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알못]민식이법때도 패싱했던 그것, 축조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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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언어로 풀어쓴 쉬운뉴스⑰] 축조심사

3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호중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요즘 국회에선 자꾸 애꿎은 법 규정이 소환되고 있습니다. 축조 심사나 비용추계서가 대표적이죠. 집권여당이 부동산 관련법을 일사천리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런 절차를 뛰어넘었다는 비판을 야당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그리고 이게 지금 왜 문제가 되고 있는 걸까요. 정치를 잘 알지 못하는, 이른바 '정알못'을 위해 일상 언어로 쉽게 풀어쓴 뉴스. 오늘은 용어 설명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여야가 합의를 못 하니 자꾸 어려운 개념이 등장하고, 저희도 머리가 지끈하네요.

◇ 신중하고 꼼꼼하게 보라는 취지

먼저 축조 심사. 정치권 관계자나 출입 기자들에게도 생경한 용어인데요. 쫓을 축(逐)에 조목 조(條). 정확히는 '의안을 한 조항씩 낭독하면서 심사하는 것'이라고 국회법 해설서에 적혀 있습니다. 글쎄, 이것만 봐서는 갸우뚱하시죠?

국회에서 법을 만들거나 고칠 때는 소위원회, 상임위원회, 그리고 본회의를 각각 거치게 됩니다. 축조 심사는 보통 이 가운데 소위원회 단계에서 이뤄져요. 그런데 소위원회는 TV 중계도 안 되고 직접 참관하기도 어려우니 낯설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 일일 겁니다.

(사진=자료사진)

 

국회법 57조에는 소위원회가 이 축조 심사를 생략하면 안 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법안에 들어간 단어 하나하나가 어쩌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조항이니까 그만큼 신중하고 꼼꼼하게 보라는 거죠.

혹시 법안에 대한 문제점을 짚고 의견과 당부할 점을 제시하는 '대체 토론'이나 '찬반 토론'과 혼동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것들과는 다릅니다. 토론이 아니고, 그야말로 조문 내용에 대한 심사를 뜻하거든요.

생략도 가능하긴 합니다. 없던 법을 새로 만들거나, 법 전체를 통째로 바꾸는 게 아니고 일부 조항을 고치는 거라면 '위원회 내 의결'로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각 상임위원회 검토가 끝난 법안을 법제사법위원회가 '체계·자구 심사'를 할 때도 생략할 수 있답니다. 체계자구 심사는 또 뭐냐고요? 이건 궁금하시면 정알못 뉴스 10편 <법사위가 뭔데,="" 국회="" 출발도="" 못하고="" 있나요="">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소위원회 구성' 이견이 갈등의 핵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부동산 세법, 임대차 보호법, 공수처(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 후속법안을 처리하면서 이 규정을 근거로 축조 심사를 '패싱' 했습니다. 축조 심사를 진행할 소위원회 자체가 21대 국회에서 아직 구성돼 있지 않다는 걸 이유로 들었습니다.

핵심은 사실 이 대목에 있습니다. 소위 구성에 대한 여야의 입장차, 갈등은 여기서 비롯한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내 '예결소위 위원장'을 관례상 여당 의원이 맡아야 한다는데, 야당은 생각이 다르다네요. 각각 '국정 운영'과 '권력 견제'를 내세우지만 결국 또 자리싸움 아닌가 하는 의심에 뒷맛이 씁니다.

3일 오후 속개된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가 법안을 소위에 회부해서 심사할 것을 요구하며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갈등은 3일 법사위에서 이른바 '최숙현법'을 다룰 때도 빚어졌습니다.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상임위에서 제대로 못 했으니까 법사위에서라도 뜯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통합당 위원들이 '말이 안 통한다'며 퇴장한 뒤 민주당은 다수결로 축조 심사를 생략했습니다.

◇ 절차 생략했던 민식이법, 뒤늦게 논란

그 결과, 축조 심사는 소위에서도 상임위에서도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법안이 적용됐을 때를 가정해 비용을 추계하는 작업도 대부분 생략됐고요. 덕분에 민주당은 원하는 법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반면 야당에서는 "회의 당일까지 법 조문을 읽어볼 수도 없었다"는 성토가 나옵니다. 여당이 물밑에서 정부, 청와대와 충분히 조율했다고 항변하지만 이게 공개적인 곳에서 제대로 검증된 건 아니지 않느냐고 반박합니다. 윤희숙 의원은 지난달 30일 본회의에서 "축조 심의과정이 있었다면, 저라면, 임대인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줄 것인지, …, 등을 같이 논의했을 것"이라고 했었죠.

(사진=연합뉴스)

 

이렇게 축조 심사를 패싱한 과거 사례로는 이른바 '민식이법'이 있습니다. 당시 9세였던 김민식군이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발의됐던 법안인데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 '국민과의 대화' 이후 주목을 받으면서 속도를 내게 됐고, 이 과정에서 절차를 생략한 겁니다.

문제는 그때 처음 제안됐던 부분, 즉 스쿨존 내 '사망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는 내용을 넘어서는 법안이 결과적으로 처리됐다는 점에서 비롯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법과의 형평성이나 과잉 처벌 등의 지적이 뒤늦게 제기되는 형국입니다.

축조 심사. 현 상황과 다른 점이라면 지금은 여당끼리 밀어붙인 거고, 그때는 여론에 떠밀려 여야 합의로 뛰어넘었다는 점 정도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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