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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위험 소방관 2천명인데…치료시설 대신 박물관 짓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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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도 예산안 소방 트라우마센터 예산 전액 삭감
정부 "코로나로 정부 지출 줄여야" 설명하지만
전형적인 홍보·치적용 소방박물관 예산은 통과
"누굴 위한 박물관인가"…일선 소방관들 울화통

지난해 울산시 남구 주상복합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전날부터 이어진 밤샘 진화 작업이 끝난 후 소방관들이 건물 옆에서 쪽잠을 자고 있다. 연합뉴스

 

"불이 나면 혼자 뛰어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0년간 소방공무원으로 일한 A씨가 숨지기 전 주변에 토로했던 말이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던 A씨는 결국 지난 2015년 4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약 12년 동안 현장에서 구급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숨지기 5년 전인 2010년부터 수면장애와 불안 등을 호소하며 공황장애 치료도 받았다.

◇ '자살 고위험' 소방관 2300명 달해…일반인 10배 트라우마 겪어

소방관들은 참혹한 사고 현장을 그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자주 마주한다. 그러다 보니 공황장애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정신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다. 소방관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즉 트라우마를 앓는 비율은 일반 국민의 10배에 이른다.

방치된 트라우마는 점점 심해지다 대개는 마음의 병으로 이어진다. 정신적 고통이나 신변 비관, 가정불화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소방관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6명. 같은 기간 재난·구조 현장에서 순직한 21명의 2.7배다.

소방청과 분당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이 지난해 전국 소방관 5만211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신건강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경우가 2301명(4.4%)에 달했다.

◇ 경찰 심리치료 시설 9곳인데 소방은 전무…올해 예산도 '0원'

이렇듯 소방관들의 정신건강에 '경고등'이 들어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들의 마음을 치유할 정책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일례로 6만 명에 이르는 소방공무원의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치료를 전담하는 시설은 전무하다. 경찰이 9곳, 해양경찰이 4곳의 심신수련원을 가진 것과 대비된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출범 이후 소방 심신 치유센터 설립을 약속해 매년 건립을 추진 중이지만 아직 성과는 없다. 관련 예산을 단 한 번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2021년도) 예산안에도 소방 트라우마센터 건립 예산은 단 1원도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오영훈 의원실이 소방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트라우마센터 건립에 드는 돈은 총 321억 원 정도다. 소방청은 지난해 이중 설계 및 추진비 15억 원을 신청했었다.

국회 논의도 활발히 진행됐다. CBS노컷뉴스가 국회 회의록을 전수분석한 결과, 지난해 서영교·서영석·오영환·한병도 등 여당 의원 다수가 정부 예산안 심사에서 소방 트라우마센터 건립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서영석 의원은 지난해 11월 12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정부 안에 119트라우마센터 건립 예산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신열우 소방청장을 질책하기도 했다.

해당 예산은 국회 상임위(행안위)를 통과했지만 예산결산위원회 최종 심의에서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 관계자는 이에 관해 "직원들의 숙원 사업이었고 청 입장에서도 핵심사업으로 지난해 많은 노력을 했다. 실제로 깊이 있는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안다"며 "코로나 시국으로 정부 지출을 전체적으로 줄이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 같다"고 밝혔다.

황진환 기자

 

◇ "코로나로 재정 위축? 박물관 예산은 왜 통과됐나" 일선 불만

하지만 이런 소방당국의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재정 긴축을 이유로 소방 트라우마센터 예산을 제외했다는 정부와 국회가, 전형적인 '홍보·치적용' 시설인 국립소방박물관 건립 예산(5억5천만원)은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경기 광명시에 지어질 예정인 소방박물관 건립에는 총예산 373억 원이 든다. 올해 5억 원을 시작으로 2022~2024년까지 매년 120억 원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소방청 독립과 국가직화를 계기로 박물관을 통해 소방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게 소방청이 밝힌 건립 취지다.

제한된 자원 배분 과정에서 우선순위를 따졌다면 박물관이 아니라 트라우마센터 건립이 먼저라는 목소리가 소방 안팎에서 나온다. 경기도의 한 소방서에서 근무 중인 21년 차 소방관 B씨는 "박물관 건립이 대체 누굴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당장 치료가 시급한 소방관들은 보이지도 않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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