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에 맞서는 사람들 "누가 눈 감아줬는지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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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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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비위 교수 죗값을 묻다③]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대학생들 인터뷰
학생들 "사회와 대학이 가해교수 설 자리 허용해주고 있다"
"대학 인권센터 내실화, 징계위 학생참여 보장 필요"
권 의원 "최대 정직기간 3개월→12개월 늘려야" 법안 발의
"교육부, 직권조사 1건에 그쳐…교육당국 관리감독 강화해야"

글 싣는 순서
①[단독]'성폭력' 교수 절반은 다시 피해자 곁에 돌아온다
②성비위 저질러놓고 재심 통해 징계 낮추는 '뻔뻔한 교수님들'
③'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에 맞서는 사람들 "누가 눈 감아줬는지 봐야"

A교수, B교수, C교수…대학 내에서 '성폭력'을 저지른 교수들을 지칭하는 알파벳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가해 교수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와 응당한 처벌, 피해자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다. 이 외침에도 '교수 카르텔'은 굳건했고, 교육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14일 CBS노컷뉴스는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문제에 맞서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피해 학생들과 연대하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학생들과 관련법 입법에 나선 국회의원 모두 "수년 동안 묵혀온 '학내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이번만큼은 끊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교육당국 '묵인' 속, 위력 떨치는 가해 교수들

#.대학원생 A씨는 학과 측에 교수의 성비위를 고발했다. 그뒤 해당 교수는 "졸업을 못하게 한다"며 A씨의 졸업논문 심사를 거부했다.

#.학생을 상대로 성추행·갑질을 일삼은 의혹을 받는 서울대 음대 B교수는 피해 학생의 신고로 조사가 진행 중인 와중에, 다른 제자들에게 "피해 학생이 큰 잘못을 해서 (연구실을) 나간 것"이라고 험담하며 혐의를 부인했다. 피해 학생은 당시 음대 학장단에 보호조치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대학본부와 교육당국의 묵인 속에 가해 교수들은 학교에 남아 그 위력을 과시한다. CBS노컷뉴스가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실을 통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지난달까지 대학에서 성비위로 징계를 받은 교원 199명 중 절반가량(48.2%)인 96명이 정직이나 감봉, 견책 등 경징계를 받았다.

학생들은 "사회와 대학이 가해 교수가 '설 자리'를 허용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해결을 위한 대학가 공동대응단' 홍류서연 단장은 "지난 2019년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A교수 사건 당시 같은 과 동료들이 가해 교수와 가까운 사람을 징계위에 앉히려다가 발각됐다"며 "교수들 가운데 '나도 언젠가 저런 상황에 처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발동해, 학생들의 피해 호소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이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교수가 학생의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는 현실에서, 교육당국이 학생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홍류서연 단장은 "(피해 학생들은) 해오던 활동을 갑자기 못하거나 생계를 이어가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예술계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계원예대 전윤정 부총학생회장은 "예술계 특성상 작품 하나를 내려면 교수 커뮤니티를 통해 일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애초에 예대는 규모가 작아 누가 신고했는지 가해 교수가 보다 쉽게 알 수 있다. 피해 학생은 작업 활동의 길 자체가 막히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서울대 음대 B, C 교수 사건 해결을 요구하는 예술계 단체 연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피해 접수부터 교수 징계절차까지 '학생 중심주의' 돼야"

대학마다 학내 권력형 성폭력 문제에 대응하는 시스템은 제각각이다. 인권상담센터가 설치된 곳도 있지만,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깜깜이'로 운영되는 학교도 많다. 홍류서연 단장은 "인권센터가 있더라도 전담 담당관이 적고 대부분 계약직 채용이라, 적극적인 행정이나 사업을 이어가기 어렵고 전문성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성비위 교원의 징계양형을 결정하는 교내 징계위원회에 학생 참여를 보장하는 대학도 찾아보기 어렵다. 국·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교원 징계 절차는 각각 교육공무원 징계령과 사립학교법에 따른다. 교원징계위에 해당 학교 교원이나 이사, 외부 인사는 포함되지만 학생 대표자는 없다. 학교의 징계처분에 불복하는 교수들이 찾는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마저 위원 대다수가 교육계 관계자다.

학생들은 "가해자가 교수인데, 징계위원으로 교수들이 참여하니 솜방망이 처벌이 나오는 게 아니냐"며 징계위에 학생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징계처분이 나면 학생에게 바로 알리고, 교원윤리강령 등에 교수의 성비위를 처벌하는 내용을 적시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도 나왔다. 계원예대 전윤정 부총학생회장은 "학교는 그때그때 사건이 터지고나서야 헤쳐나갈 뿐이다. 교육당국은 지침에 그치지 말고 강제성 있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도 나섰다…"법 바꿔서라도 해결할 것"

국회에서도 관련 입법 논의가 본격화됐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지난달 9일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사립학교법 일부개정법률안', '교육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을 발의했다. △대학 내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대학 교원징계위원회에 학생위원과 학생이 추천하는 외부위원 포함 △현행법상 최대 3개월 이하인 정직 기간을 12개월로 연장 등이 주요 골자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권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구조적 변화가 없으면 성폭력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곪고 곪다가 터져 나오는 지금의 현실이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권력을 가진 대학 내 구성원들이 문제를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인숙 의원(사진=연합뉴스)

 

다음은 권 의원과의 일문일답.

일문일답

▷이번에는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까. '대학 내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국회의 인식은 어떠한가.
=많은 의원들이 이 문제에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안을 통해 내실화하려는 노력에는 힘을 많이 써오지 못한 게 사실이다. 문제의식의 수준이 올라와 있는 만큼, (많은 의원들이) 문제 해결에 참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국회 교육위에서도 교육부에 성폭력 문제에 대한 '직권조사 강화' 등을 촉구했다.

▷성비위 교수를 제대로 처벌하려면 어떤 제도적 개선이 필요할까.
=교원에 대한 징계 유형이 정직·해임·파면으로 유형화돼 있어, 해임이나 파면에 이르지 않는 사안으로 판단됐을 때엔 정직 3개월에 그치는 경우가 있다. 정직 기간을 늘리는 등 징계 수위를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학생이 피해자인 경우, 징계위에 학생 및 외부위원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대학본부는 철저한 조사, 피해자 보호, 가해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해야 한다.

▷대학 내 성폭력을 관리·감독해야 할 교육부의 현재 대응에는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교육부는 대학 내 성폭력 문제에 사실상 미온적으로 대처해왔다. 교육부 '성폭력 신고센터'에 신고·접수된 사안들을 살펴보니, 교육부가 직권조사를 나간 것은 지금까지 단 '1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해당 대학으로 사건을 다시 이첩했다. 해결은커녕 2차 피해의 위험만 커지는 것이다. 대학의 자율성을 고려해도 교육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각 대학의 성폭력 대응체계를 감독하고, 성폭력 예방교육, 성평등·성인지 교육 등을 강화해야 한다.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추가로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 있는지.
=교원징계위와 마찬가지로, 교원소청심사위에서도 학생이 피해자인 사안일 경우 피해자를 대변할 수 있는 학생이나 외부위원이 진행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원지위법 등 관련 법률들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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