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염혜란을 사로잡은 '빛과 철'의 강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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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게 부딪혀 강렬하게 빛을 낸 사람들 ①
영화 '빛과 철'(감독 배종대) 영남 역 배우 염혜란 <상>

영화 '빛과 철'에서 영남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염혜란. 찬란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어느 날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의식불명이다. 영남은 그런 남편과 남은 딸을 위해 간병과 출근을 반복한다. 고단하지만 버틸 수밖에 없다.

괜찮은 척하지만 사실 괜찮지 않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주변에서는 그런 영남을 두고, 남편을 두고 관심과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말을 건넨다. 그 시간이 힘겹다.

그런 영남에게 어느 날 가해자의 아내 희주(김시은)가 나타난다. 그런 희주 곁을 딸 은영(박지후)이 맴돈다.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은 척했던 영남의 삶에 균열이 생긴다. 그 균열은 영남의 내면에도 조금씩 틈을 만들며 파고든다. 벌어진 틈새로 눌러놨던 감정이 튀어나오고, 희주와 계속 부딪힌다.

영화 '빛과 철'(감독 배종대)은 남편들의 교통사고로 얽히게 된 두 여자와 그들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배우 염혜란은 삶의 한 극단에 몰린 영남의 감정을 한계까지 끌어내 강렬하게 그려낸다. 최근 온라인으로 염혜란을 만나 지독하고도 강렬한 영화 '빛과 철'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빛과 철' 스틸컷. 찬란 제공

 

◇ 강렬한 이야기, 강렬한 캐릭터에 매료되다

염혜란은 '빛과 철'의 탄탄한 시나리오와 강렬함에 이끌려 출연을 결심했다.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어떻게 되는 거야'라며 사건을 따라갔어요. 조그만 걸 끄집어냈더니 더 큰 것들이 나오고…. 강렬한 이야기에 일단 끌렸죠. 그리고 저는 사실 독립영화 주인공을 해보고 싶었어요. 메시지가 워낙 강하고 해야 할 것들도 있고, 감정이 너무 어렵긴 하지만 매력적이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캐릭터도 여성 둘이 극한까지 가는, 감정의 기복을 끝까지 보여줄 수 있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이야기와 캐릭터의 매력에 끌려서 배종대 감독을 만났다. 염혜란은 배 감독에게서 많이 고민한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어려운 이야기들을 왜 하는지에 대해서 감독님께 여쭤봤어요. 본인도 죄책감을 갖고 산 적이 있고, 결국 사람들이 힘든 과정을 끝내고 나서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죄책감을 덜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어요. 해볼 만한 거 같다는 생각으로 하게 됐어요."

영남의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다. 영남은 하던 일을 내려놓고 남편이 다니던 공장에 취직해 남편을 돌보고, 딸을 돌본다. 기약 없는 간병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영남을 무겁게 짓누른다.

"영남은 사실은 남편이 힘들어하는지도 알았어요. 그러나 자신도 너무 힘들고 힘든 사람의 고통을 계속 들어주는 게 힘들었죠. 그러다 교통사고까지 발생해버린 거 같아요. 제가 처음 본 영남은 태풍의 눈 같은 곳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아무 일도 없어 보이고, 일상을 사는 사람 같은데 그 안에 너무 많은 게 휘몰아치고 있는 거죠. 태풍의 눈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엄청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그 안에서 버티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휘몰아치는 안팎의 감정과 고통 속에서 아슬아슬한 듯 자신의 내면을 꾹꾹 누르며 남편과 딸을 돌본 게 영남이다. 이 복잡한 내면의 인물을 그려내며 고민도 많았다.

"저는 영남이 스테레오 타입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했어요. 영화에 나오는 모습 이전에 영남이 어떻게 살았는지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저는 그 장면이 좋았어요. 병원에서 오랜 시간 간병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영남은 그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주고 같이 힘들어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게 그나마 영남에게 숨구멍 같아서 좋았어요."

영화 '빛과 철' 스틸컷. 찬란 제공

 

◇ 영남,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고통스러운 내면을 가진 인물

영화는 영남을 비롯한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는 게 중요하다. 그렇기에 염혜란이 영남을 연기하면서도 가장 신경 쓴 부분도 '감정'이다. 장르의 한 축으로 보이거나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이길 원했다.

"영남은 상처가 오래된 사람이에요. 상처가 들끓고 있는 게 아니라 굳은살 혹은 잘못 붙은 뼈가 굳어진 느낌이죠.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데 고통스러운 사람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그게 되게 어려웠어요. 그리고 말도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만 하는 인물이 아니에요. 정말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대사 같지 않고 정말 '말'처럼 좋겠어서 그런 점에 유의했어요."

