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국립극단 제공)
많은 스포츠 종목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순수한 종목을 하나 꼽으라면? 주저 없이 육상이라고 말하겠다.
육상은 기구나 장비의 도움 없이, 심판의 개입 없이 오로지 자기 몸 하나로 승부한다. 육상 100m가 '올림픽의 꽃'으로 불리는 이유다.
비슷한 이유로, 육상은 10대의 성장통을 담은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육상의 순수함은 10대들의 순수함과 닮았다.
지난달 30일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개막한 신작 청소년극 '발가락 육상천재'는 육상을 소재 삼는다.
작품은 자갈초등학교 5학년 육상부 4인방(호준·정민·상우·은수)의 성장담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육상부에서 1등만 하던 호준이(임모윤)는 정민이(홍사빈)가 전학오면서 2등으로 밀린다. 그러자 인어에게 발가락을 잡아먹히는 바람에 달리지 못한다며 더 이상 달리려 하지 않는다.
호준이는 자신보다 뛰어난 친구가 나타나자 스스로 존재감을 잃었다고 느껴 본인이 우사인 볼트와 친하다며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사진=국립극단 제공)
극은 인어라는 말에 솔깃한 육상부 아이들이 호준이를 앞세워 호준이의 발가락을 잡아먹은 인어를 잡으러 바다로 향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극중 인어(박창욱)는 아이들의 숨겨진 본심을 드러내주는 존재다.
12살 인생에서 경험한 첫 실패와 '넘사벽 존재'의 등장에 좌절감을 느껴 거짓말로 숨으려 했던 호준이는, 인어와의 만남을 통해 남의 등을 보고 달릴 바에야 달리고 싶지 않은 본심을 인정하게 된다.
난 다 이길 수 있다고 기세등등했던 정민이는 사실은 1등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고 고백한다.
3등만 하는 상우(류석호)는 잘하는 애들을 질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내 동메달이 꿈인 사람이 어딨냐며 속내를 표현하고, 등수가 무슨 상관이냐고 했던 만년 꼴찌 은수(김기헌) 역시 나도 가끔 1등이 하고 싶다고 말한다.
네 명의 아이들은 똑같이 인어에게 발가락을 물리고 붕대를 감은 뒤 다시 스타트라인 위에 선다. 이들에게 큰 변화가 일어난 건 아니지만 마음은 한 뼘 성장했음에 틀림 없다.
극본을 쓴 김연주 작가는 "누구나 잘나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다. 그런데 나보다 뛰어난 존재가 나타나면 그때부터 내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말들이 필요해진다. 필요에 의해 뱉어낸 말들에 거짓과 진실이 섞여 난장판이 된다"며 "이 작품은 뭐라도 잡기 위해 한 움큼 쥐어보는 12살 꼼지락거림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청소년극이지만 성인들도 곱씹을 만한 이야기다.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12살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오는 22일까지.
(사진=국립극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