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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로 시작해 '코로나'로 끝난 영화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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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연말정산 ④]'기생충'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 등 4개 부문 수상
非영어권 영화 첫 아카데미 작품상…오스카 '최초' 기록 써 내려가
봉준호 감독으로 포문 연 한국 영화계, 지구촌 휩쓴 코로나19로 '마비'
관객수·매출 등 2004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이래 최저치
영화 개봉 연기·영화제는 온라인으로…신작 영화 OTT로 직행하기도
위기 속에서도 여성·신인 감독 활약 돋보여
"감독들, 극장에 올 수밖에 없는 콘텐츠 만들어낼 것"

올 한 해 문화연예계는 코로나19와 분투를 벌였습니다. 대중과 직접 맞닿아 소통해 온 만큼 어느 분야보다 타격이 컸습니다. 그 혼란 속에서도 코로나 이후 시대를 향한 밑거름을 뿌렸습니다. 엄혹한 현실을 굳은 의지로 낙관하며 헤쳐 온 2020년 문화연예계를 돌아봅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코로나19라는 다이너마이트, 가요계 어떻게 바꿨나
②코로나19로 신음한 공연계…온라인 공연, 새 활로 될까
③#넷플 #非지상파 #트로트…방송가 팬데믹 '전세역전'
④'봉준호'로 시작해 '코로나'로 끝난 영화계
<계속>

 

2020년 영화계의 시작과 끝을 정의하는 단어는 바로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 그리고 '코로나19'다.

봉준호 감독 작품 '기생충'이 올 초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문을 휩쓸며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영화계에 놀라움을 선사했다. 그러나 곧 이어진 코로나19라는 새로운 감염병 앞에 전 세계가 위기에 봉착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과 '현장'으로 이뤄진 영화계는 사실상 마비됐다.

그러나 위기와 절망 속에서도 한국 영화의 미래는 이어지고 있다. 여성 감독과 신인 감독들이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희망을 그려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당시 봉준호 감독의 모습(사진 왼쪽)과 영화 '기생충' 포스터. (사진=방송화면 캡처, CJ ENM 제공)

 

◇ 봉준호 감독 그리고 '기생충'…세계 영화사를 다시 쓰다

최초, 최초, 최초.

올해초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은 오스카 주요 부문을 휩쓸며 한국은 물론 세계 영화사를 다시 썼다.

지난 2월 1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영화상 등 총 4개 부문에서 '최초' 기록과 함께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로 오른 '기생충'은 비(非)영어권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수상하기는 101년 역사상 처음이며, 아시아 영화가 각본상을 탄 것도 92년 오스카 역사상 '기생충'이 최초다. 또한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탄 작품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것도 1955년 미국 델버트 맨 감독의 '마티' 이후 무려 65년 만이다.

아카데미 감독상은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이 할리우드 제작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2012), '브로크 백 마운틴'(2005)을 통해 아시아 감독으로서 수상한 사례는 있지만, 순수 아시아 영화로 감독상을 받은 것은 '기생충' 봉 감독이 최초다.

'기생충' 제작사 곽신애 바른손E&A의 대표는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이 이뤄졌다. 정말 기쁘다"며 "지금 이 순간에 뭔가 굉장히 의미 있고 상징적인,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인 기분이 든다"고 소감을 전했다.

오스카 이후에도 봉 감독은 업적을 인정받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하는 '2020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아티스트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3월 18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이 한산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 '연기' '최저' 'OTT'…코로나19에 영화계 마비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으로 새로운 미래를 발견한 한국 영화계는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전무후무한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영화진흥위원회 코로나19 전담 대응 TF가 파악한 '코로나19 영화 제작·개봉 피해실태'에 따르면 △투자 취소·중단 △국내외 로케이션 장소 취소로 인한 추가 세트 제작·스튜디오 임대·CG 추가 △일정 지연에 따른 배우·스태프 인건비 증가 △개봉 연기·취소에 따른 P&A(홍보비) 매몰·추가와 후반 작업 기간 연장 등 영화 제작부터 상영까지 전반에 걸쳐 피해가 나타났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며 영화 개봉이 연기되고 극장을 찾는 관객들 발길이 줄어들었다. 관객 수, 매출 등 모든 부문에서 2004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이후 최저치 기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진=영화진흥위원회 제공)

