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그날 하루는 아무 일도 못 하고 고객님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마음을 졸였어요. 며칠간 방문했던 다른 고객들에게 제가 코로나를 퍼뜨린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등 가전제품 점검 업무를 하는 고수진(49)씨는 이달 초 방문했던 집의 고객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 대상자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종일 노심초사하던 고씨는 해당 고객이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야 비로소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고씨는 21일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라며 "최소한 고객의 자가격리 여부라도 미리 직원들에게 안내가 된다면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줄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연일 1천명을 넘는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면 서비스가 불가피한 방문점검 노동자들의 감염방지 대책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고객 중 자가격리 대상자가 있어도 아무런 정보를 받을 수 없는 데다, "내 집인데 왜 마스크를 써야 하냐"며 민얼굴로 점검원을 맞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고 하소연한다.
가스안전 점검원 김효영(51)씨는 "점검원들 입장에서는 마스크를 써달라고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보통 하루에 100가구가 넘는 집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혹시 뭔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했다.
김씨는 "회사의 방역 대책이라고는 품질이 떨어지는 중국산 덴탈마스크를 지급하는 것뿐"이라며 "하는 수 없이 개인적으로 KF94 마스크를 사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방역 지침과 무관하게 대면 업무량이 전혀 줄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인터넷·TV설치 기사인 심모(55)씨는 "긴급 업무를 제외하고는 고객과 협의해 연기가 가능하다는 게 회사 방침이지만 현장에선 적용되지 않는다"며 "이미 접수된 일정을 미루게 되면 고객에게서 항의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김효영씨도 "서울시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는 이달 28일까지는 가스검침 업무를 중지하라는 공문이 왔는데도 원청에서는 실적 운운하며 실점검을 계속하라고 한다"고 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객과 점검원이 서로를 경계하게 되는 상황 자체가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입을 모은다.
김씨는 "가끔 점검하러 가면 '당신들이 돌아다녀서 문제가 되면 책임질 거냐'며 막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너무 속상하다"며 "속된 말로 총알받이가 된 기분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고수진씨는 "몇 달 전만 해도 점검원이 방문하면 등이 젖을 정도로 몸에 직접 소독제를 뿌리는 분도 계셨다"며 "병균 취급을 당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워 쉽게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고씨는 "방역 책임을 방문노동자 개인에게 전가하는 상황에 답답할 때가 많다"며 "확산세가 심각할 때만이라도 서비스를 일시 중단하는 등 회사 차원에서 구체적인 대비책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