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승리호'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 스포일러 주의한국 최초 우주 SF 영화 '승리호'는 여러모로 흥미롭고 유의미한 작품이다. 무엇이 가능했고 무엇을 가능하게 했는지 그리고 '승리호'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한국 영화가 어떤 점을 취하고 재정비하고 또 나아갈 것인지 보여준다.
'승리호'(감독 조성희)는 2092년,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 선원들이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 후 위험한 거래에 뛰어드는 이야기다.
승리호 선원 태호(송중기), 장 선장(김태리), 타이거 박(진선규), 로봇 업동이(유해진)는 어느 날 수거하게 된 사고 우주정에서 도로시(박예린)를 발견한다. 온 우주가 도로시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 빚만 늘고 있는 승리호 선원들에게 도로시는 거액을 안겨줄 존재가 된다.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시와 돈을 맞바꾸려는 시도는 계획대로 되지 않고, 승리호와 네 명의 선원은 원치 않는 거대한 음모에 빠지게 된다.
영화 '승리호' 비하인드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영화는 '인디아나 존스'나 '구니스' 같은 1980~90년대 할리우드 모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선율과 어우러져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이 활극은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임을 알린다.
모험 활극이라는 점뿐 아니라 이를 그려내는 색상이나 음악 역시 8090 감성을 자극하며, 당시 영화를 소비하고 즐겼던 이들에게 때아닌 추억마저 선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 최초의 우주 SF 영화 '승리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고, 주목해야 할 점은 VFX(Visual Effects·시각적 특수효과) 기술의 놀라운 성과다.
할리우드 전유물처럼 여겨진 우주 SF 장르를 한국에서 제작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이자 관건은, 시각적으로 얼마나 생생하게 우주를 그려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조성희 감독의 상상력을 토대로 만들어진 2092년의 우주와 광활한 공간을 누비는 우주선들, 승리호 선원이자 로봇인 업동이, 그리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통해 할리우드 못지않은 기술력을 눈으로 만날 수 있다.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우주 공간과 우주선들 사이로 영어나 자유의 여신상이 아닌 태극기와 한글이 보이고, 광화문 광장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모습은 '승리호'가 한국산 스페이스 오페라임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영화 '승리호'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우주 활극 속에 환경 문제와 사회적인 이슈를 녹여낸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쓰레기로 가득 찬 우주는 마치 바다를 부유하며 세계를 뒤덮은 쓰레기들을 연상하게 만든다. 영화가 보여주는 근 미래 지구는 사막화되어 파란 하늘 대신 뿌연 먼지가 뒤덮은 채 숨조차 쉴 수 없는 황폐해진 공간이 됐다.
자연과의 공존은 뒤로한 채 성장의 역사만 추구한 자본주의는 결국 인류가 지구를 떠나게끔 만든다. 사람들은 맑은 공기와 숲이 보장된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인 UTS(Utopia above the sky)로 떠나게 된다. 문제는 일부 선택받은 자만이 UTS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과 비(非)시민 사이 불균형과 비시민들에게서 볼 수 있는 빈곤 등의 문제는 2092년이 아닌 2021년 지구의 현실을 비춘다.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세계에서 조성희 감독은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놓지 않는다. 부성애와 인간적인 양심에 기초한 인간성의 회복, 그리고 어린 소녀를 통해 순수함을 회복한 어른들과 인류의 위기 앞에 모인 어른들의 연대 등을 통해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소년소녀 같던 이들은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된다.
관습적인 선택에 따라 우주선 리더인 선장을 남성 캐릭터로 설정하지 않고 여성을 배치했다는 점,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소수 국가가 장악한 기존의 우주 패권을 넘어 다양성을 드러낸 점 역시 '승리호'가 가진 장점이다.
영화 '승리호'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기술적인 발전과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각이 녹아드는 등 장점이 많은 '승리호'지만 단점 역시 눈에 밟힌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봤을 때 시각적인 부분과 스토리 사이 균형이 지나치게 시각 쪽으로 치우친 느낌을 준다.
태호의 과거와 상처를 극복하고 나아간다는 점에서 부성애는 필요한 장면이지만, 이를 통한 성장을 그리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신파를 강조한다. 그리고 시각적으로 우주와 우주에서의 여러 모험을 그려내는 데 집중해서인지 인물의 상황이나 극의 배경 등을 지나치게 말로 설명한다는 점 역시 단점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 첫 시도와 새로운 도전이라는 이름에 힘입어 조금 더 과감하게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디뎠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우주 SF 불모지 한국에서 나온 '승리호'는 단순히 영화의 호불호를 떠나 다양한 시선과 평가가 존재한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하다. 어떤 시도를 했고, 어떤 것이 가능했으며,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그리고 무엇을 보여줬고,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다양한 이야기야말로 한국 영화의 또 다른 도전을 향한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136분 상영, 2월 5일 넷플릭스 공개, 12세 관람가.
영화 '승리호'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