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랭킹 뉴스

[안보열전]초유의 육군참모총장-주임원사 갈등 본질은 '갑질' 문제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남영신 총장 발언 살펴보니…열악한 부사관 처우 자세히 언급
'병영문화 혁신' 언급하며 한 말이 '인격권 침해'로 인권위 제소
곪아 터진 장교-부사관 악감정…"장교 갑질" vs "부사관 하극상"
예비역 장군 "부사관들의 恨 생각해야…대우와 언어 개선 필요"
계급은 지휘체계 위한 것이지 인격에 선 긋기 위한 제도 아냐

※튼튼한 안보가 평화를 뒷받침합니다. 밤낮없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치열한 현장(熱戰)의 이야기를 역사에 남기고(列傳)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남영신 육군참모총장. 윤창원 기자

 

지난해 12월 24일, 육군의 최선임 부사관인 주임원사들이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남 총장이 사흘 전 화상회의에서 "장교가 부사관에게 존칭을 쓰면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였는데요. 이 사건이 지난 16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남 총장의 발언에 대한 적절성과 함께, 지휘관인 장교와 전문가인 부사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당시 화상회의에서 남 총장이 발언한 내용을 입수해 이를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또한 5명 이상의 전직 장교와 현역 부사관들에게도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 결과는 당초의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이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존댓말과 반말의 문제라기보다는 군 내에 만연한 '갑질'이었다는 것이죠.

◇ "장교들이 부사관 혹사시켰다"면서도 "부사관들이 더 잘해야 한다"는 참모총장

취재진이 입수한 발언 내용에 따르면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은 문제의 12월 21일 회의에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부사관이 없었다면 총장은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돌이켜보면 장교들이 부사관들을 너무 혹사시켰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며 부사관들의 처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가 강조한 것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전장을 주도하는 부사관이 돼야 한다"며 부사관이 '전문가'이자 '장병 기본훈련의 박사'가 돼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는 "부사관이 하사 때 어떤 것에 대한 수준이 B였다면 중사는 A, 상사는 A+가 돼야 하는데 자꾸만 퇴보한다"며 "예를 들어 태권도나 체력도 진급할수록 수준이 내려간다. 하사 때는 허리가 30인치였다면 상사 때는 36인치가 된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체력검정 제도를 특급, 합격, 불합격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는데 합격은 (현행 체력기준의) 1급 수준이고, 2회 연속 불합격하면 군에 있을 가치가 없다"며 "(부사관) 부하가 전입을 오면 3개월 내 교관화를 시켜 장병 기본훈련의 박사로 만들어야 하며, 총장 지도방문시 불시에 테스트를 했는데 불합격하면 부대의 부사관 능력이 저조하다고 평가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군대에서 장교는 부대의 작전을 지휘하고 통제하며 이끌어가는 기간(基幹)의 역할을 맡습니다. 반면 부사관은 장교들이 할 수 없는 전문적인 영역을 담당하기 위해 한 부대에 오래 머무르며 장교들을 보좌합니다.

여기에 입각해 남 총장의 발언을 해석해 보면, 이런 '전문적인 영역'들을 현재 부사관들이 잘 하고 있지 못하다며 체력 관리와 전문영역 발전에 힘써야 한다는 뜻으로 읽혀집니다.

◇ "장교들이 부사관들 수고 당연하게 여긴다…궃은 일하는 정당한 대가 요구해야"

세 번째로 남 총장은 '장교와 병, 국민과 군,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연결자의 역할'을 강조하며 '부사관은 부대의 주인'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장교가 부사관을 이용하기 위한 나쁜 말"이라면서요. 왜일까요?

그는 "전 부대원이 부대의 주인인데 왜 부사관들에게만 책임을 지우나"며 "예를 들어 부대에서 사망사고가 나면 부사관단이 가서 궂은 일을 하는데, 이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장교들이 고마움을 모른다"고 일갈합니다. 거칠게 표현하면, 장교들이 부사관의 수고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궂은 일을 떠넘겼다는 의미죠.

남 총장은 "궂은 일을 할 때는 주임원사들이 지휘관에게 (필요한) 돈을 달라고 해야 하고, 노고 역시 치하를 받아야 하며 일을 했으면 분명히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부사관들의 대표인 주임원사에 대해 "지휘관들이 주임원사의 권위를 지켜줘야 한다"고도 덧붙이는데요, 이는 장교들에 대한 메시지로도 읽혀집니다. 즉, 부사관들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지휘관들에게 지시한 셈이죠.

