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이슈, 가려운 이슈를 속시원하게 긁어드립니다. [편집자주]
(사진=디지털교도소 사이트 캡처)
성범죄자 등의 신상정보를 임의로 공개하는 사이트인 '디지털교도소'에 개인정보가 노출된 한 대학생이 억울함을 호소하다 숨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이트의 신상공개 위법성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 등에 따르면 A(20)씨는 지난 7월 '지인능욕'을 요청했다는 이유로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지인능욕이란 지인의 사진을 성착취물에 합성시키는 디지털 성범죄를 의미한다.
이후 A씨는 학교 커뮤니티에 "사이트에 올라온 모든 내용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모르는 사이트에 가입됐다는 문자가 와 URL을 누른 적이 있고, 모르는 사람에게 휴대전화를 빌려준 사실도 있다"며 "휴대전화가 해킹당한 것 같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디지털교도소는 그의 신상을 계속 공개했고, A씨는 지난 3일 숨진 채 가족에게 발견됐다.
◇디지털교도소 측 "A씨, 증거 제출 못해…누명 아냐"
사건이 알려지자 디지털교도소 운영자 측은 6일 텔레그램 공지를 통해 "제보 받은 내용을 검증도 없이 업로드했다는 주장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텔레그램 연락처 추가기능을 통해 얻은 A씨의 전화번호, A씨가 직접 녹음한 지인능욕 반성문, A씨 목소리가 확실하다는 피해자와 지인들의 증언, 이후 조력자를 통해 A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한 목소리. 이 4가지를 통해 디지털교도소 운영진들은 A씨가 확실하다고 판단했고 디지털교도소에 박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디지털교도소 측은 A씨에게 사설 디지털 포렌식 센터를 찾아 텔레그램 설치내역, 삭제내역, 인증문자내역, 텔레그램 대화내역 등을 인증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억울하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본인이 정말로 억울하고 해킹을 당한 게 맞다면 몇 개월이나 되는 시간 동안 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을까"라고 반문했다. 디지털교도소 측은 아직까지 A씨에 대한 신상정보를 내리지 않고 있다.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비롯해 수많은 여성의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지난 3월 25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사법 불신에 의해 세워졌다 해도…'무고한 피해자' 만들 수 있어A씨의 사망으로 디지털교도소의 신상공개에 대해 적법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디지털교도소는 애초 성범죄에 관대한 사법부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신상공개를 통해 '사회적 심판'을 하겠다는 취지로 탄생했다. 하지만 수사·사법기관의 판단 없이 민간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신상공개를 하다 보면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실제로 디지털교도소는 엉뚱한 사람을 성범죄자로 지목하며 신상을 공개한 바 있다. 지난 7월 격투기 선수 출신 유튜버 B(30)씨는 디지털교도소에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공범으로 지목돼 곤욕을 치렀다. 디지털교도소 측이 신상정보를 올리기 전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채 동명이인인 B씨를 성범죄자로 특정한 것이다.
B씨가 항의하자 디지털교도소 측은 "여러 블로그와 커뮤니티에 있던 내용을 취합하는 과정에서 B씨 정보가 올라가게 됐다. 재차 확인하니 잘못된 내용을 공유한 것이 파악됐다"며 "B씨에게 입힌 피해에 대한 모든 법적 책임은 제가 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B씨의 신상정보는 사이트에서 삭제됐지만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기까지 그가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과 온라인 의류 쇼핑몰 등은 피해를 입어야 했다.
◇전문가 "디지털교도소에 누가 '사회적 매장'할 권리 줬나"전문가들은 별도의 절차 없이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범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입을 모았다.
건국대 로스쿨 한상희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디지털교도소의 등장은 형사사법체계에 중요한 결함이 있다는 징표"라면서도 "그렇다고 해도 신상 공개와 같은 사적 처벌에는 신중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함무라비 법전부터 시작해 형법제도가 만들어진 이유가 사적 처벌이나 보복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며 "디지털교도소의 경우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등 공익적인 목적보단 낙인을 찍고 처벌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어 정당성을 인정받기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월 7일 여성의당이 서울고등법원 동문 앞에서 손정우 미국 송환 거부 서울고법 형사 20부 재판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도 디지털교도소가 등장하고 대중의 지지를 받은 배경엔 성범죄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해온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성폭력, 특히 아동과 연관된 성범죄에 관한 처벌 수위가 워낙 낮다. 국제적인 규범으로 봤을 때도 낮은 편"이라며 "국가 형벌권이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디지털교도소의 불법행위에 동조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분명한 건 이것은 불법이란 점"이라며 "정해진 형량이 충분하지 않다면 제대로 된 입법절차를 통해서나 양형위원회의 양형 기준을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 사람(A씨)은 재판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인권 침해가 발생하게 그냥 내버려둬서는 절대 안 된다"며 "(디지털교도소에) 어떠한 공적 권한이 있길래 개인정보를 지속적으로 유출시키는지, 누가 이들에게 사회적으로 매장을 할 권리를 준 건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