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고 이건희 회장. (사진=연합뉴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별세로 상속인들이 내야 할 상속세가 10조원에 달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면서 '한국의 상속세가 과도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25일 '삼성 상속세 10조, 한국 전체 3년치 상속세와 맞먹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로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는 10조원대 상속세가 예상되는 가운데, 막대한 세금이 계열사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면서 "상속세 10조원은 지난 3년 동안 한국 정부가 거둬들인 상속 세수를 모두 합친 금액과 맞먹는다"고 보도했다.
매일경제도 26일 "상속세 부담에 대기업들 '휘청'"이라는 부제와 함께 "한국선 부자가 3대 지나면 재산 16%만 손주에게"라는 제목의 기사를 출고했다.
이 신문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로 경영계에 또다시 과도한 상속·증여세 논란이 일고 있다"면서 "최근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재계 거목이 일제히 쓰러지며 후대 상속인들은 대규모 상속세 부담에 휘청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수언론 등에서 이 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상속세 인하론에 힘을 싣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 일각에서도 같은 주장이 나왔다.
국민의힘 소속인 나경원 전 의원은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캐나다, 호주, 스웨덴과 같은 나라는 상속세를 폐지했다. 또 주요 유럽 국가들의 상속세 최고세율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경우도 많다"면서 한국의 상속세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국민의힘 김재섭 비상대책위원도 이날 사전 비공개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상속세를 완화하거나 폐지하자고 하면 안 되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경원 전 의원이 26일 오후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국가별 단순 비교만으론 '과도하다' 판단할 수 없어
이들의 말처럼 한국의 상속세는 정말 과도한 수준일까?
한국의 최고 상속세율은 50%로 프랑스(45%), 미국(40%), 영국(40%) 등보다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명목상 최고세율만 단순히 비교하는 건 현실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각종 공제 혜택 때문에 명목세율과 실효세율 간의 괴리가 크다.
상속세 공제 혜택으로는 △기초공제·인적공제와 일괄공제(5억) 중 큰 금액 △배우자공제 △가업·영농 상속공제 △금융재산 상속공제 △재해손실 공제 △동거주택 상속공제 등이다.
경제개혁연대 측은 "상속세법은 각종 공제제도를 갖추고 있어 실제로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대상은 매우 제한적"이라며 "상속인들의 평균적인 실효세율은 최근 5년 간 14.2% 수준으로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세청의 '2018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재산을 상속받은 이(22만 9826명)의 3%(6986명)만이 상속세 과세 대상이었다. 나머지 97%는 각종 공제 혜택으로 과세 대상에서 제외됐다. 과세 대상자들은 1인당 평균 23억 5900만 원의 유산을 남겨, 이 중 14.7%(3억 4800만 원)를 세금으로 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소득세와의 관계를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 따르면 영국의 최고상속세율은 40%지만 소득세 최고세율은 45%로 한국(42%)보다 높다. 미국의 경우에도 최고상속세율은 40%로 한국보다 낮지만 소득세 최고세율은 주세(state tax)를 포함해 최고 46.3%에 육박한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상속세율이 높은 국가다. 최고상속세율이 55%이며 소득세 최고세율 역시 45%로 높은 수준이다.
상속세 대신 다른 세금을 매기는 국가도 있다. 나경원 전 의원이 언급한 상속세 폐지 국가들이다.
OECD 37개국 가운데 13개 국가에서는 상속세를 물리지 않는다. 대신 '자본이득세(capital earning tax)'를 시행하고 있다. 상속이나 매각 등 자산을 통해 이득을 얻을 경우 그 이득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즉, 가업 승계 시점에선 상속세를 물리지 않지만 주식, 채권, 부동산, 기업 등 자산을 매각할 때마다 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다.
이처럼 상속세의 실효세율은 상속재산에 대한 각종 공제, 국가마다 다른 과세 방식 및 세금법 등의 영향을 받는다. 국가별 단순 비교를 근거로 '한국의 상속세가 과도하다'고 주장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제개혁연대 측은 "우리 헌법은 제119조에서 '적정한 소득분배 유지'를 국가의 의무로 두고 있으며 이에 따라 상속세, 소득세와 같은 조세제도를 두어 소득분배에 일정 부분 개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율 인하로 가업 상속이 용이해질 수는 있겠지만 사회계층 간 이동을 어렵게 해 장기적으로 오히려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며 "상속세 인하론은 상속세 최고세율 구간에 포함되는 인원이 전체 상속인의 0.18%에 불과해 일반 대중들의 현실과도 괴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