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네 이야기로 인생을 채워"…뮤지컬 '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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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유작 반환 소송 실화 모티브
지난해 각종 상 휩쓸며 1년 만에 재공연
78세 여성 에바 호프가 자아 찾아가는 과정 담담히 그려

(사진=알앤디웍스 제공)

 

"내가 아닌 너의 이야기로 네 인생을 채워."

지난 19일 개막한 창작뮤지컬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이하 '호프')은 78세의 에바 호프를 전면에 내세운다. 화려한 볼거리 대신 호프가 천천히 자기 삶을 찾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기존 뮤지컬 흥행 공식에서 벗어나 있지만 '호프'는 지난해 초연 당시 높은 완성도로 각종 상(한국뮤지컬어워즈 8관왕·예그린뮤지컬어워드 3관왕)을 휩쓸었고 1년 만에 다시 관객을 만났다.

'호프'의 힘은 설득력 있는 서사에 있다. 극중 호프는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을 상대로 현대문학 거장 '요제프 클라인'의 미발표 원고 소유권을 둘러싸고 소송 중에 있다. 8세 때 처음 원고를 마주한 후, 그는 원고로 인해 엄마의 사랑을 빼앗기고, 연인에게 배신당한다. 주변에선 원고에 집착하는 호프를 보고 "미친X"라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부여 잡은 원고를 놓을 생각이 전혀 없다.

이 작품은 프란츠 카프카의 유작 반환 소송 실화를 모티브 삼았다. 카프카는 죽기 전 친구이자 작가인 막스 브로트에게 미발표된 자신의 원고를 태워달라고 유언했다. 그러나 브로트는 유언을 따르지 않고 카프카의 원고 일부를 출판했다. 브로트가 죽으면서 원고는 그의 비서인 에스더 호프가 소유하게 됐고, 다시 딸 에바 호프에게 건네졌다. 이후 이스라엘 국립도서관과 에바 호프는 카프카의 원고를 놓고 소송전을 벌였다.

호프는 왜 그토록 원고에 집착했을까. 극은 호프의 인생을 압축해서 보여주면서 원고가 그에게 인생의 전부가 된 이유를 담담히 들려준다. 그리고 호프가 원고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끝맺는다. 골똘히 무대를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관객들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진 것도 이 무렵이다.

호프가 전면에서 극을 이끈다면 'K'는 눈에 띄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극중 K는 미발표 원고를 의인화한 캐릭터로, 공연 내내 무대 위에서 호프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한다. 극이 끝날 때쯤, 8세 어린이가 78세 노인이 될 때까지 호프의 70년 인생 여정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K는 호프에게 나지막이 말한다. "내가 아닌 너의 이야기로 네 인생을 채워." 이 장면에서 관객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에바 호프는 김선영과 김지현이 번갈아 맡는다. 초연 멤버인 김선영은 이 작품으로 지난해 예그린뮤지컬어워드와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김지현은 일본 극단 '사계'(四季)' 한국인 최초 수석 배우 출신으로,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이후 8년 만에 한국 무대에 선다. K는 초연 멤버 고훈정·조형균에 김경수가 가세했고, 과거 호프 역은 최서연, 이예은, 이윤하가 연기한다.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내년 2월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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