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감독이 '프랑스여자'에 녹여낸 과거, 꿈,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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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영화 '프랑스여자' 김희정 감독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설행_눈길을 걷다'(2016) 이후 4년 만에 '프랑스여자'로 돌아온 김희정 감독은 '경계인'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온전히 발 디디지 못한 여자 미라(김호정)의 심연을 과거와 현재, 현실과 꿈, 기억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밀하게 그려낸다.

경계를 오가지만 결코 분절적이거나 단절적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스며들 듯, 물들 듯 자연스럽게 현재에서 과거로, 꿈에서 현실로, 기억에서 환상으로 퍼져나간다. 그 과정에서 미라의 감정과 심연이 경계와 장면에 녹아들며 관객들을 스크린 안으로 빨아들인다.

'경계'라는 건 나뉘고 구별되는 어떤 한계를 말한다. '프랑스여자' 속 미라는 1997년과 2015년을 오가며 자신의 기억과 무의식을 마주한다. 그리고 자신이라는 존재는 과연 어디에 설 것인가 찾아간다. 이 과정은 기묘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표현된다.

영화 개봉 하루 전인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희정 감독은 "드디어 완성되는 느낌이랄까. 대중에게 보이는 느낌이 좋다. 좋은 배우들과 함께해서 기대된다"며 "예술 영화는 첫 주 관객이 중요하다. 첫 주에 많이 봐주셔야 한다"고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김 감독에게서 '프랑스여자'의 시작과 영화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김희정 감독, 경험과 과거로 경계인 미라를 그리다

김희정 감독은 한국에서도, 외국에서도 언제나 이방인처럼 느끼는 이들의 상태를 그리고 싶었다. 미라는 이방인이고 경계인이다. 프랑스 파리 한가운데 서 있지만, 동시에 그는 서울에 있다. 미라는 2015년에 있지만 1997년에도 존재한다.

프랑스와 서울,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을 오가는 '프랑스여자'의 시작은 감독 자신의 경험과 외국에 사는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가 녹아난 작품이다. 그는 폴란드 우츠국립영화학교에서 7년간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외국에서 살며 스스로가 독립된 개체라는 걸 느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됐다.

"이제는 독일어가 더 익숙한 60대 여성 교포이자 화가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분 집에 초대받아 묵고, 다음날 선생님이 베를린 기차역까지 저를 배웅해주셨어요. 전철이 들어오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절 껴안고 우시더라고요. 그때 쓸쓸함, 애잔함 등 여러 복잡한 감정을 느꼈어요. 삶이란 무엇인가,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건 어떤 것인가 생각하게 됐죠."

영화에는 감독의 경험과 추억이 묻어난다.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덕수궁 안에서 수업을 들었고, 덕수궁이 문을 닫는 날에는 아무도 없는 눈 쌓인 덕수궁을 누빌 수 있었다. 감독은 어렸고, 그곳에서 연극 연출을 처음으로 공부했고, 많은 술자리에는 여러 청춘의 모습이 있었다. 극 중 1997년의 영은이 술을 마시고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추다 떨어져 다치는데, 감독도 같은 경험을 한 바 있다. 영화에 나오는 술집 '한잔할 청춘아'는 김 감독의 친구이기도 한 배우 안내상이 했던 술집 이름이기도 하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과거와 현재, 꿈와 현실, 그 삶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풀어가다

이별과 죽음, 그 경험과 경계에 놓인 미라는 많고 많은 과거의 기억 중에서도 굳이 20년 전인 1997년으로 돌아간다.

김 감독은 "그 시절 미라는 꿈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멋진 배우가 되어서 돌아올 거라는 생각으로 파리에 가기 전, 첫 발걸음 직전"이라며 "힘든 인생 속에서 희망으로 가득 차고 젊었던 시절,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던 때가 바로 그 시절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여자'는 미라를 따라 이곳과 이곳이 아닌 곳, 이 시간과 이 시간이 아닌 때 등 경계를 기점으로 구분되는 양측을 오간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오가면서도 이를 딱 잘라 구분하지 않는다. 경계인의 삶을 그리지만 카메라가 경계를 그리는 방식은 그저 자연스럽게 스윽 섞여 들어가는 것이다.

