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장관,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자료사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내린 지휘가 일주일 만에 관철된 모양새다.
그러나 윤 총장이 해당 지시를 전격 수용했다고 규정하기는 어려워 양측 간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 독립성을 부여하는 내용의 추 장관 지휘과정에서 여권 강경파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대검찰청 내에서는 법적 대응 가능성도 여전히 거론된다.
◇ 秋 '현 수사팀 자체 수사' 관철됐지만…대검은 9일 오전 이 사건과 관련해 손을 떼고 현 수사팀(중앙지검 형사1부)에 독립성을 부여하라는 취지의 추 장관 지휘를 '(검찰총장) 수사지휘권 박탈'이라고 표현하며 "쟁송절차에 의해 취소되지 않는 한 (총장) 지휘권 상실 상태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중앙지검이 자체 수사를 하게 됐다"며 "이런 내용은 중앙지검에도 통보됐다"고 덧붙였다. 추 장관의 지휘로 인해 결과적으로 현 수사팀이 독립적 수사를 하게 됐다는 뜻이다.
추 장관은 윤 총장이 사실상 지휘를 수용했다고 보고 "만시지탄이나 이제라도 장관의 지시에 따라 수사 공정성 회복을 위해 검찰총장 스스로 지휘를 회피하고 수사팀이 독립적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결정한 것은, 공정한 수사를 바라는 국민의 바람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추 장관의 핵심 지시 내용들이 이처럼 관철되면서 최근 악화일로를 걸어왔던 양측의 관계는 표면적으론 봉합됐다는 평가다.
'검언유착 의혹'과 관련한 수사지휘권 수용 여부를 두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갈등을 빚고 있는 9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조형물에 건물이 투영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 지휘 수용은 아니라는 대검…'秋 강경 행보' 둘러싼 잡음 논란도
그러나 대검 내부에선 추 장관의 지휘가 현실화 된 것일 뿐, 윤 총장이 지휘를 수용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얘기가 나왔다. 대검 관계자는 "오늘 총장 입장은 수용, 불수용 차원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장관의 이번 지휘가 부당하다는 윤 총장의 기존 시각은 여전하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추 장관이 무리하게 윤 총장을 압박하며 현 수사팀에 힘을 싣고 있다는 검찰 일각의 불만은 갈등 봉합 국면 직전 불거진 각종 논란들로 강화되는 기류다.
대검은 추 장관의 지휘 사항을 두고 법무부와 물밑에서 조율안을 마련했고, 협의 하에 윤 총장이 공개 건의까지 했는데 추 장관이 이를 일축했다고 본다. 대검 관계자는 "법무부에서 이번 주 초부터 협의를 하자고 했다"며 "(협의 결과에 대해) 조남관 검찰국장까지 오케이 된 사안"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협의 결과를 '공개 건의' 해 달라는 것도 법무부의 요청이었으며, 이에 따라 전날 윤 총장이 '현 수사팀을 포함한 서울고검장 주도의 수사본부 구성 건의'를 내놨다는 게 대검의 설명이다. 그런데 추 장관이 이를 즉각 일축하자 대검에선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추 장관이 실무진 보다는, 이번 사건과 연관성이 거론되는 범여권 강경파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윤 총장을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불거진 상태다.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는 추 장관이 윤 총장의 건의를 일축하며 직접 작성한 입장문 초안(미공개본)을 페이스북에 게시했다가 삭제했다. 최 대표의 입김이 추 장관의 입장에 반영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
최 대표는 이번 검언(檢言)유착 사건이 여권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라는 '권언(權言)유착' 의혹 관계자로도 검찰 안팎에서 거론되는 인물이다. 추 장관이 독립성을 부여한 현 수사팀은 이 의혹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있다는 내부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런 연관성 때문에 야권에선 이번 일을 두고 "국정농단"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 입구 (사진=이한형 기자)
◇ 법무부, 각종 논란 일축…尹, 법적 대응 가능성도 '여전'
그러나 법무부는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법무부와 대검 간 조율안을 추 장관이 뒤집은 것 아니냐는 논란에 대해선 "대검 측으로부터 서울고검장을 팀장으로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법무부 실무진이 검토했으나, 장관에게 보고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검에 '검찰총장 공개 건의'를 요청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추 장관의 민감한 지휘 사항에 대해 법무부 고위 관계자가 보고도 없이 조율 가능성을 검토했다는 사실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러나 추 장관은 "초지일관 갖고 있던 생각을 관철했기에 중간에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괘념치 않는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추 장관 입장문 초안 유출 논란에 대해서도 "장관과 대변인실 사이의 소통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추 장관과 일부 실무진은 장관이 작성한 초안과 이에 대한 수정안이 함께 언론에 공개되는 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변인실 소통 오류로 수정안만 언론에 공개된 상황 속에서 벌어진 헤프닝이라는 취지의 설명이다.
법무부는 "두 가지 안이 모두 나가는 것으로 인식한 일부 실무진이 이를 주변에 전파한 것"이라면서도 전파자가 최 대표에게는 직접 초안을 보내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최 대표도 "SNS를 살피다가 언뜻 올라온 다른 분의 글을 복사해 잠깐 옮겨 적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한편 검찰 일각에선 장관의 지휘에 대한 법적 대응 가능성도 여전히 거론된다. 이날 대검이 "'쟁송절차에 의해 취소되지 않는 한' (총장) 지휘권 상실 상태가 된 것"이라고 밝힌 건 이런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