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미누' 우리의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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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 영화 '안녕, 미누'(감독 지혜원)

(사진=영화사 풀, ㈜영화사 친구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본명 미노드 목탄, 한국에서 미누라 불린 그에게 '추방된 자'라는 꼬리표를 붙인 건 우리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법과 정책만이 그를 한국 밖으로 내몬 게 아니다. 한 명의 노동자이자 외국인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었던 그를 차별과 편견이 덧씌워진 눈으로 바라본 우리가 있었다. 다큐멘터리 '안녕, 미누'는 우리에게 외면당한 친구 '미누'에 관한 이야기다.

'안녕, 미누'(감독 지혜원)가 뒤쫓은 네팔사람 미누(본명 미노드 목탄)는 네팔 출신의 국내 이주노동자 1세대다. 그는 지난 1992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에서 노동자, 문화운동가, 밴드 보컬, 방송사 앵커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우리 사회 곳곳 연대가 필요했던 수많은 투쟁 현장에서 함께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그가 한국에서 마지막까지 '불법체류자' 딱지를 달고 살게 했고, 결국 그의 존재를 '불법'으로 만들어 한국에서 추방했다. 그렇게 미누는 한국에서의 18년 삶을 강제로 종료한 채 네팔로 떠났다.

미누의 인생이 한국에서 전환점을 맞이한 건 2003년이다. 전국에 사이렌 소리와 함께 사람에게 '불법' 딱지를 붙여 대대적으로 체포하겠다는 안내가 울려 퍼졌다. 미누는 모든 사람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이주노동자를 강제 추방하려는 움직임에 맞선다.

그가 택한 투쟁의 방식은 '음악'이다. 동료이자 친구인 소모뚜, 소띠하, 송명훈과 밴드 '스탑 크랙다운'(Stop Crackdown)을 결성해 음악으로서 세상에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밴드 이름부터가 그들을 한국 사회로부터 배제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저항과 우리들의 부끄러움을 일깨워준다.

미누는 노동자의 상징인 빨간 목장갑을 손에 끼고, 이주노동자의 삶이 녹아든 노래를 통해 한국 사회에 깊숙하게 뿌리 박혀 있는 차별과 편견의 시선에 균열을 내고자 했다.

(사진=영화사 풀, ㈜영화사 친구 제공)

 

한국에서 여전히 차별과 편견의 시선 끝에 놓인 '노동자'이자 '외국인'이자 노래로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꿈꾼 미누는 여러모로 우리 사회의 경계인이자, 우리가 경계 밖으로 밀어낸 우리의 '친구'였다. 꿈을 좇아 한국에 온 그를 쫓기는 처지로 만들고, 그토록 와보고 싶은 한국 땅에 발 한 번 붙이지 못한 채 그리움과 슬픔으로 마음을 채워 넣게 한 것은 '우리'였다.

네팔에서 미누는 한국에 일하러 가려는 네팔인들에게 "추방됐어요" 등의 한국어를 가르쳐야 했다. 그 모습 안에는 우리 경계 밖에 존재하는 이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하는지 고스란히 녹아있다. 여전히 미누는, 그리고 미누와 같은 이들을 우리는 친구가 아닌 바깥의 존재이자 '미등록 이주노동자'로만 바라보고 있다.

영화는 미누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동시에, 미누에 관해 어떠한 부연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저 2018년 미누의 갑작스러운 비보가 들려온 그날까지 미누의 삶의 궤적을 묵묵히 따라가며 관객들에게 미누가 누구인지 직접 마주하게끔 만든다. 결코 미누를 제3의 존재이자, 불쌍하거나 도와줘야 하는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또한 법과 제도의 허점 내지 비인권적 문제를 지적하기보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인 '존재'에 관해 묻는다. 그 끝에 우리와 우리가 아닌 그들을 가르는 장벽이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이를 관객에게 훈계하거나 계몽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속 장벽은 우리의 눈을 가린 채, 한 인간을 오롯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존재를 규정하는 게 단지 국적이나 그를 둘러싼 외부적인 것만이 아니듯, 미누의 삶을 들여다보고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네팔인 미누가 아닌 한 명의 존재 '미누'가 보이게 된다. 그렇게 영화는 누군가를 보고, 알고자 한다면 어떠한 세계로 누군가를 규정짓는 게 아니라, 오롯이 그 사람 자체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이 바로 '안녕, 미누'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소중한 메시지다.

올곧이 미누라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의 말에 귀기울이고 그의 삶에 관심을 가진 89분의 시간처럼, 이방인 혹은 타인을 바라볼 때 그러하라고 말이다. 89분의 시간이 쌓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차별과 편견의 시선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관성의 법칙에 조금씩 균열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미누가 보컬로 활동했던 밴드 '스탑 크랙다운'의 노래를 들어볼 것을 권해본다. 노동자의 삶이 어떠한지, 이주노동자로서 겪었던 이들의 삶을 잠시나마 돌아볼 기회가 될 것이다. 굳이 이러한 심오한 차원이 아니더라도 '스탑 크랙다운'의 노래는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가사를 흥얼거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5월 27일 개봉, 89분 상영, 12세 관람가.
(사진=영화사 풀, ㈜영화사 친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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