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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남편이나 애인 등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됐거나 사망 위험에 노출된 여성이 최소 약 230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여성의전화는 113주년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사건들을 분석한 결과, 남편·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이 최소 97명, '살인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생존여성은 최소 131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피해여성의 자녀나 부모, 친구 등 주변인이 가해자의 폭력으로 중상을 입거나 숨진 경우도 최소 57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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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측은 "이 수치에 따르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했던 사건이 1.6일마다 한 건씩 보도된 것으로, 주변인 피해까지 포함하면 1.3일에 1건으로 볼 수 있다"며 "이는 언론에 보도된 최소한의 수치로, 보도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실제 피해여성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여성 연령별로는 20대가 15.4%(35명)로 가장 높았다. 이어 △50대(14.9%·34명) △40대(14.5%·33명) △30대(13.2%·30명) △60대(5.6%·13명) △70대 이상(3.1%·7명) △10대(2.2%·5명) 등으로,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는 거의 모든 연령층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같은 폭력 피해는 가해자와 친밀한 관계인 피해여성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인까지 미쳤다. 분석대상이 된 사건 피해자 285명 중 20% 가량인 57명(살인 18명·살인미수 등 39명)이 피해자의 부모와 자녀, 전·현 파트너, 친구 등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살인(13명)과 살인미수 사건 등(24명) 모두 피해자의 '자녀'가 가장 빈번하게 피해에 노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실제 주변인 피해사례 중에는 피해자와 그 자녀들을 가해자가 모두 살해한 후 가해자 본인 역시 자살 혹은 자살 시도를 한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경우 대부분 '일가족 동반 자살'이란 표현을 통해 보도됐으나, 그 맥락을 살펴보면 '동반 자살'보다는 가해자에 의한 '일방적 살인'이란 표현이 훨씬 적합한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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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들은 대부분 피해여성이 만남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범행을 저질렀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가해자의 23.3%(53명)가 피해여성이 '이혼이나 결별을 요구하거나 가해자의 재결합 및 만남 요구를 거부해서'를 동기로 들었다. 실제로 주요 포털사이트들의 검색 창에 '왜 안 만나줘'를 치면, 관련사건 보도들이 대거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홧김에, 싸우다가 우발적으로' 22.8%(52명)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의심 등' 14.9%(34명) △'나를 무시해서' 3.9%(9명) △'성관계를 거부해서'(성폭력) 2.6%(6명) 순으로 집계됐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밥을 안 차려줘서', '너무 사랑해서', '자려는데 말을 걸어서', '안 만나줘서', '결별 후 다른 남자를 만나서', '여행 가자는 것을 거부해서' 등 가해자들이 직접 든 폭력 사유를 들어 "언뜻 보면 각기 다른 이유인 듯 보이지만, 크게 보면 결국 모두 '자기 뜻대로 따라주지 않아서'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와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해자들에게 피해 여성은 그저 자신이 시키는 대로 따라주어야 하는 존재이자, 거기서 벗어날 경우 언제든 제 맘대로 해쳐도 되는 존재에 불과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은 관계 특성으로 인해 온전히 폭력 그 자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고 짚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여름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포커스그룹 인터뷰(FGI)를 진행한 결과, 참여자들은 대개 '내가 피해자임을 인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의전화 측은 "애인·가족 등 소위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폭력'으로 호명되지 못하고, '사랑싸움'·'애정싸움' 등의 이름이 붙어 정상화되곤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와는 정반대로 가해자들의 경우 너무나도 쉽게 폭력을 행사하고, 스스로 정당화하는 것 역시 아주 간편하게 해냈다. 가해자들의 이러한 태도에는 사회적 분위기와 더불어 기상천외한 사법부의 판결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꼬집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술에 취한 한 남성이 전 부인을 흉기로 찌른 사건을 일례로 들었다. 사건 당일 '귀가할 경우 피해자에게 다시 위해를 가할 것이냐'고 경찰이 질문하자 가해자가 '찾아서 죽일 것'이라고 대답했음에도, 법원이 '만취해 격양된 상태에서 진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살인미수가 아닌 특수상해 혐의를 적용했다는 것이다.
한 여성에게 신체 접촉을 시도하다 거부당하자 흉기를 휘두른 사건도 도마에 올랐다. 가해남성이 1주일 전부터 흉기를 구입해 가방에 넣고 다녔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재판부가 '(흉기가) 정육점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고, 취업하면 사용하려고 구입했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며 원심보다 5년이나 형을 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러한 판결들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아무리 생명을 위협할 정도라도 '여성'이 겪는 폭력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라며 "지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피해자는 최소 1072명, 살인미수까지 포함하면 2038명이다. 우리가 '분노의 게이지'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12년이나 지났지만 정부는 여전히 공식 통계를 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집콕'이 최선의 방역대책으로 권고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모든 여성에게 집이 안전한 공간인가'라는 문제의식도 제기됐다. 한국여성의전화 본부 여성인권상담소가 지난해 실시한 상담사례 중 재상담 건을 제외한 초기상담 1143건을 분류한 결과, 성매매를 포함한 '성폭력'(51.4%)에 이어 '가정폭력'이 41.6%(475건)로 두 번째로 높은 순위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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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가정폭력은 '정서적 폭력'이 67.6%로 가장 높게 집계된 가운데 △신체적 폭력 53.7% △경제적 폭력 22.7% △성적 폭력 20.6% 등 다양한 유형의 폭력이 중첩돼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단일 유형의 폭력만 겪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0.6%에 그쳤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전체 상담 중 '가정폭력' 비중을 봤을 때 (지난해) 1월에는 상담비율이 26%였다가 코로나19 국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월부터 40%로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며 "가정폭력 피해자의 83.8%가 전·현 배우자, 부모, 형제·자매임을 고려할 때 정부 방역대책의 주를 이룬 재택근무, 시설이용 제한명령 등이 시행되는 동안 과연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집은 안전한 공간이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다른 국가의 경우 코로나19 국면에서 가정폭력이 더욱 은폐되고 심해지는 상황에 대비해 피해자들이 문제를 드러내고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들을 내놓았으나,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정책 안에 가정폭력은 크게 고려되지 않는 듯 보였다"며 "이러한 우려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가해자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더 힘들다'고 호소한 다수의 상담을 통해 체감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