◇ "부사관 병영문화 혁신 필요"…바로 뒤 "장교 존중해야 존중받는다" 발언 문제 돼

문제가 된 부분은 제가 아직 언급하지 않은 두 번째 부분입니다. 남 총장은 부사관이 '병영문화 혁신의 리더'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부사관들의 병영 문화에 아직 전근대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을 안타까워한 듯합니다. "자율이 통제되고 억압적인 문화 때문에 부사관들이 경찰과 소방관이 되려고 한다"고 언급하며, "퇴근 후의 독신숙소를 보면 중사가 하사를 집합시키고 임관 기수에 따라 교육을 시키며 강제로 술을 먹인다"고요.

남 총장은 이를 "주임원사가 행정보급관에게, 행보관은 선임부사관에게 독신숙소 관리를 잘 하라고 하는 시스템" 때문이라며 "하사는 간부이기에 어릴 때부터 자율과 책임을 가르쳐야 하며, 업무 시간 외에는 자율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 발언 직후에 이어진 이야기가 문제가 됐습니다. 그는 "소위를 존중해야 하며 장교를 이기려고 하면 안 되고, 나이로 군 생활을 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어 "나이 어린 장교가 나이 많은 부사관에게 반말을 쓴다고 항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장교가 부사관에게 존칭을 쓰는 문화는 대한민국 이외엔 없기에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고, 장교를 존중할 때 여러분(부사관)이 대우받을 수 있다"고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경험이 적다고 상관을 무시하면 안 되고, 존중받고 싶다면 장교를 존중하며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이죠.

이 자리에 참석했던 주임원사 가운데 몇 명은 회의 3일 뒤인 지난해 12월 24일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합니다. 남 총장의 발언으로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는 이유입니다.

◇ 계급은 장교가 높지만 "장교들 처신 문제" 지적하는 부사관들

사실 장교와 부사관의 관계를 살펴보면 계급상으로는 분명히 장교가 우위에 있습니다. 군 생활을 30년 넘게 한 원사보다는 임관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소위가 계급이 더 높습니다. 부대를 지휘하는 사람은 장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네가 주임원사인가?'라는 유명한 말처럼, 소위가 주임원사를 마구 대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주임원사는 신참 소위의 삼촌 또는 아버지뻘 나이인데 그러한 부사관들에게 반말부터 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정서와 동떨어진 일이죠.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장교들이 "~요"라는 표현을 써서 부사관들과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신분간의 갈등이 없을 리 없습니다. 취재진과 접촉한 현역 부사관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장교들에게 서운함이 있었습니다.

한 현역 중사는 "발언의 앞뒤 맥락을 볼 때 남 총장이 틀린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고 언급합니다. 그러면서도 "장교는 1~2년마다 직책이 바뀌고 부사관은 한 자리에서 최소 몇 년씩 일하면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위치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장교가 부사관에게 반말부터 하면서 의견도 구하지 않고 생각대로 명령만 하면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덧붙입니다.

또다른 현역 중사는 "이번 사건의 본질은 존댓말과 반말이 아니라 장교-부사관의 처우 차별 등에 대한 문제다"며 "'부사관은 4년제 대학도 못 나온 무식한 사람들'로 치부하며, 권한만 강조하고 책임은 나몰라라 하는 일부 장교들의 처신 등이 이런 사태를 만든 현실이다"고 강조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나이 문화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을 수도 있지만, 이런 반응을 보면 꼭 나이 때문에 생긴 문제만은 아닌 듯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장교와 부사관이 상호존중을 해야 하는데 실제론 부사관이 장교를 일방적으로 존중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뜻입니다.

◇ 장교들 "막말하는 부사관들에게 시달리기도"…곪다가 터진 장교-부사관 악감정

그런데 장교라고 부사관들에게 서운함이 없느냐면 또 그렇지는 않습니다. 취재진과 접촉한 장교 출신들은 공통적으로 초임 시절 나이 많은 부사관들이 자신을 마구 대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곤 했습니다.

