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새벽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밝힌 사유를 두고 검찰과 이 부회장 측의 해석이 분분하다. 수사를 거의 끝내놓고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검찰의 관행이 영장 기각으로 연결됐다는 분석도 있지만, 법원이 1차적인 판단의 책임을 회피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9일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사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원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며 "그러나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이나 상당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또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추어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통상적으로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할 때 '①혐의사실에 관하여 다툼의 여지가 있고 ②피의자의 주거와 직업이 일정하며 ③수사경과와 진술태도 등에 비추어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움'이라고 사유를 붙인다. 이는 형사소송법 제70조에서 규정한 구속 요건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기도 하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새벽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그러나 이번 원 부장판사의 기각사유는 이 부회장 등 피의자들의 범죄혐의에 대한 판단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고 열어놨다는 점에서 검찰과 변호인 양측이 각자 입맛에 맞는 해석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사실관계가 소명됐다'는 부분을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이 부회장의 공소사실 구성에 필요한 사실관계가 인정된다고 확인한 셈"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범죄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취지"라고 정반대로 이해하고 있다.
한 영장전담판사 출신 변호사는 "기각사유만 본다면 판사가 혐의사실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애초에 검찰이 수사를 모두 마치고 기소에 임박해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수사단계에서의 인신구속은 수사 초기 증거인멸이나 도주를 막기 위한 중대한 필요성이 있을 때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소위 '거물급' 수사에서는 검찰이 수사 성과를 확인받고 재판 초기 피고인의 기선제압을 위해 기소를 앞두고 불필요하게 영장청구를 하는 관행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검찰의 영장청구도 그러한 관행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원 부장판사의 '열린 결말'식 기각사유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해석이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새벽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반면 구속요건 원칙을 고려하더라도, 법원의 '원칙 해석'이 이 부회장 같은 부류의 피의자들에게 유리한 것은 사실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서울 소재 법원의 한 고위법관은 "실제 통계로도 주거가 불안정하거나 소득이 일정치 않은 취약계층에는 쉽게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그 반대인 이 부회장 같은 피의자들은 불구속수사를 받는 결과가 나타난다"며 "원칙이 어찌됐든 외관이 '불공정'해 보인다는 점은 법원이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도 법원은 증거가 상당 정도 수집돼 증거인멸의 우려가 낮다는 원칙적인 취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영향력과 지난해 실제 벌어진 증거인멸 사태를 고려한다면 여전히 공범인 최지성 부회장이나 삼성 임직원 등에 대한 말맞추기 가능성 등에서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단순한 사건이 아닌 부패범죄 등은 지시구조 등이 매우 복잡해 영장청구 시기가 늦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법원이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더욱 책임감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