김희정 감독에게는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흑백처럼 과거로 넘어가는 유치한 방법이 아니라 꿈처럼 구현하고자 했다"며 "꿈에서 자기가 들어가면 그곳이 곧 과거이고, 문 열고 나오면 파리나 서울, 그런 식의 연결일 거로 생각했다. 박정훈 촬영 감독과도 벌써 세 번째 같이 하는 작품이다. 촬영 감독과 호흡이 맞아서 잘 구현된 거 같다"고 말했다.

경계 가장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위치한 미라는 희망과 꿈이 있던 젊은 시절, 그때 그 과거로 돌아갔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해란(류아벨)을 느낀다. 영은, 성우와 모인 자리에서 어떻게든 해란의 이야기가 나오고 심지어 해란을 닮은 연극배우 현아(류아벨)까지 만난다. 해란은 꿈에서도 미라를 찾아온다.

해란은 미라가 이루지 못한 꿈이자, 미라의 현실 상황과 어딘가 겹쳐진 인물이기도 하다. 미라를 향한 해란의 말들도 한 걸음 뒤에서 곱씹으면 하나로 모이고 연결됨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영화를 마지막까지 뒤따르다 보면 해란의 존재는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김 감독은 해란을 두고 미라에게 죄책감을 유발하기도 하고 질투심을 유발하기도 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연기를 잘한다고 인정받는 배우가 됐는데 우울감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요. 해란이 견디지 못해서 손 내밀었을 때 미라는 그 손을 잡아줄 수 없었죠. 직접 해를 가하지 않아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요. 사회적 사건이 있을 때 사회적 죄책감을 느끼듯이요. 그리고 결국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사는 사람을 살게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는 이해 안 되는 게 너무 많아요."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예술가의 책임으로 만든 영화, 이야기의 장이 되기를

'프랑스여자'에는 수많은 생명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5년 프랑스 파리 테러 사건이 언급된다. 미라가 존재하는 현실은 2015년이고, 그가 되돌아본 과거는 1997년이다. 공교롭게도 많은 죽음과 이별, 슬픔이 있던 해다. 앞서 감독은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에서도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이야기했다.

"현대에서 재난은 너무나 빈번하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추모하는 사람이 될 수도, 내가 추모의 대상이 될 수도 있어요. 이성을 가지고 소통하려는 현대인들은 모두 사회적 책임을 느낀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영향을 살피는 사람인 거 같아요. 기억하고 제대로 애도하고 제대로 슬퍼해야 더 좋은 사회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김 감독이 거듭 말하는 책임감이란 그런 거다. '잊지 않는 것'. 그는 "잊지 않아야 하고, 무감해지면 안 되는 거 같다. 그게 되게 중요하다"며 "코로나19도 관찰해야 할 하나의 대상이 됐다. 코로나19를 통해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현상이 나오는가, 그걸 관찰하고 이야기하는 건 예술가의 몫인 거 같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죽음과 슬픔과 그걸 마주하는 과정을 꾸준하게 그려온 김 감독은 이번 '프랑스여자'에서는 조금 더 깊은 무의식, 심연의 세계로 내려간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나의 의식이 가라앉아 있던 곳, 그곳을 마주하며 경계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려는 모습을 그린다.

김 감독은 관객들에게 '프랑스여자'가 한 줄로 정의되지 않는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복잡한 감정을 같이 본 사람 혹은 같이 본 친구들과 술 한잔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영화, 이런저런 해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를 조금 더 재밌게 관람할 수 있는 작은 팁도 전했다. 복잡한 감정과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영화를 보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느끼는 대로 보셨으면 해요. 어렵게 해석하려면 재미없는 영화예요. 피부에 느껴지는 대로 보면 재밌을 영화죠. 영화를 몇 번 보세요. 처음보다 두 번째 볼 때 더 좋고, 세 번째 볼 때는 두 번째보다 훨씬 좋은 영화예요."(웃음)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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