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읍 간사 등 미래통합당 법사위원들이 3일 오후 열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체육진흥법(고 최숙현법) 개정안을 소위에 회부해 심사할 것을 요구하며 퇴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상임위는 당정협의, 본회의장은 민주당 의총(의원총회)이 됐다"(정의당 강은미 의원).
"대통령이 주문한 입법 속도전을 밀어붙이는 것은 여당 스스로 국회를 통법부로 전락시키는 것"(미래통합당 조수진 의원).부동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후속3법 등을 7월 임시국회 내 처리가 4일로 다가온 가운데 상임위원회에서 소관 법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킨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야당의 비판입니다.
민주당 지도부는 "법대로 했다"지만, 법만 어기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요?
◇ 법안심사 절차 대부분 패싱, 그래도 합법?
논란이 된 것은 대체토론과 축조심사, 체계·자구심사 등 법안심사 절차의 상당 부분을 민주당이 패싱했다는 겁니다.
대체토론은 법조문을 확정하기 전에 법률안에 대해서 자유롭게 의견을 밝히는 절차고, 축조심사는 의안을 한 조항씩 낭독하면서 의결하는 일입니다.
법사위원장 쟁탈전에서 유명세를 탄(?) 체계·자구심사는 다른 상임위에서 검토한 법안을 본회의에 올리기 전에 법사위에서 한번 더 심사하는 권한입니다. 다른 법과 충돌하지는 않는지(체계), 법안에 적힌 문구가 적정한지(자구) 보는 거죠.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지난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및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퇴장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이 논란은 각 상임위원회 별 소위원회 구성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심사 당시 소위원회가 구성돼 있지 않았는데, 통합당은 '소위를 구성하고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민주당은 '소위가 구성되지 않았으니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문제의 소위원회 논란은 3일에도 이어졌습니다.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제사법위원장은 "체계자구 심사 법률안은 법안심사 2소위에 회부할 수 있는데 소위이 구성 안돼 논의할 수 없다"며 "그래서 우선 우리 위원회에서 대체토론 등을 거친 후 의결 방법을 논의하겠다"라고 못박기도 했습니다.
통합당이 민주당을 '입법 독재'라고 몰아세우는 무기는 국회법 58조입니다.
국회법 58조 1항은 "위원회는 안건을 심사할 때 먼저 그 취지의 설명과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 대체토론과 축조심사 및 찬반토론을 거쳐 표결한다"고 했고, 2항은 "상임위원회는 안건을 심사할 때 소위원회에 회부하여 이를 심사·보고하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만 보면 소위원회 심사를 거치지 않은 민주당이 '빼박(빼도 박도 못하다의 준말)' 국회법을 어긴 것 같죠. 민주당은 지난달 28일 기획재정위에서 부동산3법(종합부동산세법, 소득세법, 법인세법), 국토교통위원회에선 부동산거래신고법, 행정안전위원회에선 지방세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문제의 법사위에선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 도입을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이 통과됐고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 부동산 관련 법안 심의가 진행된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래통합당 조수진 의원이 윤호중 법사위원장에게 항의하자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김용민 의원이 조 의원에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제사법위원장은 "의무 조항이 아니다"라며 법적 하자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국회법 57조 1항은 "위원회는 소관 사항을 분담·심사하기 위하여
상설소위원회를 둘 수 있고, 필요한 경우 특정한 안건의 심사를 위하여
소위원회를 둘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강제조항이 아니라 선택사항이라는 얘기죠.
이에 대해 통합당 조수진 의원은 3일 "여당에서는 '소위를 둘 수 있다'는 (국회법) 57조만 떼서 계속 얘기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면 20대 국회 때까지 뭣하러 소위를 뒀느냐"고 따져묻기도 했습니다.
◇ '소위원회 패싱'은 고육지책일까, 꼼수일까지난달 29일 법사위에선 소위 구성과 이를 위한 회의 정회를 두고 한바탕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왜냐면 소위에선 축조심사를 생략할 수 없고 상임위에서만 생략할 수 있거든요.
김도읍 통합당 법사위 간사: 대체토론 마치고 국회법 해설서에 (법안을) 소위원회에 회부하도록 국회에서 만든 거에요.
윤호중 법사위원장: 소원회를 구성해 주세요. 소위원회를 합의해 주세요.
