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 없는 남성권력 향한 여성연대의 외침 '밤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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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감독 제이 로치)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씨나몬㈜홈초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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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에 의한 직장 내 성희롱과 성폭력이 저열한 건 누군가의 미래와 생계를 쥐고 흔들기 때문이다. 저항의 목소리를 내기조차 쉽지 않고, 악순환 속에서 피해자는 눈물만 삼켜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목소리를 내는 이가 있다면 권력도, 가해자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변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바로 그 과정을 말한다.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감독 제이 로치)은 '권력 위의 권력' 미국 최대 방송사를 한방에 무너뜨린 폭탄선언, 그 중심에 선 여자들의 통쾌하고 짜릿한 역전극이다. 영화는 직장 내 성폭력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미국 보수 언론 매체 폭스뉴스의 로저 에일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절대 권력, 그게 폭스 방송사 내 로저 에일스의 위치다. 프로그램도, 사람도 그의 말에 따라 움직였고, 방송사 내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입는지도 그의 말에 따라 통제됐다. TV는 시각 매체라며 여성의 외모를 품평하고, 짧은 치마를 입히고, 드러난 다리를 카메라로 잡아낸다. 그게 미디어가 여성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방송사 내 권력구조와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미디어의 속성을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가 마치 브리핑하듯이 설명한다. 영화 속 또 다른 프로그램의 화자가 된 듯 메긴 켈리,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이 권력과 미디어의 속성, 내부 현실 등에 관해 말한다. 이러한 연출이 현실을 꼬집으며 관객들로 하여금 한 발 더 다가오게끔 만든다.

오랜 시간에 걸쳐 로저 에일스의 폭력은 폭스뉴스 앵커이자 최초의 내부고발자 그레천 칼슨에 의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그레천의 폭로가 전국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폭스 내 여성들은 함부로 나서지 못한다. 나서는 순간 폭스에서 쫓겨나는 건 물론 업계에서 매장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폭스뉴스 간판 앵커조차 현실과 생계 문제, 고발 후 벌어질 일들에 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피해자가 놓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폭스뉴스 간판 앵커인 메긴 켈리가 본격적으로 나서고, 동료와 선후배들도 하나씩 이 거대한 물결에 함께하기 위해 나선다. 갈등하고 고민하던 케일라(마고 로비)도 동참한다. 과거와 현재의 피해자들이 모여 미래를 향해 연대한다.

로저 에일스는 직장 내 성폭력이 드러났음에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다니고, 피해자들은 고개 숙인다. 그저 농담이었다며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그의 뻔뻔함은 자신이 저지른 성희롱과 성폭력이, 생사여탈권을 쥔 그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웃어야 했던 여성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됐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씨나몬㈜홈초이스 제공)
작든 크든 피해를 본 모든 여성이 어쩔 수 없이 사회적으로, 직업적으로 웃으며 참은 것은 그 일이 아무렇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고 필사적으로 참고 견뎌낸 것이다. 그렇기에 직장 내 성희롱과 성폭력이 당신을, 여성을 질문의 늪으로 몰아넣는다는 케일라의 말은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케일라는 로저 에일스에게 성폭력을 당한 후 '내가 뭘 입었지?' '내가 약자로 보일까?' '여기 남는다면 참고 견뎌야 할까?' 등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졌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왜 폭력의 과정에서 자신을 탓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왜 여전히 피해자에게 더 가혹한지 그의 말과 질문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왜 여성이 피해자가 되어서도 자신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했는지 묻는다면 책 제목이기도 한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이라는 말에서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하는 이들 때문이 아닐까. 무엇이 잘못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몰라도 되는 위치에 있는 모든 남성 권력 말이다.

영화 마지막 로저 에일스는 폭스 회장직에서 물러나지만, 거액의 퇴직금을 받는다. 그가 자리에서 내려온 데는 폭스 안의 또 다른 권력관계가 작용한 것도 있고, 그가 피해자들에게 지급된 합의금보다 많은 퇴직금을 받았다는 건 역시 여전한 사회와 직장 내 권력 구도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건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는 켈리의 마지막 대사를 잊을 수 없다. 단 한 명의 가해자를 끌어내린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앞으로 더 많은 그레천이 나오고, 더 많은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 카일리처럼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갈등하고, 결국 회사를 떠나게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쉽지 않은 길을 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연대와 변화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여성이 침묵한 게 잘못이 아니라 여성이 움츠러들고, 도망가고, 침묵할 수밖에 없게 만든 남성 권력의 문제라는 걸 다시금 인식해야 한다. 수치스러움과 공포는 피해자가 아닌 오롯이 가해자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다.

7월 8일 개봉, 109분 상영, 15세 관람가.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씨나몬㈜홈초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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