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기]기회와 맞바꾼 푸대접…오디션 불공정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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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넷 '포커스' 출연자 아버지 문제 제기…"최소한 교통비라도"
지난해 '미스터트롯'도 불공정 계약 논란→"업계 표준" 해명
고질적인 출연자 불합리 대우에 시민단체 "방송사들 더이상 방치 안돼"

엠넷, TV조선 제공

 

최소한의 식비와 교통비도 없으니 출연료는 꿈도 꿀 수 없다. 그저 방송에 얼굴을 비추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고질적인 일반인 출연자 대우 문제가 또 한 번 불거졌다. 이번에는 엠넷 '포커스'에 출연한 뮤지션 송인효의 아버지가 전한 이야기에서부터 촉발됐다.

'산골청년' 송인효는 지난 22일 방송을 마친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포커스: Folk Us'(이하 '포커스')에서 준결승인 8강까지 올라갔다. '국내 최초 포크 뮤직쇼' 타이틀을 내건 '포커스'는 세대를 초월해 차세대 포크·어쿠스틱 뮤지션을 발굴, 성장시키고자 기획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송인효는 산골에서 갈고 닦은 노래 실력과 꾸밈없는 감성으로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았다.

그가 가진 무대 횟수는 총 4번. 그러나 송인효 아버지가 한 매체에 연재한 글에 따르면 인터뷰, 합주 등 방송사 필요에 따라 수십 차례 서울을 오가는 동안 송인효가 받은 것은 김밥 두 줄과 도시락 하나, 교통비 명목의 3만원이 전부였다.

오디션 후일담도 전해졌다. 경선에서 송인효와 인연을 맺은 한 뮤지션 친구는 공사장 막노동판에 흘러 들어갔다. 주변 뮤지션들은 이 정도면 과거에 비해 훨씬 대우가 좋아졌다며 입을 모았다.

평소 생계가 어려운 뮤지션들의 꿈을 지원해 왔던 송인효 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는 "방송 덕분에 이름을 알렸고 큰 교훈을 얻었다"면서도 "(아들 이야기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방송 출연한 것만 해도 감지덕지로 여기라는 것인가. 문제는 이런 불공정한 사례들이 방송 연예계에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는 것"이라고 일침했다.

이어 "음악 방송은 뮤지션이 없으면 방송을 내보낼 수 없다. 방송사가 먹고 사는 것은 그들이 있기에 가능하다"며 "거대 기업이 운영하는 방송사가 방송 출연하는 뮤지션들에게 교통비조차 제대로 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가. 어지간히 먹고 살만 하면 방송에 출연하는 무명의 가난한 뮤지션들에게 최소한의 교통비라도 꼬박꼬박 챙겨달라"고 변화를 촉구했다.

그렇다면 송인효 아버지가 주장한 이야기들은 조금의 과장과 보탬 없이 전부 사실일까. CBS노컷뉴스가 취재한 결과 엠넷과 '포커스' 출연자와의 계약서에는 식비와 교통비, 출연료 등 항목이 실제로 없었다.

엠넷 관계자는 28일 CBS노컷뉴스에 "프로그램마다 다른데 '포커스'는 계약서에 식비, 교통비, 출연료 등은 따로 책정돼 있지 않았다. 음원수익 징수규정 외에 추가 배분하는 내용은 있었다. 식사의 경우 코로나 시국이다 보니 제작진이 최소화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오디션 프로그램 특성상 제작진들은 지원자들이 돋보이는 무대 연출과 최고의 심사위원 섭외에 집중하는 추세"라며 "출연자 대우 관련 지적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고, 내부에서 다시 검토해 볼 예정"이라고 전했다.

송인효 아버지의 말처럼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자 대우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불합리한 '푸대접'이 그야말로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는 이야기다.

TV조선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 역시 지난해 3월 불공정한 출연계약서로 구설에 올랐다. 당시 한 매체가 입수한 출연계약서를 보면 방송사 편의에 치중된 독소 조항들이 존재했다. TV조선은 회당 10만원 출연료를 지급했지만 본선 이상 선발된 출연자들에 한정됐고, 계약해지와 별개로 출연자들에게 1억원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토록 했다.

갑질 계약 논란에 휩싸이자 TV조선은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유사한 출연계약이며 사전에 법률 자문을 받아본 결과 특별히 불공정하다는 의견은 없었다"면서 "출연자들과 사전에 합의된 사항이고, 출연진 역시 적극 동의했다"고 알렸다.

TV조선 입장에서 보듯이 결국 절박한 출연자들의 동의를 앞세운 이 같은 계약서가 업계 '표준'인 현실이다. 이후에도 개선 없이 문제가 고착화 되면서 방송사들은 꿈을 향한 출연자들의 열망을 취약점 삼아 수익 창출에 '악용'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관계자는 29일 CBS노컷뉴스에 "방송사들 입장은 일관된다. 오디션 프로는 기회를 주는 것이지 노동에 따른 대가를 받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며 "선발부터 크게는 그룹 구성까지 절대권한을 가진 방송사들이 이런 관행을 만든 셈인데 이는 너무 사람을 쉽게 쓰는 행태이고 글로벌 스탠다드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방송사는 제작비 한계를 강조하지만 '포커스' 같은 실험적 프로그램 외에도 동일하게 이런 불공정·갑질 계약 문제가 불거진 지점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이 관계자는 "방송사가 아무리 비용을 쓴다 하더라도 이건 일종의 투자다. 결국 음원이나 '미스터트롯' '미스트롯' '프로듀스 101' 등처럼 독점 계약을 통한 활동 수익에서 이를 회수하는 방향을 추구한다"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를 끌 때도 이런 관행이 문제가 됐지만 이를 개선하기 보다는 유리한 기획을 꾸리는 데만 힘썼다"고 짚었다.

더이상 '열정페이'가 용인되지 않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방송사도 변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일반인 출연자들은 단역 배우들이나 프리랜서 스태프보다 더 애매한 영역에 있고, 특히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취약한 아동·청소년 출연자들이 많아 촘촘한 제도 보완이 동반돼야 한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관계자는 "일반인 출연자는 근로 형태도 그렇고,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이나 이익집단이 있는 것도 아니라 애매한 영역"이라며 "근로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받도록 현재 미비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지금은 처벌 조항이 없어 거의 권장이나 다름없다"고 전했다.

이어 "무엇보다 아동·청소년 오디션 출연자들에 대해서는 용역료를 출연료에 준하는 수준으로 주도록 해야 한다. 방송사들도 더이상 땜질식 처방으로 문제를 방치하지 말고 CJ ENM 등 오디션 프로그램 선도 기업들이 먼저 나서서 업계 표준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순환은 계속된다"고 조언했다.

'다시, 보기'는 CBS노컷뉴스 문화·연예 기자들이 이슈에 한 걸음 더 다가가 현상 너머 본질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발빠른 미리 보기만큼이나, 놓치고 지나친 것들을 돌아보는 일은 우리 시대의 간절한 요청입니다. '다시, 보기'에 담긴 쉼표의 가치를 잊지 않겠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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