한 예비역 소령은 "중위 시절 주임원사가 다 들리게 막말을 해서 존댓말로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오히려 반말로 맞서려고 하길래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요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일선 부대에선 대부분은 잘 지내는 추세"라면서도 자신의 경험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또다른 예비역 소령은 "뒤돌아보면 친형 같은 부사관들도 있었으며 부사관들을 마구 대하는 장교 선후배들도 많았고, 때로는 중사나 하사들이 계급장을 떼고 덤벼서 맞서 싸운 적도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주임원사들의 마음에 얼마나 울분이 많이 쌓였을지 이해는 되지만, 같은 논리라면 (나이 많은) 병사들이 (초임 부사관들에게) 항명하는 경우도 늘어날 것 같다"고 걱정합니다. 장교가 나이 많은 부사관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부사관들도 장교를 존중해야 지휘체계의 영이 제대로 서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는 얘깁니다.

◇ 예비역 장군 "부사관들의 恨 생각해 봤나…장교가 책임이 크니 장교 책임"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장교는 부사관에게 갑질을 했고, 부사관들은 하극상을 했던 셈이 됩니다. 그러면서 서로를 향한 감정은 더 악화돼 갔는데, 한 예비역 장군은 이를 또다른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특전사령관을 지냈던 전인범 예비역 중장은 이번 일 직후 "인권위에 진정을 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동안 부사관들의 한을 생각해 봤는가"라며 장교들이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부사관들에게 잔심부름 시키고 후배들 앞에서 막말하고, 머슴처럼 부리는 장교들의 반성과 재탄생의 기회가 돼야 한다"는 얘기죠.

그는 구체적으로 장교로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과거 주임원사는 권한은 커녕 잔심부름하는 존재였고, 잔일은 행정보급관의 몫이었으며 예산은 없고 지시만 있는데, 재수없이 걸리면(사건에 휘말리면) 군 생활이 끝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병사들은 부사관을 경멸하고, 장교들은 못 본 척하며, 젊은 부사관들도 선배를 창피해하고 무시하는데 여기에서 얼마나 개선됐나"며 "이런 배경에선 부사관들이 예민할 수밖에 없고, 의견을 외부에 던진 것이 아닌가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부사관들의 열악한 처우에 겹쳐 장교들의 '갑질'까지 이어져 온 끝에 문제가 터졌다는 겁니다.

전 장군은 "부사관의 역할에 맞는 여건을 마련하고, 주임원사는 부사관 중의 부사관이기에 부대의 얼굴이며 지휘관 다음 가는 대우를 해야 한다. 물론 주임원사는 겸손해야 한다"며 "장교가 부사관을 부를 때도 호칭에는 '님'자를 붙이지 않되, 대화는 경어를 쓰는 식으로 호칭과 대화를 분리해서 자연스러운 군대 문화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통화에서 "이번 문제는 쌍방 과실이지만 군대에서는 부사관보다 장교의 책임이 크다. 그러므로 장교의 책임이다"며 "문제가 있으면 고치는 것도 장교, 이해시키는 것도 장교"라고 이야기합니다. 장교는 책임을 지기 때문에 이번 문제를 해결하는 임무도 장교에게 있다는 겁니다.

◇ '군복 입은 시민'이기에 서로를 시민으로 존중해야

언론 보도 뒤 육군은 "남 총장이 회의 때 강조한 전체 내용과 발언의 전후 맥락을 보지 않고 취지와 진의가 왜곡됐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발언의 전체 내용을 보면 그렇게 된 면도 있어 보이지만, 지금까지의 장교-부사관 관계가 마냥 바람직하게 흘러왔다고만 보기도 어렵습니다. 여론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된 국방부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국방부 부승찬 대변인은 지난 18일 정례브리핑에서 "각 군과 논의 하에 우리 군의 중추인 장교와 부사관의 역할과 책임을 더욱 명료하게 정립해 나가겠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그러한 해결책이 만들어지고 정착되는 데는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겠습니다.

군대는 계급으로 움직이지만, 이는 지휘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만든 제도입니다. 군인은 군인이기 이전에 사람이며, 계급은 인격에 선을 긋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군인은 '군복 입은 시민'이기에 서로를 시민으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잘못된 말인가요. 이번 일이 전근대적이었던 군의 문화를 개선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으면 합니다.

0

0

오늘의 기자

실시간 랭킹 뉴스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