영화 초반 영남은 희주에게 친절하게 다가간다. 희주는 그런 영남이 자신을 가해자의 아내인 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영남이 희주를 아예 몰랐던 건 아니다. 후에 나오지만 영남은 희주를 알고 있었다. 희주가 공장에 온 것을 알게 된 영남도 속으로는 많이 놀랐다. 그러나 희주에게 영남은 말을 건넨다. 관객에게 영남은 아무것도 모르는 피해자의 아내처럼 보이기도, 알고 있음에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보이기도 한다.

"감독님과 어떻게 해야 할까 되게 많이 이야기했어요. 저는 영남이 일부러 감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의도를 감추고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 같아요. 희주를 처음 만날 때까지만 해도 영남은 자신이 피해자의 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희주의 남편이 죽은 건 가슴 아프지만 너무 그렇게 죄의식을 갖지 말고 삶을 살아냈으면 좋겠다는 감정으로 접근했어요."

영화 '빛과 철'에서 영남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염혜란. 찬란 제공

 

◇ 염혜란이 만난 '빛과 철'은 마음을 보는 영화다

처음 피해자와 가해자의 아내로 만난 이후 영남과 희주는 영남의 딸 은영이 건넨 고백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날 선 감정들을 꺼내어 쌓아 나간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에 혼돈이 찾아오고, 영남과 희주는 묻어뒀던 감정을 꺼내어 마주한다. 그리고 둘의 감정은 강렬하게 맞부딪힌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던 영남과 희주의 감정에 제동이 걸리는 건 영화 마지막, 고라니가 등장하면서다. 고라니를 마주한 영남과 희주가 서로를 돌아보며 마주할 때, 대척점에 놓인 것 같던 두 사람이 같은 처지로서 동질감을 느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둘의 감정과 삶이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것을 암시한다.

"그 장면을 찍을 때 배우로서 되게 힘들지만, 재밌었어요. 배우 대 배우로 서로 교감이 확 일어날 때가 있는데 마지막 장면은 그런 점에서 재밌었어요. 인간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피 튀기게 싸우다가 대자연을 봤을 때, 대자연이 주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감동이 있어요. 고라니를 보는 순간 그런 느낌이었어요. 자연의 눈을 보는데 무엇을 위해서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느냐, 그런 이야기가 제 뇌리를 때리는 느낌이었어요."

영화에는 고라니가 두 차례 등장한다. 도로 위에 교통사고로 죽은 채 발견된 새끼 고라니, 그리고 마지막 영남과 희주가 도로 위에서 마주하게 된 고라니가 그것이다.

"감독님이 마지막에 등장한 고라니는 앞서 나온 고라니의 엄마 고라니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셨어요. 엄마 고라니가 잃어버린 아이를 찾고 있는 듯한 장면일 수 있다는 거죠. 그 장면에서 영남은 희주네 집에 간 것도 사라진 은영이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딱 떠올리죠. 내가 잊고 있던 은영이가 확 떠올랐어요. 은영이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데, 앞으로 더 많은 인생을 살아야 할 은영이를 챙겨야 한다, 그렇게 은영이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영화 '빛과 철' 스틸컷. 찬란 제공

 

영남의 남편이 깨어나 교통사고에 얽힌 진실을 알려줄 거라는 생각에 영남과 희주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 길에서 만난 고라니는 영남과 희주가 그토록 찾고자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진실보다 더 중요한 걸 알려주는 극적인 장치다.

"깨어난 남편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 몰라도 그게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 중요한 단서를 이야기해서 사건이 기적처럼 풀릴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남편의 아픔을 내가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 좀 더 남편과 이야기하지 못했던 건 할 수 있겠죠."

영남을 연기한 염혜란이 작품을 통해 자신에게 던져 본 질문도 바로 '타인과의 소통'이다.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편견 어린 생각인가' '그게 얼마나 내 식대로 바라본 편한 생각인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나는 객관적으로 생각해서 어떤 사람을 봐 왔다고 생각하는 게 결국 다 깨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살아온 삶을 되돌아봤을 때 어떤 사람에게는 저의 아무렇지 않은 말과 행동이 폭력으로 다가갈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동시에 '빛과 철'이라는 어둡고 힘든 이야기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한 발 나아가게 하는 계기이길 바랐다. 영남이 감정의 끝까지 치달으면서 결국 전하고자 한 것은 삶을 보는 것이고,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잊고 있던 것을 되찾는 길이었다. 영화 내내 영남을 뒤흔든 죄책감을 덜어내고 말이다.

"끝까지 간 사람들이 다른 일을 선택하면 좋겠어요. 우리 이렇게 힘들었는데 과거 속에 묻혀 살지 말고, 피해자 가해자에만 목메 있지 말고 좀 더 털어내자는 거죠. 희망이라는 건 거짓 단어 같지만 달라진 변화를, 그 이후를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은영은 어떻게 됐을까?' '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요. 누가 피해자인지만 찾느라 옆에 사람을 보지 못했다면 중요한 걸 놓치지 않고 다시 보게 되면 좋겠어요. 마음을 보는 영화가 됐으면 해요."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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