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정부가 대북전단 관련 단체를 고발하고 법인 허가 취소에 나선 것은 숙제를 미루던 학생이 뒤늦게 허둥대는 꼴 같아 볼썽사납다.
지금은 사라진 줄 알았던 대북전단이 4.27 판문점 선언 이후로도 계속해서 뿌려졌다는 사실은 북한이 이번에 발끈하기 전까지 국민들은 거의 몰랐다.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뭐라도 대책을 세우던지 최소한 알리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임무를 방기한 책임이 있다.
남북 연락채널이 모두 끊기는 지경이 되고서야 황급히 움직이다보니 자의적 유권해석이란 비판도 면키 어렵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북전단 규제는 만시지탄일지언정 당연하고 필요한 조치다.
남북이 판문점 선언에서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이상 통일부는 진즉에 후속대책을 내놨어야 했다.
굳이 판문점 선언이 아니더라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조차 11번이나 전단 살포를 막았던 전례에 비춰 오히려 현 정부는 소심한 셈이었다.
탈북민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 모습(사진=연합뉴스)
남북 합의 여부를 떠나 역지사지 관점에서도 전단 규제는 상식적 결정이다. 만약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전단을 매번 날려 보내도 우리는 가만히 있어야 할까?
이런 판단에는 최고 존엄 모독 같은 북한 체제의 특수성 따위가 개입할 필요조차 없다.
설령 아무 내용이 없는 '백지 전단'이라 할지라도 국경을 넘는 순간 그 자체로 주권을 침해하는 성가신 도발이자 공해다.
북한의 실체를 현실적으로 인정하기로 한 이상,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에 비방 전단을 날리지 않듯 북한도 같은 대우를 받는 게 마땅하다.
언필칭 '표현의 자유'도 이미 정리됐음에도 불구하고 좀비처럼 반복 재생되는 논란이다.
대법원은 2016년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에 위협이 된다면 표현의 자유도 제한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표현의 자유 논란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한 2017년 '더러운 잠'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박 대통령을 성적으로 모욕했다고 거센 비판을 받은 이 그림은 한 예비역 장성에 의해 현장에서 뜯겨졌고, 당시 표창원 의원은 전시 장소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당직정지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을 비교할 때 대북전단이 '더러운 잠'보다 과연 국익에 덜 해로운 사건이라 할 수 있을까? 이 그림이 철거됐듯 전단 역시 금지되는 게 맞다.
따지고 보면 '표현의 자유' 논란은 우리의 취약한 안보 환경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예컨대 북한의 맹렬한 반응은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대북전단 하나로 풀릴 문제가 아니고 쌓인 게 많다는 뜻이다. 일회성 대증요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킬 공산이 크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남측에 책임을 전가하며 배신감과 분노의 강도를 높여왔다. 우리로선 답답하고 억울한 노릇이지만 일부 진실을 담고 있음을 겸허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어찌됐든 북한에는 영변 핵 폐기 약속까지 받아놨음에도 미국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우리 역량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불편한 본질을 더 이상 회피하기 어려운 '진실의 순간'에 다다랐는지 모른다.
군사도발을 감수하고라도 북한을 더 밀어붙이든, 아니면 얼굴 붉히면서라도 미국을 설득하든 선택을 더 미룰 여지가 없는 것이다.
바야흐로 미·중뿐만 아니라 북·미 갈등 속에 우리의 지혜와 결기를 시험 받는 엄중한 상황이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