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했더니 '사기꾼' 비난에 퇴사 종용…"정부, 상시감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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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 "합계출산율 OECD 절반 수준인 0.84명, 이유 있다"
"혼인·임신·출산 사유 차별금지 명시했지만…실제 처벌사례 드물어"
“비정규직·특고노동자 권리 보호토록 남녀고용평등법 등 개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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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원 원장님이 직원들에게 막말을 하고 성희롱 발언까지 합니다. '선배들도 안 쓰는 휴가를 1년차인 주제에 5일씩이나 쓰고 개념이 없다'고 비난하고, '못생긴 것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닌다'는 둥 외모 비하 발언도 심합니다. 한 직원이 임신을 했는데, 그 사실을 알자마자 '없는 사람' 취급하고, 퇴사를 종용했습니다. 그 직원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유산의 위험까지 느껴 결국 퇴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원장은 해당 직원을 언급하며 "입사할 때는 임신 계획이 없다고 하더니, 몰래 임신한 사기꾼"이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2. "남자 직원입니다. 중견기업에서 10년을 일했는데, 육아휴직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권고사직을 당했습니다. 육아휴직 후 복직했더니 첫날부터 업무에서 배제되고 회의에도 들어오지 말라 했고, 나중엔 컴퓨터도 가져갔습니다. 동료들 앞에서 '할 일 없으면 휴지통이나 닦으라'는 말도 들었고, 하루 종일 책상 앞에서 앉아만 있었습니다. 버티다 미쳐버릴 것 같아서 결국 권고사직으로 처리해서 퇴사했습니다. 트라우마로 인해 불면증에 시달리는 중인데, 직장갑질로 신고할 수 있을까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국내 인구가 3만 3천명 자연감소하는 '데드 크로스'(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넘어선 현상)가 발생한 가운데 이같은 '인구 재앙'은 예고된 참사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공공기관과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민간 중소기업은 근로자가 결혼·임신·출산·육아를 자유롭게 하기 힘든 환경이라는 것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1일 제보사례들을 공개하며 "공무원, 공공기관, 대기업, 노동조합이 있는 회사에서는 그나마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에 보장된 권리를 사용할 수 있지만 민간 중소기업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며 "대한민국 직장에서는 결혼·임신·출산·육아를 자유롭게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통계청이 지난달 23일 발표한 '2020년 출생·사망통계 잠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약 27만 2400명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1.63명)의 절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회원국인 37개국 중 합계출산율이 1명에도 못 미치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1년 전보다 7.2명이 줄어든 30대 초반, 5.1명이 감소한 20대 후반에서 가파른 감소폭을 보였다.

직장갑질119는 "남녀고용평등법 제11조 제2항은 '사업주는 여성 근로자의 혼인·임신 또는 출산을 퇴직 사유로 예정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위반 시 4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처벌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짚었다.

실제로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결혼 계획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직원을 내보낸 어린이집 원장은 노동청에 신고된 이후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오히려 해당 원장은 피해직원을 권고사직 처리한 뒤 근로복지공단에 '자진 퇴사'로 신고해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적 권리로 명시된 '육아휴직' 역시 사용 직원에게 도리어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갑질119는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둔 직장인은 누구나 사용자에게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사용할 수 있다. 자녀 1명당 1년 이내의 기간을 사용할 수 있고, 자녀가 2명이면 2년을 사용할 수 있다"며 "부부가 '맞벌이'라면 남성과 여성 모두 1년씩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법이 보장한 육아휴직을 사용했단 이유로 10년 이상 근무한 회사에서 책상을 빼버리거나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업무를 주고, 왕따를 시키는 등 괴롭혀 내보낸다"며 "휴가 전과 동일한 업무 또는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키지 않고 부당하게 인사발령을 해 불이익을 준다면 노동청에 신고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처벌받은 사용자는 거의 없는 나라에서 누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에 따라, 결혼·임신·출산 등 생애주기에 따른 노동자의 재생산 권리가 제대로 보호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촉구했다.

직장갑질119는 "임신·출산·육아에 관한 직장에서의 권리는 비교적 잘 보장되어 있고 관련 법령들도 계속해 개정돼 왔다. 그러나 법을 집행해야 할 정부가 법을 위반하는 현실을 방치하고 있다"며 "육아휴직 후 사업주의 강요로 인한 사직은 불리한 처우임에도 불구하고, 사직서를 냈기 때문에 해당이 안된다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정부는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따져 이들 권리가 제대로 보장될 수 있도록 적극적 근로감독에 나서야 한다. 상시적 근로감독을 통해 피해자의 신고가 없더라도 법 위반 사업주를 제재해야 한다"며 "정부가 사업주 및 직장인들에게 관련정보를 널리 알리고, 임신·출산·육아에 관한 내용이 취업규칙에 명시되도록 감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접 고용관계가 아닌 노동자들도 동일한 권리를 보장받도록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의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직장갑질119 윤지영 변호사는 "특수고용노동자, 계약기간이 정해진 기간제,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임신·출산·육아에 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일하는 여성 중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상황"이라며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임신·출산·육아에 관한 권리를 실제 행사할 수 있도록 법령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육아휴직 외 임신·출산을 근거로 한 부당 처우에 대해서도 제재가 가능토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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