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일간의 조난 사투, '격렬비열도'에서는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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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격렬비열도'_김정섭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대학원 교수

신간 '격렬비열도'의 저자인 김정섭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대학원 교수(사진=김정섭제공)
1978년 크리스마스 무렵,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울 돈을 벌 요량으로 약초를 캐러 갔던 태안 주민 12명이 충청남도 태안군의 동격렬비도에서 조난당해 무려 44일동안 추위와 배고픔, 두려움에 맞서야 했다. 이들은 자연에서 먹을 것을 구하고, 절벽 틈에서 생명수를 얻고, 서로를 보듬으며 섬에서 버텼다. 이들을 데려오기로 한 배의 선주가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배를 팔아버린 탓에 12명은 꼼짝없이 섬에 갇혀 버리게 된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모두 구조되었지만, 등대수에 의해 ‘간첩’으로 오인 신고되어 참극의 주인공이 될 뻔했고, 구조돼 경찰 수사를 받다 이 사고가 꾸며낸 ‘조난 가장극’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직접 수사한 서산경찰서와는 달리 충남도경이, 이들을 섬에 데리고 간 약초상과 40여일 후 섬에 조난자들이 있는 것을 발견한 등대수가 짜고 벌인 '조난 자작극'이라는 중간 수사 발표를 해 혼란이 있기도 했다. 혼란스러웠던 당시 사회상 때문이었다.

바로 이 섬, 격렬비열도의 비사(秘史)에는 깜짝 놀랄 만한 ‘엄청난 사건’이 숨어 있다. 운이 나빴지만 결과적으로는 다행스럽고 휴머니즘을 자아내며 잘 마무리된 우리나라 초유의 무인도 최장기 조난 참사다. 안면도 주민 12명이 예정된 섬 생활 25일과 조난 기간 19일을 합쳐 혹한의 겨울에 무려 44일간 섬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건이다.
_ 168쪽, 8장


“12명 전원 구조!” 출항 직전 경비정 지휘관이 타전한 보고 내용이다. 약초꾼 일행은 물론이고 해경 대원들에게도 쾌거의 순간이었다. 해경 경비정은 이들을 태우고 2월 7일 오후 7시 동격렬비도를 출발해 군산항으로 향했다. 이어 6시간 10분간의 긴 항해 끝에 8일 한밤중인 오전 1시 10분에 부두에 도착했다. 약초꾼들은 굶주림과 피로에 지쳐 매우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감은 감출 수 없었다. 군산항 부두에는 신문사, 방송사의 기자들이 떼로 몰려 있었다. 기자들이 요청하자 거리낌 없이 힘껏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배에서 내렸다. 이들이 귀환하는 모습은 기자들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히거나 찍혀 방송으로, 신문으로 전국에 보도되었다. 이정호 씨의 아내 김효순 씨는 너무 쇠약해져 부축을 받으며 내릴 정도였다.
_ 176쪽, 8장


신간 ‘격렬비열도’(한울아카데미)에는 당시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무사 귀환한 김동익씨, 목격자 김귀동씨, 당시 이 사건을 취재한 기자 조희곤씨를 인터뷰해 사고를 생생히 담아냈다. 김동익씨는 “이 섬에서 좋은 경험을 했고 그 이후에도 인생을 살아갈 때 많은 생각의 씨앗을 제공해 준 섬”이라며 “무려 12명의 귀한 목숨을 살려서 무사히 집으로 보내준 고마운 섬”이라고 했다.

‘격렬비열도(格列飛列島)’는 충청남도 태안군 안흥항에서 서쪽으로 5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섬으로, 암초 9개, 큰 섬 3개인 북격렬비도, 동격렬비도, 서격렬비도를 포함해 12개로 구성돼 있다. 우리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영해의 기점 가운데 하나로 흔히 ‘서해의 독도’로 불리는 곳이다. 최근 해양수산부의 ‘2030 항만정책 방향과 추진전략’ 및 ‘제4차 국가 항만기본계획’에 국가관리 연안항 지정이 반영돼 관심이 더 커지고 있다.


신간 ‘격렬비열도’는 이 섬에 숨겨진 문화, 관광, 역사, 생태, 안보 콘텐츠를 심층적으로 탐구한 국내 최초의 연구서다.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 등 한문으로 기록된 옛 문헌에서 현대 문헌에 이르기까지 자료조사를 하고 연관 논문, 연구서 등을 분석한 뒤 현장 조사에 착수해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생생한 정보를 수집하는 등 2년 동안의 연구를 거쳤다. 저자인 김정섭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산업예술대학원 문화산업예술학과 교수는 격렬비열도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어 안면도와 가의도 등 주변 섬을 찾아가 격렬비열도를 잘 아는 나이 드신 분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었다.


1장에서는 격렬비열도의 현황과 소유주와의 인터뷰를 실어 섬의 위상을 담았다. 2장에서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섬, 격렬비열도의 탄생과 내력을 다뤘다. 3장에서는 격렬비열도가 위치한 환황해권의 문화 교류의 역사를 보여준다.

4장에서는 해상무역의 뱃길이 이어졌던 조운선 운송로와 500년간의 운하 논쟁을 다룬다. 5장에서는 격렬비열도 해역에 얽힌 영토 전쟁, 안보 부문을 살펴본다. 6장에서는 생태의 보고이자 난대식물의 북한계선인 이 섬의 식생과 자연 환경을 다룬다. 7장에서는 섬 일대의 풍성한 전통문화를 살펴보며 주민들의 염원이 담긴 설화와 민속을 들려준다.

8장에서는 이곳에서 있었던 조난 사건의 시작과 끝을 관련자 인터뷰로 생생히 전하고 9장에서는 시를 통해 격렬비열도의 문학적 이미지를 조명한다. 마지막으로 10장에서는 이 섬을 둘러싼 영토주권 수호와 생태관광 활성화에 대한 전망으로 마무리한다.

저자는 경향신문 기자 출신으로 문화예술정책,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 아티스트 경영 분야 전문가다. 김정섭 교수는 “섬에 관한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연구했다”며 “그동안 아무도 연구한 적이 없는 이 섬의 중요한 가치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국가 관리 연안항이 되면 누구나 섬에 올 수 있는데 그렇게 될 때 이 섬에 대한 충실한 안내서가 될 수 있도록 출간하게 됐다”고 전했다.

기자 출신답게 책에 소개된 40여년 전 조난 사건의 관련자들을 직접 인터뷰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생존자를 찾기 위해 당시 신문기사로 역추적해 마을을 다 뒤지고 인천, 서울 등을 직접 추적한 끝에 당시 20대인 생존자를 만날 수 있었다. 저자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려는 그를 잘 설득한 끝에 생생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이 스토리를 재난 블록보스터 영화로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책에는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 50여점과 도표, 지도 등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신간 '격렬비열도'(사진=한울아카데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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