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윤석열 검찰총장,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사진=윤창원기자, 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이른바 '검언(檢言)유착'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전문수사자문단(자문단)에서 이 사건을 다루기로 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결정을 공개 비판하며 '관련 절차를 중단해 달라'는 뜻을 표명했다. 항명 사태가 벌어지자 윤 총장 측은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해 설득도 못하는 수사팀이 기본을 저버렸다며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수사팀은 윤 총장이 대검 산하 심의 기구인 자문단 소집을 통해 수사를 가로막으려 한다는 시각에 가깝다. 검찰 밖에선 여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수사팀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그러나 대검 내부에선 수사팀이 '검찰 때리기'라는 여권의 기조에 맞춰 무리하게 수사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비판 시각도 비등하다. 이처럼 엇갈린 시각이 정면충돌하면서 검찰 내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 '강경행보' 수사팀…결국 "자문단 중단‧독립성 보장해 달라" 항명
중앙지검 수사팀(형사1부‧정진웅 부장검사)은 30일 "대검에 건의했다"며 이례적으로 그 내용을 공개했다. 수사팀은 우선 "자문단 관련 절차를 중단해 줄 것을 건의드린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는 "이 사건은 수사가 계속 중인 사안으로, 관련 사실관계와 실체 진실이 충분히 규명되지 않은 지금 단계에서 자문단을 소집할 경우 시기와 수사보안 등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문단과 수사심의회 동시 개최, 자문단원 선정과 관련된 논란 등 비정상적이고도 혼란스러운 상황이 초래된 점 등도 고려해 달라"고 덧붙였다.
윤 총장의 결정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 그 결정으로 벌어진 상황에 대해선 '비정상적'이라는 비판적 평가를 공개적으로 내놓은 것이다. 수사팀은 특히 "검찰 고위직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본 사안의 특수성과 그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감안해 중앙지검에 '특임검사'에 준하는 직무의 독립성을 부여함으로써 검찰 수사에 대한 신뢰를 제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주실 것을 건의 드린다"고도 했다.
지난 2월 13일 부산고등·지방 검찰청을 찾은 윤석열 검찰총장(오른쪽)이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를 비롯한 간부진과 인사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윤 총장이 이번 의혹의 당사자이자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을 의식, 수사를 가로막기 위해 자문단을 소집한 것 아니냐는 시각을 '국민적 우려'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내비친 것으로 풀이됐다.
수사팀은 지난 17일 한 검사장과 공모해 이철 전 VIK 대표에게 유시민 전 장관 비위를 내놓으라고 압박한 의혹을 받는 이모 전 채널A 기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는 방침을 대검에 보고했다. 대검 형사부 실무진에선 혐의 성립이 어렵다는 의견이 강했고, 대검 부장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자 윤 총장이 심의를 위한 자문단 소집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수사팀은 대검이 무혐의를 예단하는 것으로 보고 자문단 소집에 이의를 제기하는 한편, 19일 대검 부장회의(지휘협의체)도 보이콧 했다고 한다. 수사팀은 자문위원 추천도 하지 않았고, 이 상태에서 자문단 구성이 전날 완료되자 거칠게 반발하는 모양새다
◇ 입 연 윤석열 "범죄 성립 여부도 설득 못하면서…" 수사팀 작심 비판공개 항명사태 이후 2시간 가량 지난 5시50분쯤 대검은 '수사팀 의견 수용 불가' 입장을 내놨다. 이는 윤 총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수사팀의 요구가 무리하다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대검은 우선 수사팀이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해 지휘부를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검은 "이 수사를 지휘해 온 대검 지휘협의체에서도 범죄 구조의 독특한 특수성 때문에 여러차례 보완지휘를 했고, 풀버전의 영장 범죄사실을 확인하려고 했으나 수사팀은 지휘해 불응했다"며 "이런 상황을 보고 받은 검찰총장은 부득이하게 자문단에 회부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해서도 설득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임검사에 준하는 독립성을 부여해 달라는 것은 '수사는 인권침해적 성격이 있기에 상급기관의 지휘와 재가를 거쳐 진행되는 것'이라는 기본마저 저버리는 주장"이라고 불편한 심경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대검은 이번 사건에 대해 "제3자 해악 고지, 간접 협박 등 범죄 구조가 매우 독특한 사안으로 기존 사례에 비춰 난해한 범죄 구조를 갖고 있다"고 규정했다.
협박을 했다고 지목된 채널A 기자와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철 전 대표 사이에 말을 전달한 2명의 인사(제보자X‧법무법인 민본 소속 A변호사)가 있었던 만큼 보다 신중하게 정황을 파악하고, 의혹 제기의 배경까지도 따져봤어야 한다는 시각이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대검은 강요미수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의사결정‧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의 해악의 고지가 있어야 하는데, '메시지 전달자'가 껴 있는 만큼 말이 정확하게 오고갔는지도 따져보라는 취지의 보완수사 지시를 수사팀에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 수사팀 항명에 추미애 강공까지…코너 몰린 윤석열윤 총장 입장에선 검언유착 의혹 건으로 검찰 안팎에서 전방위 압박에 직면했다. 밖에서는 '제 식구 감싸기식 사건 처리'라는 여당의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최근 '한동훈 직접 감찰'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법무부는 추 장관의 지시에 따라 지난 26일자로 한 검사장을 사실상 직무배제하고, 직접 감찰에 착수했다. 법무부는 이런 직접 감찰 조치의 근거로 '법무부 감찰규정 제5조2 제3호'를 들었다. 여기엔 '검찰의 자체 감찰로는 공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보여 법무부 장관이 감찰을 명한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감찰사건'의 경우 법무부가 직접 감찰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결국 윤 총장이 최측근인 한 검사장에 대해 공정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고 본 것으로, 추 장관이 윤 총장에 대해 '불신'의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발표된 대검의 입장은 수사팀은 물론, 이 사건 관련 강경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여권에 대한 윤 총장의 우회적 불만 표시로도 해석된다. 검찰 내부에선 "이번 수사에 여권 코드 맞추기식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한편에 존재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편 윤 총장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자문단 회의는 이번 주 중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