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기]어차피 엔딩은 로맨스? 위험한 '비혼' 겉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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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권·고용·부동산 문제 뒤섞인 '비혼' 소재 채택 드라마들
기성 제도 편입 거부·저항하는 '비혼' 본질 고민 없이 트렌드로 소비
현실과 미디어 속 '비혼' 사이 괴리감…왜곡된 프레임 확산 우려도
"첨예한 사회 문제들은 외면…기존 로맨스 관습에 우겨넣기만"

'다시, 보기'는 CBS노컷뉴스 문화·연예 기자들이 이슈에 한 걸음 더 다가가 현상 너머 본질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발빠른 미리 보기만큼이나, 놓치고 지나친 것들을 돌아보는 일은 우리 시대의 간절한 요청입니다. '다시, 보기'에 담긴 쉼표의 가치를 잊지 않겠습니다. [편집자주]

(사진=KBS, tvN 제공)

 

비혼 소재 드라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좀처럼 현실적인 공감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실제로 비혼을 선택한 시청자들에게마저 외면 당하는 실정이다.

KBS2 드라마 '그놈이 그놈이다'는 비혼 캐릭터 서현주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배우 황정음이 연기하는 이 캐릭터는 예정된 약혼식이 처절한 '비혼식'이 되면서 비혼주의자가 된다.

연출을 맡은 최윤석 PD는 온라인 제작발표회 당시 비혼 소재 우려에 대해 "우리 드라마가 모든 비혼 여성을 대변할 수 없다. 드라마에는 '비혼녀'뿐만 아니라 '이혼녀' '기혼녀' '미혼녀'까지 등장한다. 이들을 보며 30대 여자 시청자들이 공감하도록 만들었다"고 답했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선택한 30대 여성 캐릭터들이 같은 세대·성별 시청자들에게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리라 본 것이다.

장르적 성격을 두고는 "사회상과 로맨스를 같이 아우를 수 있는 드라마이지만 가벼운 생활밀착형에 가깝다. 전생과 현생이 교차 반복되는 새로운 스타일의 로맨틱 코미디"라며 "쉽고, 편하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 문제가 얽히고설킨 '비혼' 현상은 이 드라마에서 그저 독특한 인물 설정이나 로맨스에 극적인 요소를 더하는 도구에 그치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사실상 '비혼주의'는 서현주 삶의 중심 가치관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전생부터 연이 닿아 있는 재벌집 아들 황지우(윤현민 분)와 로맨스가 전개될수록 그렇다. 중반을 넘어서면서 중심 축은 벌써 서현주 '남편감 찾기'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비혼 여성 캐릭터가 끝내 결혼을 선택하기까지 이어질 법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미혼남녀가 진정한 사랑을 찾으면 결혼에 골인한다'는 고루한 로맨스 문법에서 '미혼'만 '비혼'으로 치환된 격이다.

tvN 드라마 '오 마이 베이비' 역시 '비혼'이지만 아이는 갖고 싶은 육아잡지 기자 장하리(장나라 분)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장하리는 아이를 갖기 위해 결혼하려는 삶의 계획이 틀어지자 노선을 바꾼 인물이다. 서현주처럼 자의적인 '비혼주의자'로 볼 수는 없어도 결혼 제도를 거부하는 캐릭터라 새롭게 다가왔다. 드라마는 장하리가 남자 주인공인 한이상(고준 분)과 결혼 없이 행복하게 동거하는 결말로 끝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비혼 캐릭터의 진정한 사랑 찾기'라는 관습적인 로맨스 전개를 벗어나지 못했다. 육아, 경력단절 등 사회적 논의가 활발한 소재들을 끌고 들어왔지만 이를 공감도 높게 풀어내는 데는 아쉬움을 남겼다.

'비혼'을 대하는 드라마들의 태도는 '미혼'이 보편적 단어였던 시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드라마 속 비혼 캐릭터와 현실의 비혼 사이 괴리는 여기에서 나타난다.

'미혼'과 '비혼'은 곧 '의지'의 차이다. '미혼'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면 '비혼'은 아닐 비(非)자를 사용해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더 명확한 의지를 드러낸다.

이들은 포기하거나 때를 놓쳐 결혼을 '못한' 것이 아니라 자의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혼'은 결혼을 통과의례·의무처럼 여기는 관습 자체를 부정하는 단어다.

이는 결국 결혼 제도에 편입되길 거부하는 집단적 움직임과도 연결된다. '비혼'은 한없이 가벼운 '트렌드'가 아니라 각종 사회 문제들이 중첩돼 발생한 현상이다. 그 근간에는 여전한 가부장 질서와 낮은 여성 인권, 2030의 불안정한 고용과 주거, 독박 육아·가사와 경력단절 등 수많은 의제가 깔려 있다.

이미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비혼이 왜곡될 소지를 낳는 드라마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미디어가 사실상 '미혼' 캐릭터를 '비혼주의자'로 포장해 사랑의 결실에 따라 비혼 가치관이 개조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전파한다는 의견이다. 사회 구성원의 문제 제기를 담은 비혼 소재를 아무런 고민 없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라는 지적도 팽배하다.

비혼이 넘쳐나는 시대의 이면을 드라마 제작진이 읽고 반영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비혼' 소재 드라마 또한 수박 겉핥기식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비혼이 가진 첨예한 사회 문제들을 정면에서 다루지 않고, 그냥 최근에 '비혼'이 많아진다고 하니 그 자체를 '트렌드', 즉 유행으로 여겨 반영하는 탓"이라며 "그렇게 피상적으로 수용하다보니 기존 로맨스 관습 안에 기계적으로 집어 넣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주로 로맨스물이 대세를 이뤘던 드라마 시장의 성격도 무시할 수 없다. 사회성 드라마 생산 자체가 미비하다보니 이 같은 의제를 다룰 때 한계를 보인다는 이야기다.

하 평론가는 "결국 비혼주의자가 결국 '사랑을 몰랐던 사람'이라는 이야기로 끝나는데, 이는 사회, 정치, 경제 문제에 둔감하거나 모르는 척하는 안일한 생각"이라며 "상업적인 멜로 코드에만 몰두한 드라마 제작 시스템이 이런 작품들을 양산하고 있다. 사회 드라마의 전통이 없다시피 해 해당 의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데도 한계가 있다"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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