 

영진위가 지난 14일 발표한 '코로나19 충격: 2020년 한국영화산업 가결산'에 따르면 12월 매출액 추정치 123억원을 더한 2020년 극장 총매출액은 전년 대비 무려 1조 4037억원 감소한 5103억원으로 추정된다. 영화산업 주요 부문인 극장, 디지털 온라인 시장, 해외 매출을 합산한 올해 추산액 역시 약 9132억원으로 1조원을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영화들의 극장 개봉이 어려워지며 모두가 힘든 상황에 놓였다"며 "내년에는 많은 영화가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서 전에 없던 풍경도 생겨났다. 극장에서는 좌석 띄어 앉기와 전자출입명부(QR코드 체크인) 인증이 일상화됐다. 영화 제작발표회와 인터뷰도 온라인을 통해 이뤄졌다.

영화제의 '온라인화'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변화 중 하나다. 전주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 국내 주요 영화제는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영화제'를 선택했다.

극장 개봉 없이 넷플릭스로 직행한 영화들. 사진 왼쪽 위부터 순서대로 '사냥의 시간' '콜' '승리호'. (사진=넷플릭스 제공)

 

개봉 연기를 거듭하던 몇몇 신작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라는 새로운 살길을 찾아 나섰다.

한국 영화 최초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섹션에 초청돼 호평을 받은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은 극장 개봉 없이 넷플릭스로 직행하며 'OTT 행'의 포문을 열었다. 이후 '콜'(감독 이충현)과 '차인표'(감독 김동규)도 넷플릭스 공개를 결정했다.

그중 가장 큰 충격을 던진 건 제작비 240억원을 투입한 대작 '승리호'(감독 조성희)다. 한국 최초 우주 SF 영화이자 2020년 텐트폴(라인업에서 가장 흥행 가능성이 큰 영화 혹은 성수기 대작 영화) 중 하나였던 '승리호'가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로 갔다.

'콜'의 이충현 감독은 "지금 당장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지만 앞으로 OTT와 영화의 경계가 많이 사라질 거라 생각한다"며 "OTT를 통해 확보한 콘텐츠 다양성이 향후 극장과 상호작용해서 극장 역시 다양성이 확장될 거라 본다"고 전망했다.

(사진=각 배급사 제공)

 

◇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여성·신인 감독 활약 빛난 2020년

비록 코로나19로 영화계에 유례없는 위기가 닥치며 암울한 상황에 놓였지만, 그 속에서도 여성 감독과 신인 감독들이 이뤄낸 성과는 빛났다.

영진위는 '2020년 8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서 "여성 감독들의 데뷔작이 분전을 펼치면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메말랐던 극장가에 단비가 됐다"고 평했다.

지난해 '메기' 이옥섭 감독, '벌새' 김보라 감독, '우리집' 윤가은 감독 등에 이어 올해도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초희 감독,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감독, '69세' 임선애 감독, '디바' 조슬예 감독,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웰컴 투 X-월드' 한태의 감독, '내가 죽던 날' 박지완 감독 등 여성 감독들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 영화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감독들의 첫 장편 데뷔작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2020년은 신인 감독들이 첫 장편을 통해 두각을 드러낸 해이기도 하다.

이밖에 '#살아있다'(감독 조일형) '결백'(감독 박상현) '야구소녀'(감독 최윤태) '콜'(감독 이충현) 등도 신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소설 '아몬드'의 작가 손원평은 '침임자'로, 배우 정진영은 '사라진 시간'으로 감독 신고식을 치른 점도 눈길을 끈다.

이들을 통해 본 한국 영화의 미래는 여전히 큰 가능성을 품고 있다. 윤제균 감독은 지난 5일 충무로영화제 디렉터스 위크 '코로나 시대 감독살이' 토크에서 "한국 감독들의 능력을 믿는다. 감독들은 극장에 올 수밖에 없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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