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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차가운 화석이 품은 뜨거운 생명 '암모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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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암모나이트'(감독 프란시스 리)

외화 '암모나이트' 스틸컷. 소니 픽쳐스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온전히 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아픔을 지닌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단단하게 굳어버린 껍질 밖으로 꺼낼 수 있다. 영화 '암모나이트'는 그저 지나칠 수도 있는 암석들 속에서 화석 같은 상대를 발견하고, 서로의 안에 숨겨진 마음을 끌어내는 과정이다.

1840년대 영국 남부 해변 마을 라임 레지스, 고생물학자 메리(케이트 윈슬렛)는 생계를 위해 화석을 발굴하며 살고 있다. 거친 파도 소리만이 가득하던 그곳에 상류층 부인 샬럿(시얼샤 로넌)이 요양을 위해 내려온다.

돈을 준다는 말에 메리는 샬럿을 돌봐 주지만 잠시 스쳐 지나갈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샬럿이 크게 앓자 메리는 그를 간호하고, 이를 기점으로 둘은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간다.

외화 '암모나이트' 스틸컷. 소니 픽쳐스 제공

 

'암모나이트'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비슷한 상처를 품고 있는 메리와 샬럿이 마치 화석처럼 서로를 발견하고 깊은 감정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다.

그들의 모습은 해변을 가득 채운 수많은 돌 속에서 과거의 생명을 품은 화석을 찾는 것과 닮았다. 메리와 샬럿은 서로에게서 감춰져 있던 내면을 발굴해낸다.

냉소와 상처와 무기력함만이 남아 무채색 같던 그들의 얼굴에 빛을 만들어 낸 것은 서로를 향한 마음이다. 종종 꽃 그림 위를, 화석 위를 기어 다니는 무당벌레는 감각이 죽어 있던 메리와 샬럿에게도 뜨겁게 박동하는 감정이 숨어 있었음을 끊임없이 알려준다.

카메라는 이들의 감정적 변화를 그려내는 동시에 19세기를 살아가던 여성의 위치를 알려준다. 여자라는 이유로 메리는 고생물학자로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메리의 업적 위에는 남성의 이름이 붙여진다. 샬럿은 부유한 상류층 여성이지만, 여성이기에 그에게는 선택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 사이를 연결하는 감정적 유대 이전에 그들은 사회에서 지워진 여성의 이름을 지켜주고, 여성이 아닌 과학자로서의 성과를 알려주고, 작게나마 전면에 드러나도록 돕는다.

외화 '암모나이트' 스틸컷. 소니 픽쳐스 제공

 

여성이라는 위치가 만들어 낸 연대도 중요하지만 영화는 무엇보다도 비슷한 상처를 입고 생기 없이 살아가던 두 인물이 점차 같은 감정 아래 놓이게 되는 과정을 그려나가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매우 감각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감각 중 하나는 바로 청각이다. 영화는 시각이 아닌 청각으로 시작한다. 물소리인지 무언가를 쓸어내는 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관객의 귀를 두드리며 감각을 자극한다.

영화 내내 영국 남부 라임 레지스 해변의 엄청난 파도와 바람 소리는 메리와 샬럿의 강렬하게 요동치는 마음처럼 들려온다. 겉으로는 고요한 듯,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던 메리와 샬럿의 속마음을 대변하듯 말이다.

재밌는 사실은, 영화는 많은 말보다 배우의 눈빛, 표정, 몸짓을 통해 감정과 그들의 내면을 전달한다는 점이다.

대사를 통해 메리와 샬럿의 감정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직접적인 말보다 더 강렬하게 그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눈빛과 얼굴이다.

외화 '암모나이트' 스틸컷. 소니 픽쳐스 제공

 

사람과 사랑, 사회에 상처받은 메리는 그가 사는 라임 레지스처럼 황량하다. 그런 메리가 닫아놓았던 마음을 파고드는 기묘한 감각과 사랑으로 인해 겪는 감정의 파고는 차마 언어로 다 표현해내기 어렵다. 그 복잡다단한 내면을 케이트 윈슬렛은 자신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눈빛과 얼굴로 표현해낸다.

이는 샬럿도 마찬가지다. 유산 이후 몸과 마음 모두 상처 입고 자신을 어둠에 가둬놨던 샬럿이, 점차 바깥세상으로 자신을 꺼내 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 역시 말보다 그의 모든 행동과 표정을 통해 드러난다.

이러한 메리와 샬럿의 감정과 감정의 변화는 화면 전반에 걸친 색상의 변화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인물의 감정, 영화의 분위기를 화면이 가진 색의 변화를 통해 나타내며, 느껴지는 그대로 영화를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이처럼 '암모나이트'는 인물 개개인과 그들의 관계를 애써 설명하려 하지 않고 보다 감각적으로,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마주하고 받아들이게끔 만든다.

대사보다는 온몸으로 감정과 내면을 표현하고 이를 통해 관객을 설득하는 작업은 더더욱 어려운 법이다. 케이트 윈슬렛과 시얼샤 로넌은 이 모든 과제를 기대 이상으로 수행하며 관객들의 눈길을 메리와 샬럿에 고정시킨다. 그렇기에 영화 내내 메리와 샬럿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고, 이해하기 힘든 감정마저 차곡차곡 내 안에 쌓아가게 만든다.

118분 상영, 3월 11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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