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지난 3일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과 관련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새해 초 '이명박·박근혜 사면론'을 띄웠던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일단 한발 물러섰다. 당사자의 사과가 전제되지 않은 사면은 시기상조라는 당 안팎의 비토론에 결국 추가적인 '의견수렴'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 최고위원들은 3일 국회에서 비공개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표면상으로는 새해를 맞아 처리해야 할 주요 입법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지만, 사실상 이 대표의 '사면' 발언에 대한 배경 설명과 다른 지도부들의 의견 개진을 위한 회의였다.
오후 2시에 시작된 이날 간담회는 1시간 30분여에 걸쳐 진행됐다.
이 대표의 설명 후 이어진 최고위원들의 의견 개진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여한 한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 대표께서 최고위원 한 분 한 분의 의견을 모두 경청했다"며 이 대표가 상당한 시간을 의견을 듣는 데 할애했다고 설명했다.
비공개 최고위 참석하는 최인호 수석대변인. 연합뉴스
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최고위는 간담회 결과 △이 대표의 발언이 국민 통합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됐고 △사면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 국민 공감대와 당사자의 반성이 중요하며 △촛불 정신을 받들어 개혁과 통합을 함께 추진하는데 공감하는 등의 단일한 메시지를 내놨다.
이 대표의 발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여권 내부는 물론 상당수 지지자들까지 반발하는 등 반대 여론이 강한 만큼 당분간 사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뜻이 모아진 것.
사면 카드를 꺼낸 지 불과 며칠만에 다시 거둬들여야 하는 이 대표로서는 이번 최고위의 결정에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윤창원 기자
지난해 8월 말 당대표 취임 이후 '직분론'과 '엄중함'을 강조하며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 표명에 신중했던 이 대표가 모처럼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일종의 승부수를 띄웠지만 곧바로 스텝이 꼬여버렸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우상호 의원 등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여권 인사의 대부분이 사면에 반대 의견을 낸 점도 이 대표에게는 아쉬운 지점이다.
여기에 대선 국면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대권 경쟁자 중 한 명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나까지 입장을 밝히는 것은 사면권을 지닌 대통령께 부담을 드리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입장을 유보, 논란을 피해감과 동시에 사면 반대론이 강한 친문 지지층을 껴안는 전략을 택했다.
다만 이 대표가 사면을 언급한 것이 대권 주자로의 독자적 행보에 나선 것이 아니라, 문 대통령 대신 총대를 멘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 시위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황진환 기자
촛불 혁명에 힘입어 대통령이 된 문 대통령의 부담을 덜기 위해 스스로 고역을 자청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박수현 홍보소통위원장은 "전직 대통령의 사면은 하든 안 하든, 임기 내이든 다음 정권으로 넘기든 모두가 문재인 대통령의 피할 수 없는 '정치적 운명'"이라며 "이낙연 대표 역시 임기 내에 이 문제를 처리하든 아니면 '고의4구'를 던져 다음 대표에게 짐을 미루든 선택해야 한다. 민주당과 이 대표에게도 사면 문제는 '운명'"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긴급간담회 후 '사면과 관련해 청와대와 일정 부분 교감을 하셨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그런 일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민주당 최고위의 신속한 대처로 사면론과 관련한 여권 내 논란은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겠지만, 관련 논의는 조만간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오는 14일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한 대법원 재상고심 판결이 예정돼 있는 데다, 그 이후에 있을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때도 이 문제와 관련한 질문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일단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려보겠다"며 판결에 다른 여론의 추이와 박 전 대통령 측의 사과 여부 등에 따라 다시 사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