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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성추행 피해자 "보궐 선거, 많은 것 놓쳐…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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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사망 251일 만…17일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행사 직접 등장
"제 회복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시작부터 끝까지 피해자는 저" 눈물
"이낙연·박영선 사과 진정성 없어…남인순 등 민주당 차원 징계 있어야"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가 4·7 재보궐 선거를 두고 "선거가 본래 치러지게 된 이유를 많이 놓쳤다 생각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피해자 당사자가 언론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고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박 전 시장이 사망한 지 251일 만이다.

서울시 전직 비서인 피해자 A씨는 17일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 등 A씨를 지원해온 단체들이 주최한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행사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박 전 시장이 몸담았던 여당을 겨냥해 "저의 피해사실을 왜곡하고, 오히려 상처를 준 정당에서 시장이 선출된다면 저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든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후회가 덜한 쪽을 선택하고 싶었다"며 "제가 말을 하고 어떤 결과가 생겼을 때와 말을 안 하고 어떤 결과가 생겼을 때 후회의 무게가 더 가벼운 쪽으로 선택을 했고, 이 자리에 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전 시장의 사건에 책임이 있는 여당이 당초 이번 선거를 치르게 된 이유를 망각한 것 같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은지 기자

 

A씨는 오랜 시간 망설였지만, 무수한 고민 끝에 용기를 내게 됐다고 밝혔다. 행사 중간에 등장한 그는 담담하게, 때로는 떨리는 목소리로 미리 준비한 입장문을 읽어내려갔다.

A씨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있어 '말하기'는 의미있는 치유의 시작이라고 한다. 저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체로서, 한 사건의 피해자로서 제 존엄의 회복을 위해 더 늦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며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저는 당당하고 싶다. 긴 시련의 시간을 잘 이겨내고 제 자리를 다시 찾았다고 스스로 다독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긴 시간 고민해온 결과, 저는 깨달았다. 저의 회복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라는 것"이라며 "용서란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해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준다'는 의미인데,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죄와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게 먼저라는 뜻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그는 피해사실을 인정받기까지 너무나 힘겨웠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A씨는 "제가 겪은 사실을 사실로 인정받는 그 기본적인 일을 이루는 과정이 굉장히 험난했다. (박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가 바뀌었고, 고인을 추모하는 거대한 움직임 속에 우리 사회에 저란 사람이 설 자리가 없다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또한 "그 속에서 제 피해사실을 왜곡해 저를 비난하는 2차 가해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사건의 피해자는 시작부터 끝까지 저라는 사실"이라며 울먹였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참석해 피해자의 메시지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앞서 올 1월 박 전 시장 사건을 직권조사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박 전 시장의 언행을 '성희롱'이라고 인정했음에도, 피해 진위를 의심하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도 호소했다.

A씨는 "피해사실에 의문을 제기한 분들께서 이제 소모적 논쟁을 중단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방어권을 포기한 것은 상대방"이라며 "고인이 살아서 사법절차를 밟고 스스로 방어권을 행사했다면 조금 더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졌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인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고통에 공감하지만 그 화살을 제게 돌리는 행위는 이제 멈춰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고소사실 유출로 인해 겪어야 했던 후폭풍의 괴로움도 언급했다. A씨는 "저는 그동안 (박 전 시장을) 고소하기로 한 결정이 너무도 끔찍한 오늘을 만든 것은 아닐까, 견딜 수 없는 자책감에 시달렸다"며 "그러나 그 고통의 시작도 제가 아는 누군가의 짧은 생각 때문임이 드러났다. 이 일로 우리 사회는 한 명의 존엄한 생명을 잃었고, 제가 용서할 수 있는 사실인정 절차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피해자가 직접 참석해 사건과 관련해 발언할 예정이지만 언론 노출은 동의하지 않았다. 사진공동취재단

 

박 전 시장의 편에 서서 자신을 비난하며 2차 가해를 야기한 이들에 대해서도 "잘못한 일들에 대해 진심으로 인정하신다면, 용서하고 싶다"고 말했다.

A씨는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그분과 남은 사람들의 위력 때문에 겁이 나서 하는 용서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과연 제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고 직면한 현실이 두렵기까지 하다"며 "저는 불쌍하고 가여운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다.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한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존엄한 인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실에 관한 소모적 논쟁이 아닌 진정성 있는 반성과 용서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사회를 볼 수 있길 소망한다"며 "거대한 권력 앞에 '이건 아니다'란 생각이 들 때 그 즉시 문제제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 권력의 불균형 속에서 누군가 고통받는 일이 생긴다면 모두가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인권위의 발표 이후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자신에게 건넨 사과에 대해서는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사진공동취재단

 

A씨는 "이낙연 대표와 박영선 후보께서 어떤 것에 대한 사과인지에 대해 명확히 짚어주지 않으셨단 생각이 든다. 민주당에는 소속 정치인의 중대한 잘못이라는 책임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라며 "'피해호소인'이라는 명칭으로 저의 피해사실을 축소, 왜곡하려 했고 '님의 뜻 기억하겠다'는 말로 저를 압도했으며 투표율 23%의 당원투표로 서울시장 후보를 냈다"고 짚었다.

이어 "지금 (박 후보) 선거캠프에는 저를 상처 주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 사과를 하기 전 사실에 대한 인정과 후속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생각한다"며 "지금까지 사과는 진정성도, 현실성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A씨는 박 후보를 향해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며 "저를 '피해호소인'이라 명명했던 그 의원들에 대해 직접 저에게 사과하도록 해 달라. 박 후보께서 따끔하게 혼내주셨으면 좋겠다. 그 의원들에 대한 당 차원의 징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촉구했다.

또 지난 1월 피해호소인 명칭을 이유로 직접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던 남인순 의원을 들어 "그분으로 인한 저의 상처와 사회적 손실은 회복하기 어려울 지경"이라며 "그분께선 반드시 정치적 책임을 지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 차원의 징계를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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