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전 서울 시청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에 위폐와 영정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고(故)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과 관련, '진상 규명' 목소리가 거세지는 가운데 수사기관인 경찰은 공식 입장조차 밝히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박 전 시장 사망으로 성추행 사건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상황에서 자칫 입장을 밝혔다간 사자 명예훼손 논란을 자초할 수 있고, 반대로 침묵했다간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여론의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다만 경찰은 박 전 시장 변사 사건과 고소인 측이 제기한 2차 가해 사건에 대해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같은 외곽 수사가 진상을 규명할 단초가 될지 주목되고 있다.
◇'입장표명'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찰
(사진=연합뉴스)
박 전 시장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된 지난 13일 성추행 피해 고소인 측은 기자회견을 통해 전면에 나서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특히 고소를 접수한 경찰을 향해선 "입장을 표명하라"고 요구했다.
기자회견 이후 경찰은 내부 회의를 통해 관련 대책을 논의했지만, 일단 '침묵'을 결론으로 택했다.
경찰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입장 표명이 적절한지,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부터 고민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다음날인 14일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침묵을 유지했다.
경찰의 긴 침묵은 피고소인인 박 전 시장의 사망이 배경으로 꼽힌다. 규정상 사건 자체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기 때문에 수사를 재개할 명분이 없고, 수사 상황을 언급할 마땅한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피고소인이 사망해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되는 사건에 대해 경찰이 입장을 표명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 설명했다.
만약 입장을 내놓는다면 하나의 '선례'가 돼 향후 비슷한 상황에서도 입장을 밝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밖에 사자 명예훼손 논란도 경찰로선 부담이다.
하지만 고소인 측과 함께 여론상 거세지는 '진상규명' 목소리는 경찰을 압박하는 양상이다. 이대로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경찰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 종결 방침을 밝혔으면서도, 아직 검찰에 송치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목소리를 감안한 행보로 해석된다. 또 서울시 등이 진상조사에 나설 경우 적극 참여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하면서 여론의 흐름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변사 사건, 2차 가해 수사는 속도…'진상' 규명 단초 주목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연합뉴스)
다만 경찰은 박 전 시장 '변사 사건'과 고소인 측이 제기한 '2차 가해' 관련 수사는 속도를 내고 있다. '딜레마'에 갇힌 경찰이 외곽 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할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앞서 피해 여성 A씨 측은 온·오프라인으로 가해지고 있는 2차 가해 행위에 대해 지난 13일 고소장을 제출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14일 오전 A씨를 불러 고소인 조사를 진행했다.
변사 사건의 경우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을 실시하기로 했다. 경찰은 사망 경위만 파악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내용에 따라 수사상황 유출 등 진상을 규명할 '스모킹건'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박 전 시장은 지난 9일 오전 10시 44분 관사를 나섰고, 이후 오후 3시 49분쯤 성북동 핀란드대사관저 근처에서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기 전에 지인 등과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상황 유출은 성추행 사건 수사에 있어 청와대 및 경찰이 적절하게 대처했는지와 연관돼 있다. 고소인 측은 수사정보 유출 문제로 박 전 시장의 극단적인 선택이 이어지고, 그 결과 피해자는 2차 피해와 고통을 입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청와대와 경찰, 서울시 모두 수사정보 유출 의혹을 부인하면서 '진실공방'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밖에 시민단체의 고발과 국회 차원의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진상규명 요구에 힘이 실린다.야당인 미래통합당은 오는 20일 예정된 김창룡 차기 경찰청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박 전 시장 사건을 따져 묻는 한편, 경찰 및 서울시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출석시키겠다는 방침이다.
경찰은 시민단체의 고발에 대해선 접수하는대로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청문회에선 어떤 답을 내놓아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