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성 작가 (사진=권혁주 기자)
올해는 청계천 봉제노동자로 일하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사망 50주년이 되는 해다.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분신으로 생을 마감한 그는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투쟁과 발전의 불쏘시개였다.
대한민국이 10대 경제 대국이 되고 군사정권의 독재와 인권유린, 폭압의 시대를 넘어 민주화를 이뤄내고 이만큼 발전된 데에는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눈에 잘 띄지 않을 뿐 노동현장 수십 곳에서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매일 불법과 차별에 절규하며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안재성(60)은 20대 초반 청계노조에 발을 들인 후 40년 넘게 이런 노동자들과 함께해 온 노동·민주화운동가이자 생생한 현장의 기록을 바탕으로 민초들의 억눌린 삶과 투쟁, 성취를 소설로 써온 작가다.
자신과 동료들의 노동운동에 바탕을 둔 소설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최근 전태일 50주기 기념 소설집 '달뜨기 마을'을 펴낸 그를 경기도 여주에서 만나 전태일 열사의 죽음의 의미와 작품, 또 삶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그가 처음 노동운동에 발을 들여 놓게 된 계기는 YH무역 사건이었다고 한다. 1979년 8월 YH무역 여성노동자 170여 명이 근로자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신민당사 4층 강당에서 농성을 벌인 사건이다.
당시 YH무역 사태가 국회에서 정치 문제화되자 박정희 정권은 8월 11일 새벽 2시에 이른바 '101호작전'을 개시했다.
경찰 1천여 명이 신민당사에 난입해 농성노동자 172명을 강제해산시키고 신민당 의원 및 취재기자들을 무차별 폭행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김경숙양이 추락해 사망하고 1백여 명이 부상당한 사건이었다.
"당시 전태일에 대해서는 잘 몰랐을 땐데 생존권을 달라고 외치던 여공이 죽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인생의 방향이 힘 없고 억울한 사람들을 돕자는 쪽으로 정해졌고 청계노조를 찾아간 계기가 됐죠. 어렸을 때 억울한 사람들을 돕는 외국 동화를 많이 본 것도 영향을 미친 거 같아요."
경기도 용인 태생인 그는 대여섯 살 무렵 서울 친척 집에 왔다가 길을 잃어버려 당시 상도동, 봉천동 일대에서 교량공사를 하던 노동자 부부로부터 일주일 정도 보살핌을 받았다고 한다.
"막노동을 하시는 분들이었는데 어렴풋이나마 힘들지만 착하고 열심히 사는 분들이라는 느낌이었어요. 다리 공사하는 것도 신기하고 재밌었고요."
청계노조에서 선전부장을 했던 그는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 때는 불법유인물을 돌린 혐의로 체포돼 복역했고 강원도에서 탄광노동운동을 하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모진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15명이 구속된 사건이었는데 수배생활 끝에 제가 제일 마지막에 잡혔어요. 다른 친구들은 여러 명이 잡혀 돌려가며 맞았는데 저는 혼자 24시간 닷새를 맞았어요. 지금도 후유증으로 많이 아파요. 전신 류마티즘으로 퉁퉁 붓는데 약은 먹지만 방법이 없어요. 김근태 전 고문이나 광주 윤한봉씨나 다 같은 거죠."
'달뜨기 마을' 책 표지
그가 올해 펴낸 전태일 50주기 기념 단편소설집 '달뜨기 마을'은 일제강점기 이후의 해방정국에서 6.25전쟁 그리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좌우의 대립에서 살기 위해 이리지리 휩쓸렸던 민초들의 지난한 삶과 억울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 책이다.
대부분 당사자 또는 가족들의 구술과 기록에 문학을 입힌 소설이다. 제일 앞에 실린 '이천의 모스크바'는 흔히 빨갱이로 표현되는 좌익 성향이 강했던 마을의 비극적인 역사를 기록한 소설이다.
시골 농부들이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얼마나 알았을 것인가. 마을 주민 수십 명이 빨갱이라는 이유로, 부역했다는 이유로 또 전쟁에 끌려가 죽임을 당한다.
인민군 치하에서 부역했던 사실을 숨기며 살고 있는 소설 속 노인은 사실 이런 얘기가 하고 싶다.
"빨갱이가 뭐가 문제라는 거여? 골고루 잘 먹고 잘 사는 게 뭐가 나빠? 부자들만 대대손손 잘 살고 가난한 사람은 죽도록 노예처럼 일만 해야 정상이야? (중략) (하지만) 이상이 아무리 좋으면 뭐하냐고 사람들이 싫어하는걸. (중략) 민초라 그러는 거지. 바람 부는 대로 이리 눕고 저리 눕고, 힘센 놈 따라 몰려다니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니까…" -책 39페이지-
안재성 작가는 "국가 권력이 망해서 군도 경찰도 없는 상태라면 오직 살아남고자하는게 민초들"이라며 "전쟁이 빚어내는 이런 참혹한 비극은 다시 없어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펴낸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에서도 독립운동을 했지만 북으로 가 교사를 하다가 원하지 않은 관료로 전쟁통에 휩싸인 한 청년의 비극적 삶을 그렸다.
포로로 잡힌 주인공은 수용소에서 반공포로로 전향한 인민군 고급간부들로부터 인간말살의 극심한 패악질을 당한다.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어쩌면 악마적인 인간의 모진 본성이 이데올로기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주인공은 예쁜 비서관이 전쟁터에서 도망쳐 서울서 함께 살자는 애원도 거부하는데, 지금의 당신 같으면 어쩌겠느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따라가죠. (웃음) 나이가 먹었으니 세상을 보는 여유가 생긴 거겠죠. 저도 20대 때라면 어떨지 모르죠"
전태일 50주기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
"전태일은 노동운동의 불길을 당긴 순수한 청년이었을 뿐이에요. 이후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노동자 한 명, 한 명의 힘이 합쳐져 오늘의 민주노조와 사회발전을 이뤄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봅니다. 아무리 지도자가 훌륭하더라도 각 개인이 불의에 맞서지 않으면 성취할 수 있는 건 없어요. 더 발전할 거라고 봅니다"
그는 현장의 구술이나 기록을 문학적으로 만든 소설이 아니라 개항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산업노동자들의 삶과 역사를 그린 실제 창작 장편소설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의외로 군산 같은 데는 공장이 많지 않았고, 인천에 노동인력이 많았어요.거기서부터 시작해 볼까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라며 웃었다.
민주화 운동과 5.18 광주항쟁 유공자이기도 한 그는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을 만큼 받기도 해 그런 쪽으로는 불만이 전혀 없다"며 "몸이 안 좋은 게 불안하지만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정의로운 사람들의 얘기를 오랫동안 쓰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