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EN:]구로사와 기요시가 서스펜스로 그린 1940년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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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스파이의 아내' 온라인 기자회견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스파이의 아내'로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 수상
1940년 일본 배경으로 세 남녀의 애정·신념을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로 완성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된 '스파이의 아내' 온라인 기자회견이 26일 오후 열린 가운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참석해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오래전부터 시대극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 꿈이 이번에 실현된 셈입니다. 제가 선택한 시기는 현대로 이어질 수 있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인 1940년 전후를 그렸죠. 당시는 일본이 대단히 위험하고도 위태로운 체제를 가졌던 시기로, 이때를 살았던 부부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한국 분들이 이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저에게도 관심이 가는 부분입니다." _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영화 '스파이의 아내'는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940년, 우연히 국가 비밀을 알게 돼 반역자로 몰리는 남자 후쿠하라 유사쿠(타카하시 잇세이)와 그의 아내 후쿠하라 사토코(아오이 유우)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로 감독은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을 받았다.

부산국제영화제 박선영 프로그래머는 '스파이의 아내'를 두고 "우리 시대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1940년 일본이라는 시공간의 불안과 불온한 공기를 배경이자 주제로 삼아, 세 남녀의 얽히고설킨 애정과 신념을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로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된 '스파이의 아내' 온라인 기자회견이 26일 오후 열린 가운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참석, 작품에 관해 이야기했다.

영화는 '경계'의 시기를 다룬다. 1940년대, 전쟁의 기운이 보이지 않았던 시기에서 전쟁이 물밀 듯 밀려오는 경계에 해당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감독은 'J-호러'라 불리는 일본 공포영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복수'(1997) '큐어'(1997) '강령'(2001) '로프트'(2005) '절규'(2006) 등 공포 장르를 통해 인간 내면을 드러내는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 '스파이의 아내'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은 전작들과 조금은 다른 결을 갖는다. '스파이의 아내'는 그의 첫 시대극이자 멜로와 서스펜스, 스릴러가 결합한 영화다.

구로사와 감독은 "지금까지는 현대, 특히 도쿄를 무대로 삼았다"며 "그런 것들도 흥미롭게 해 왔지만, 현대에 대해서 그릴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단정하고 판단하는 게 그다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현대와 이어진 그리 멀지 않은 과거를 무대로 할 경우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이미 역사로 존재하기에 과거를 나름 판단하는 부분이 있다. 그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고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번 작품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내 사토코와 행복하게 살던 고베의 무역상 유사쿠는 사업차 만주에 갔다가, 그곳에서 엄청난 만행의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세상에 알리기로 한다. 사토코는 남편의 비밀이 그들의 완벽한 가정을 위협할 것이라 생각해 결사적으로 유사쿠를 말리지만 결국 그의 대의에 동참해 기꺼이 '스파이의 아내'가 되기로 한다.

영화 속 엄청난 만행의 현장이란 731부대의 생체실험을 말한다. 일본 근현대사의 그림자를 조명한 것과 관련해 감독은 "나 자신이 뭔가 은폐돼 있던 것을 드러내는 작업을 새로 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이미 일본인에게나 세계적으로도 하나의 역사라고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성실하게 그리고자 했을 뿐"이라며 "많은 분이 다양하게 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모종의 정치적 메시지를 말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건 아니다. 하나의 시대를 잘 마주하고, 그 바탕에서 오락 영화를 만들고자 한 것"이라며 "이것과 현재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는 보시는 분들이 판단하고, 영화로부터 반추해 주면 좋을 듯 싶다"고 전했다.

보통 '스파이'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리 '스파이의 아내'는 제목처럼 스파이의 '아내'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진행한다. 각본은 '해피아워' 감독이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제자이기도 한 하마구치 류스케와 '해피아워' 프로듀서 노하라 타다시가 맡았다.

감독은 "스파이의 아내에게 초점을 맞추게 되면 당시 일본 일반 사람의 인식이 어떠했는지, 일반 사람들은 무슨 고민을 했고 무엇을 즐겼는지 일상적인 부분을 그려내기 쉽다"며 "또한 아내가 주인공이면 남편에 대해서도, 남편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수수께끼나 미스터리로 남을 여지가 있어서 아주 빼어난 착안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 '스파이의 아내'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속 남편과 아내는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다른 길을 걷는 인물이기도 하다. 자기 내면과 사회 체제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자신만의 선택을 보여준다.

감독은 "남편이나 헌병 등 남자들은 시스템과 대립하게 됐을 때, 시스템에 패배하거나 밖으로 벗어나거나 둘 중 하나 밖에 없다"며 "그런데 여성인 사토코는 자신과 시스템이 대립해도 그 사회 안에 그냥 머무르면서도 자기를 굽히지 않는다. 그렇게 그리고자 의도했고, 또 그것이 사토코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감독은 영화에서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전쟁이라는 참상이 갖는 비극과 현실,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희망도 이야기한다. 이는 엔딩 장면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감독은 "영화를 서스펜스나 멜로로만 그렸다면 굳이 그렇게 끝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가령 남편이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에서 끝났다면 세련된 서스펜스로 마무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며 "그러나 한편에서는 전쟁이라는 무거운 이야기가 배경으로 존재한다. 전쟁과 결착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내 안에서도 정답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가운데서 이렇게 선택한 것이 사토코가 마지막에 할 수 있는 것으로는 그저 울부짖는 것밖에 내 머리에는 떠오르지 않았다"며 "다만 그 장면 이후 전쟁 후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한 마디 자막을 덧붙임으로써 그녀를 울부짖음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시켰고, 아주 작은 희망도 같이 곁들였다"고 설명했다.

'스파이의 아내'는 향후 국내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이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만날 예비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스파이의 아내'는 전쟁이라는 시대를 다룬 일본 영화입니다. 한편에서는 서스펜스나 멜로로도 즐길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죠. 내용적으로 현대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는 관객에게 달려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여러분들이 자유롭게 생각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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