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혼란과 불안을 공포로 그려내려는 시도 '그집'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노컷 리뷰] 외화 '그집'(감독 알베르트 핀토)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TCO㈜더콘텐츠온 제공)

 

※ 스포일러 주의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는 모든 것이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미래를 그리기에는 현재조차 불안정하다. 그런 과도기의 현실이 주는 불안과 공포의 심리를 스크린에 구현해 낸 영화, '그집'이다.

'그집'(감독 알베르트 핀토)은 1976년 스페인 마드리드, 새 출발을 꿈꾸며 도시로 이주한 6명의 가족이 그 집에 이사 오게 되면서 겪게 되는 끔찍한 악몽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말라사냐 거리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가장 자유로운 분위기의 번화가이자 스페인 젊은이들의 메카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말라사냐에 있는 거리 '안토니오 그리로'(Calle de Antonio Grilo)의 또 다른 이름은 '스페인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죽은 거리'다. 감독은 실존하는 거리, 그곳에 얽힌 공포 분위기와 미스터리를 바탕으로 영화를 구상했다.

영화의 배경은 유럽 최후의 파시스트라고도 불리는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사망 직후다. 보수적인 가톡릭 국가 스페인이 민주주의 국가로 들어서기 전의 과도기다. 또한 말라사냐 지역은 독재자 프랑코 사망 이후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마드리드에서 벌어진 반체제 문화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1970년대 스페인의 사회상을 '그집'에 녹여내며 감독은 과도기 스페인을 은유하는 하우스호러를 만들어냈다.

가족은 더 나은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시골을 떠나 대도시 마드리드로 이주한다. 그들에게 전 재산을 털어 마련한 말라사냐가 32번지 집은 새 출발이자 희망이자 꿈의 상징과도 같다. 새로운 환경이 그들에게 행복을 전해줄 거라 믿는다. 사실 이 믿음은 아버지 올메도(이반 마르코스)의 바람이다.

엄마 칸델라(베아 세구라)는 올메도에 의해 처음으로 고향을 벗어나 대도시로 와 일자리를 구하고 적응하려 하지만 낯섦이 마음 언저리에 맴돈다. 페페(세르지오 카스텔라노스)는 일자리를 구하는 게 여의치 않고, 마음은 혼란스럽다. 암파로(베고냐 바르가스)는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가난도 집도 싫고, 마드리드는 그의 꿈의 장소가 아니다. 그는 스튜어디스가 되어 프랑스 파리로 떠나고 싶다. 이들에게 미래는 불분명하고, 그려지지 않는 무언가다.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TCO㈜더콘텐츠온 제공)

 

저마다의 이유로, 낯설고 안락함을 주지 못하는 새로운 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로 인해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로 가족들은 점차 공포에 사로잡힌다. 괴이하게 생긴 크리처는 갑작스럽게 나타나 가족을 위협하고, 심지어 막내 라파엘(이반 레네도)까지 납치한다.

연달아 발생하는 기괴한 사건에 가족들은 집을 떠나고 싶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전 재산을 털고, 그도 모자라 받은 융자가 가족들의 현실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암파로는 정체불명의 크리처에 의해 뱃속에 생명을 품게 된다.

가족들을 궁지로 내몬 그 집을 지배하는 존재는 남성으로 태어나 여성이 되고 싶었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은 이가 남긴 원념이다. 보수적인 사회에서 성 정체성의 혼란은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다. 남자이지만 여자로 살고자 하는 이를 가족들은 말라사냐가 32번지 집에 가뒀고,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집을 찾는 이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영화는 혼란스러운 1970년대, 시골과 도시, 부자와 빈자, 남성과 여성, 가부장제를 유지하려는 자와 이를 벗어나려는 자, 원치 않는 임신과 임신중단 등 논쟁의 중심에 있는 대립하는 가치관의 갈등과 가족과 집이 가진 전통적인 개념에 관한 의문을 공포 영화라는 장르를 빌려와 그려낸다. '그집'이 그려내는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은유는 아마 현재에도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는 안락하고 편안해야 할 '집'이라는 공간이 죽음의 위협이 가득한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데서 오는 전형적인 하우스 호러 영화다. 스페인 호러 영화답게 인물의 심리 변화를 통해 긴장을 유지해 나간다.

'그집'이 가진 설정이나 사회상을 공간과 인물들로 은유하려는 감독의 시도는 좋았지만, 이를 호러 장르에 효과적으로 녹여내지 못한 점은 아쉽다. 불쾌감과 긴장감을 자극하는 소리,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며 관객을 놀라게 하는 공포 영화의 기본적인 수사들이 반복적이면서도 빤하게 사용돼 공포 장르 자체가 주는 쾌감은 약한 편이다.

5월 27일 개봉, 104분 상영, 15세 관람가.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TCO㈜더콘텐츠온 제공)

 

0

0

오늘의 기자

    많이본 뉴스

      실시간 댓글

        상단으로 이동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다음 카카오채널 유튜브

        다양한 채널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제보 APP설치 PC버전

        회사소개 사업자정보 개인정보 처리방침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