김도읍: 소위원회 구성하면 이 회의는 종료합니까?
윤호중: 소위원회 구성하면 종료할 수 있습니다. 소위로 넘기지요, 바로.
김도읍: 그럴까요? 잠시 정회해 주십시오.
윤호중: 정회는 못 하겠습니다.
김도읍: 왜요? 정회를 해 주셔야 소위원회 합의를 할 것 아닙니까?
윤호중: (법안을) 상정해 놓고 소위원회에 갑시다.결국 윤 위원장은 정회를 하지 않았고 소위는 지금도 구성되지 않았습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이에 대해 한 법사위 관계자는 "의사진행은 위원장의 판단사항이다. 김도읍 의원의 요구를 반드시 받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위를 구성할 경우 대체토론과 축조심사 등 심사절차를 지켜야 하고, 그렇게 되면 7월 임시국회 내 법안 처리가 불가능해져서 소위가 구성돼 있지 않은 현실을 역이용한 셈이죠.
또다른 법사위 관계자는 "축조심사를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소위를 두는 거고, 이번 법안처럼 상임위 고유법안은 소위로 넘겨 축조심사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회법 절차를 이용한 야당의 발목잡기를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인지, 야당의 비판을 우회하기 위한 '꼼수'인지는 해석하기 나름이겠죠.
다만 국회 관계자는 법안 심사절차와 관련한 국회법에 대해 "보통 소위에서 법안 심사절차를 꼼꼼히 거치기 때문에 전체회의에선 이같은 절차를 생략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그래서 소위는 구성될 수 있을까그렇다면 여야는 왜 소위를 여태껏 구성하지 않았을까요?
법사위 아래엔 형법 등 법사위 고유법을 다루는 1소위, 타 상임위 법안을 다루는 2소위, 예산소위, 청원소위가 있습니다.
체계·자구심사 권한을 앞세워 '발목 잡기'를 한다는 소위가 2소위죠. 통합당은 2소위에 자당 몫 위원 1명을 추가하고 싶어했고,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소위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했습니다.
민주당 백혜련 법사위 간사가 이날 "1소위, 2소위에 대해 1차적으로 합의됐지만 나중에 오셔서 의원 정수 문제를 말하지 않았느냐. 원래 의원 수 비율로 구성된 건데, 통합당이 한 명 더 추가해 달라고 해서 합의가 되지 않았다가 6(민주):4(통합):1(비교섭단체)로 하자고 해서 거의 합의가 되지 않았느냐"고 통합당 김도읍 법사위 간사에게 쏘아붙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민주당이 양보했는데도 통합당이 떼를 쓰는 것 같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관례적으로 여당은 1소위와 예산소위를 가져가는데, 이 예산소위를 달라고 하고 있거든요.
민주당 관계자는 "갑자기 예결소위원장을 달라고 한다. 예산을 빌미로 발목 잡겠다는 의도로밖에 안 보인다"라고 했습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당론 1호 '일하는 국회법'도 무시한 민주당?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회법개정안(일명 '일하는 국회법')은 "국회에 제안되는 법률안의 수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상임위원회는 의무적으로 복수 상설소위를 설치하도록 하고, 법안처리순서는 원칙적으로 선입선출(先入先出) 원칙에 기초하며 소위원회 재적위원 4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표결에 부치도록 하여 의사결정의 틀을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입선출이란 회부된 순서에 따라 안건을 심의하는 원칙입니다.
민주당은 지난달 7일 국토위에 회부된 박상혁 의원의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임대차3법' 중 일부)를 의결했지만, 이 법안에 앞서 법사위에 회부된 90여건의 법안들은 상정하지 않기도 했었습니다.
긴급한 현안과 관련됐거나 앞서 위원회에 부쳐진 안건과 관련이 있는 법안의 경우 위원장이 교섭단체 간사와 협의를 거쳐 순서를 앞당길 수는 있지만, 민주당 편의에 따라 급한 법부터 상정해 처리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이네요.
민주당 김해영 최고위원이 3일 "다수결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며 "모든 정책은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실제 시행했을 때 다른 국면에서 예측 못한 결과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협치는 상대방 주장을 통해 미처 놓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고 수정과 보완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한다"고 했는데, 그의 비판이 어느 때보다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