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에 개그우먼 박지선과 그의 모친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국민의 알 권리'는 한 인간의 생명보다 중시될 수 있을까. 지난 2일 모친과 함께 생을 마감한 개그우먼 고(故) 박지선을 두고 조선일보가 '모친 유서'라며 보도한 내용이 또 다른 파장을 낳고 있다.
조선일보는 3일 박지선 모친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 성격의 메모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기사에는 일각에서 추정했던 두 사람의 사망 동기가 있는 그대로 담겼다.
해당 보도를 시작으로 '박지선 유서'는 하루 내내 주요 포털사이트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고, 다수 언론 매체는 이를 인용해 유사한 기사를 확대·재생산했다.
보도를 접한 독자들은 조선일보를 향해 따가운 비판을 쏟아냈다. 당초 경찰에서도 유족의 뜻에 따라 '밝히지 않기로 했던' 유서 내용을 언론이 자의대로 공개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중앙자살예방센터 역시 2일부터 언론사에 '개그우먼 박지선님 사망사건 보도 자제요청' 협조문을 전하면서 "보도 시 자살 방법 및 수단, 유서 내용 언급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실제 유명인의 관련 보도는 우울감을 유발해 똑같은 사망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다.
조선일보 등 주요 매체들이 가입돼 있는 한국기자협회는 이를 우려해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세워 보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2항에는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으며 '자살 동기를 단순화한 보도는 매우 위험하다. 자살은 단순화하기 어려운 복잡한 요인들로 유발된다. 표면적인 자살 동기만을 보도할 경우 결과적으로 잘못된 보도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유사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4항에 따르면 특히 유명인의 자살 보도는 파급력이 커서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2항과 마찬가지로 '유명인의 자살이나 자살시도를 다루는 보도는 모방자살을 초래하는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일보를 비롯한 다수 매체들의 유서 보도는 최소한의 언론 윤리인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알 권리'란 이름으로 타인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관계자는 4일 CBS노컷뉴스에 "같이 지키자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는데 계속 무시하는 건 비윤리적이고 '저질적' 행태"라며 "규모 면에서도 그렇고, 스스로 정론지를 자부하는 언론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를 그렇게 경시할 수 있나. 정말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인권 등 달라진 시대 감수성에 한참 뒤떨어진 보도"라고 정면 비판했다.
포털사이트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사가 유통되는 플랫폼 사업자로서 이 같은 기사의 노출과 확장을 막는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유서 공개 보도는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어 결국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사안"이라며 "포털도 기사 유통 주체인만큼 책임이 따른다. 문제 기사 노출을 막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 언론사들이 자살보도 가이드라인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언론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이는 정치와 무관한 보편 영역이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고(故) 박지선은 지난 2일 오후 1시 50분쯤 서울 마포구 자택 안방에서 모친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유족의 뜻을 존중해 부검 등은 실시하지 않았다.
고인의 빈소는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당초 발인은 5일 오전 7시, 장지는 벽제승화원이었지만 발인 시간은 같은 날 오전 11시로 연기, 장지는 인천가족공원으로 변경된 것으로 알려졌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