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차량의 황제주차 논란이 일었던 쪽샘지구 79호분 모습. 사건이 발생하자 당국과 정비업체는 플라스틱 안전펜스 밑에 기둥을 설치해 이동을 막아 놨다(사진=문석준 기자)
경북 경주 쪽샘지구 신라 고분 위에 SUV차량이 주차를 해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경주지역 문화재들이 각종 수난을 겪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문화재 훼손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일 오후 경주시 쪽샘지구 임시 주차장. 쪽샘지구 정비공사를 하면서 경주시가 관광객을 위해 임시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곳이다. 주말에는 수백대의 차량이 이곳에 주차를 한 뒤 인근 첨성대나 동부사적지, 동궁과 월지 등을 찾는다.
흙과 자갈로 이뤄진 임시주차장에서 불과 30여m 떨어진 곳에는 SUV차량의 '황제주차' 논란이 일었던 쪽샘지구 79호분이 있다. 지난 15일 오후 1시 30분쯤 경주에 관광을 온 20대 남성이 자신의 흰색 SUV차량을 고분 정상에 세운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던 문화재다.
79호분은 쪽샘지구에 있는 수십여 개의 고분 중 규모가 가장 작은 편이다. 높이도 10여m에 불과하고 고분 정상까지의 경사도 완만한 편이다.
SUV차량 운전자가 경주시 조사에서 "고분인줄 몰랐다"고 주장하는 이유로 추정된다.
하지만 쪽샘지구 정비공사를 하는 관계자들은 운전자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든다.
경주 쪽샘지구 79호분 위에 세워진 흰색 SUV차량 모습(사진=독자 제공)
79호분 옆과 뒤쪽으로는 철제 펜스를 모두 쳐놨고, 쪽샘지구와 임시주차장이 접해 있는 곳도 플라스틱 안전펜스를 설치해 놨던 만큼 고분인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임시주차장과 바로 인접한 곳에는 발굴공사가 진행 중인 고분도 있었던 만큼 운전자의 해명은 궁색하다고 비판했다.
정비업체 관계자는 "임시주차장과 쪽샘지구를 안전펜스로 나눠놨고 주차장 땅은 자갈이 깔린 반면, 쪽샘지구에는 잔디가 깔려 있다"며 "어린 아이라도 이곳이 고분이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업체 측은 사건이 불거지자 안전펜스 아래에 플라스틱 기둥을 덧대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해 차량의 출입을 차단한 상태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이곳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넓은 쪽샘지구에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현재 추가 훼손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라 고분의 수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6년 전 겨울에는 황남동 고분군에서 한 남성이 눈이 오자 30m 높이의 고분을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장면이 목격돼 공분을 사기도 했다. 수년 전에는 황남동 고분군 잔디밭에서 한 남성이 골프스윙 연습을 해 시민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술에 취한 여대생들이 올라가 사진을 찍오 논란이 일었던 첨성대 모습(사진=문석준 기자)
다른 문화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7년 8월에는 술에 취한 여대생 3명이 국보 제31호인 첨성대에 올라가 사진을 찍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경주시 관계자는 "노천 박물관으로 불리는 경주의 수많은 유적들을 일일이 관리하고 관광객의 발길을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우리 문화재를 보호하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이르면 다음주쯤 SUV차량 운전자를 소환해 조사를 벌인 뒤 처벌여부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