 회고록은 거의 서바이벌을 보는 것 같아요. 누가 여기서 좋은 말을 들을 수 있는가. 결국에는 제 기억으로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 김민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죠.
◆ 박원석> 본인이죠, 본인. 자기중심적으로 회고록을 썼으니까.
◆ 김민하> 그런데 경제민주화 관련해서는 박근혜 캠프에 갔던 게 결과적으로는 자기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격이 됐는데. 왜냐하면 이 당시에 경제민주화 담론을 돌이켜보면 세 가지 정도 버전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재벌의 순환출자 구조를 소폭 손을 봐서 그걸로 재벌을 똑바로 돌아가게 하자 이 정도 수준의 경제민주화 주장이 있었는데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당시 주장은 여기에 가까웠거든요. 두 번째 버전은 완전히 주주 자본주의를,소액주주 운동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서 완전히 이제 주주의 권한을 충분히 보장하는 그런 걸 만들어야 된다 이런 주장도 있었는데 그걸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이었던 거고. 세 번째는 완전히 사회적 평등의 차원에서 경제민주화를 하자는 주장도 있었는데 그건 박근혜 캠프에서 거론할 수 없는 내용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100% 대한민국 그다음에 생애 주기별 맞춤형 복지, 경제민주화 이런 여러 가지를 거론을 했지만 결국은 제대로 된 건 하나도 없었죠, 박근혜 정권에서는. 그런 점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이때 박근혜 캠프와 결합한 것은 뭘 위해서 했냐라는 평가를 사실은 저는 그렇게 얘기를 하고 싶어요.
◆ 김수민> 이게 한국 정치, 정당이 중간층 공략과 또 외연 확장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죠. 지지층 결집 이거를 주기를 오가거든요. 진자처럼 오가는데 확장할 때는 김종인이 필요하고 지지층 결집할 때는 필요 없는, 이런 카드가 되는 성격이 있었다,어느 당에 가든지. 그래서 김종인의 흥망이 한 정당의 어떤 주기 패턴과 얽혀 있다 이 점을 좀 지적을 하고 싶습니다.
2012년 당시 새누리당 김종인 비대위원과 박근혜 비대위원장
◆ 박원석> 당시 박근혜라는 사람을 통해서 본인의 필생의 과제였던 경제민주화를 진척시켜보자는 욕망을 가졌는데 그런데 너무 모순되는 게 당시에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의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게 '줄푸세'예요.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그런데 그거는 경제민주화나 복지하고 전면 배치되는 얘기인데.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그런 얘기도 어디 가서 막 무마하면서 박근혜 정권을 통해서 뭔가 조금 더 한 걸음 진전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 조치를 도모하려고 했으나 결국은 물거품이 된 거죠.
◇ 김종대> 결국 팽당했죠?
◆ 박원석> 그런 거죠.
◇ 김종대> 알겠습니다. 진도 좀 나가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선거 기간이니까 최근에 안철수,오세훈 후보 간의 단일화 협상에서 기싸움이 계속되다 보니까 상왕으로 지목이 됐다. 안 후보가 오세훈 후보의 상왕이다 이렇게 발언을 했습니다. 이거 어떻게 보세요?
◆ 김민하> 그러니까 이게 협상이 진척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론 이런 것의 연장선상에서 안철수 후보 측이 오세훈 후보는 단일화를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는 양보할 준비가 돼 있는데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허락해 주지 않는 것 아니냐 이렇게 상왕논란을 제기를 했던 거죠.
◇ 김종대> 상왕 논란에 또 역으로 여상황제 논란까지 나와서 이게 좀 왕조시대로 돌아간 같습니다. 안철수 후보의 발언 듣고 가시죠.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 김종인 위원장님의 사모님이 제 아내와 이름이 같습니다. 그리고 또 정치적인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도 여의도에 많이 퍼져 있습니다. 혹시 그분과 착각해서 그러신 것 아닌가]
기자 / 안철수 캠프 쪽에서 이제 사모님 관련해서 열심히 공세를.
김종인 / 그 사람은 내가 봐도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 같아.]
◆ 김민하> 상왕이라고 안철수 후보 측에서 비판을 하니까 오세훈 캠프 측의 이준석 최고위원이 그러면 안철수는 여상황이 있는 거 아니냐, 배우자가 여상황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는데 갑자기 거기서 안철수 대표가 그 여상왕이라는 것은 나의 배우자가 아니라 김종인 위원장 배우자가 아니냐 이렇게 받아친 장면을 이제 들으신 겁니다.
◇ 김종대> 그러면 김종인 위원장의 부인이 어떤 인물인지 또 관심이 가요. 이건 여상황 맞아요?
◆ 김민하> 동명이인이다. 그래서 김미경 교수이다라는 건데요. 이분이 실제로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정치적인 조언이나 이런 것들을 많이 한다 이렇게 알려져 있고 또 김종인 비대위원장도 공개적인 자리에게 더불어민주당의 비대위원장으로 갈 때 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인가요. 그때 비대위원장으로 갈 때 그때 부인이 조언을 많이 했고 도와줬다 이렇게 설명한 바도 있어서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배우자다라는 평가가 실제로 있는 게 사실입니다.
17일 오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매경 국민보고대회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 김종대> 알겠습니다. 본인의 역할이 보궐선거까지다 이렇게 계속 김 위원장이 강조해 왔어요. 그런데 선거가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앞으로 선거 끝나면 어떻게 될까요? 혹시 또 당에 남아 있는 거 아니에요? 또 떠나나?
◆ 박원석> 저는 조건부를 내세울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대선까지 전권을 달라. 대선까지 전권을 주는 비대위원장의 연장이면 남아 있고, 그게 아니고 당대표 나와서 경쟁해라 이런 식의 반응이라면 저는 저분 또 털고 나갈 거라고 보고요. 그런데 아마 선거 결과에 따라서 당내의 의견이 확연하게 두 쪽으로 갈라질 가능성이 높아요. 선거에서 이기면 일종의 대체불가다 이런 여론이 있는 반면에, 언제까지 82세 된 노인한테 당을 맡겨놓을 거냐 이런 여론도 반대여론도 한편으로는 만만치 않거든요. 그 가운데서 어떤 결정이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전권을 주지 않는 한 대선 시기에 저 당에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 김종대> 그렇게 보십니까? 그러면 이분의 최종 목표는 어디일까요? 본인이 대통령 되려는 건 아닐 거 아니에요.
◆ 김민하> 그것도 온갖 시나리오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뉴스 화산님 같은 경우에도 이런 시나리오에 일가견이 있으신데. 예를 들면 개헌을 하기로 해 놓고 짧은 기간 동안 개헌을 하기 전까지의 대한민국 비대위원장을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시나리오도 있고 한데. 아무래도 연령이 너무 많고 또 지금까지도 포레스트 검프라고 할 정도로 여러 가지 족적을 이미 남겼기 때문에 추가로 뭘 더 할 것이냐 저는 부정적으로 보는데, 화산님은 안 그런가 봐요.
◆ 김수민> 궁극적으로는 개헌이 목표인 것 같고요. 적어도 이제 다음 대선에서 본인이 지지하는 쪽이 이기게 하는 것, 여기까지는 아마 잡고 있을 거다라고 봅니다.
◇ 김종대> 알겠습니다. 그 바람 실현되는지 보겠습니다. 4월 재보궐선거 특집. 오늘은 김종인으로 본 한국현대사 시간이었습니다. 박원석 전 의원, 뉴스화산, 뉴스빙하 오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수민> 고맙습니다.
◆ 김민하> 고맙습니다.
◆ 박원석> 고맙습니다.김종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