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유 감독이 그린 '장애' 향한 특별하지 않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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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영화 '나는보리' 김진유 감독

영화 '나는 보리' 김진유 감독. (사진=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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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유 감독은 봉준호 감독이나 김보라 감독 등의 인터뷰를 보고 있노라면 영화를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에 비해 자신은 영화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서다. 그가 영화를 하는 이유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걸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런 김진유 감독이 첫 장편 영화 '나는보리'를 통해 전하고 싶은 건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다.

과연 그가 말하고 싶은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들어봤다. 김 감독은 이야기 내내 영화만큼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사진=파도, ㈜영화사 진진 제공)
◇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시작된 '나는보리'


21일 개봉한 '나는보리'는 소리와 고요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열한 살 보리(김아송)의 성장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영화로, 코다(CODA⸱Child of Deaf Adult, 청각 장애를 가진 부모를 둔 자녀)에 관한 에피소드를 밝고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

영화는 외적인 요소로도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바로 '1인치의 장벽'이라 불리는 자막을 넣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김 감독은 "나 스스로도 한국 영화에 자막을 넣는 게 가능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배급사에서 흔쾌히 해보자고 했다"며 배급사인 영화사 진진에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단편영화 '높이뛰기'(2014)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겼다. 시작은 2015년 한국농아인협회에서 개최한 토크콘서트 '수어로 공존하는 사회'에 연사로 나선 수화통역사 현영옥씨의 이야기다.

"현영옥씨는 어렸을 때 소리를 잃는 게 소원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 소원이 이뤄져서 농인으로 살아가는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는 거예요. 영화같은 삶을 산 현영옥씨의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죠. 그런데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점점 제 이야기가 투영되더라고요. 저도 어릴 적 소리를 잃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저와 현영옥씨의 이야기가 섞이면서 지금의 '나는보리'가 완성됐어요."

영화 '나는 보리' 김진유 감독. (사진=박종민 기자)
◇ '소리'를 잃고 싶은 아이 보리, 그리고 김진유 감독

영화의 주인공인 보리는 가족 중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청인'(청각 장애가 없는 사람)이다. 아빠(곽진석)도, 엄마(허지나)도, 동생 정우(이린하)도 모두 듣지 못한다. 그래서 듣고 말해야 하는 일, 그러니까 자장면과 피자 주문도, 버스표를 끊는 것도, 택시 기사에게 내릴 곳을 설명하는 것도 모두 보리의 몫이다.

그런 야무진 보리는 가끔 부모님과 동생이 수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며 '나'만 가족과 다르다는 생각에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낀다. 그래서 매일같이 보리는 소원을 빈다. 엄마, 아빠, 정우처럼 소리를 잃고 싶다는 것이다.

김 감독도 어릴 적 보리처럼 소리를 잃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은행에서, 부동산에서 어린 그에게 전화해 알아듣기 힘든 전문용어를 이야기하니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이를 두고 김 감독은 일종의 '업무 스트레스'라고 표현했다. 그는 "내가 안 들리면 굳이 이 힘든 상황을 안 겪고, 어려움을 안 느껴도 될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보리네 가족은 수어와 홈사인(Home Sign·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몸짓 언어)을 함께 사용한다. 배우들 모두 수어통역사에게 수업을 받고, 많은 연습을 거쳐 자연스럽게 연기에 녹여냈다. 특히 배우 허지나와 곽진석은 자신들이 어색하게 하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다. 그들의 부담을 덜어준 건 농인(청각장애인 중에서 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농문화를 구축하고 공유하는 사람)인 김 감독의 어머니다.

"제가 사는 집 마당에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랑 모여서 고사를 지냈어요. 그때 허지나 배우가 우리 어머니 모습을 본 거죠. 어머니를 만나고 나서 연기할 때 편해졌다고 하더라고요."

김 감독이 거듭 배우들에게 말한 것처럼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중 한 사람임을 직접 보고 깨달은 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것이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말하고자 하는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도 바로 이러한 지점이다.

(사진=파도, ㈜영화사 진진 제공)
◇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리네…별반 다르지 않은 농인 가족의 삶

영화에는 유독 보리 가족의 일상이 반복된다.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고, 학교에 간다. 단잠을 자는 아빠와 그 옆의 반려견 코코, 그런 아빠 주위로 몰려드는 보리와 정우, 밥을 먹으며 대화하고 낚시하러 다니는 모습 등 여느 가족의 평범한 일상 그 자체다.

"농인 가족 안에서도 평범한 가정의 일상이 이뤄지고 있다는 걸 특별하지 않은 형태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보리네 모습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농인 가족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요."

보리네 일상 중에는 유독 자장면을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보리와 정우가 자장면을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영화를 보는 도중 식욕이 돋을 정도다. 이에 관해 김 감독은 웃으며 말했다.

"저도 영화를 찍으며 알았어요. 찍으면서 나에게 자장면은 뭔지 생각하게 됐죠. 집에서 어머니와 동생이랑 자장면을 자주 시켜 먹었는데, 생각해보니 외식을 한 경험이 없더라고요. 자장면을 시켜 먹는 게 집에서 즐기는 외식이었던 거죠. 제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은 일상이에요."


이처럼 여느 사람들과 같은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보리네 가족이다. 사실 소리를 잃고 싶다는 보리의 소원은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고민이다. 가족 혹은 또래 집단 안에서 나만 다르다는 느낌에 나도 그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누구나 겪는 성장통은 코다라고 특별할 바 없다.

영화 '나는 보리' 김진유 감독. (사진=박종민 기자)
◇ 중요한 건 '시선'…보리처럼 자연스럽게 그들을 마주하길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보리를 마주하다 보면 영화 제목인 '나는보리'에서 다양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누가 뭐라고 하든 한 가족의 일원이자 한 명의 존재로서 "나는 보리"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것 같다. 청각장애라는 외부적인 요소에 가려져 가족들의 진짜 모습과 그들의 마음을 보리 자신만은 봐주겠다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 제목을 '소원', '여름방학'이라고 짓고, 보리의 이름은 '보다'의 의미로 지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다 쓰고 보니 두 개의 제목이 와 닿지 않았죠. 다른 제목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보리가 당당했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보리'라고 지었어요. 그런데 보리를 계속 보니까 '날아간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성장하는 보리의 의미도 있는 거죠."

우리에게도 보리처럼 농인을 비롯한 장애인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김 감독은 말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가르고 장애인을 특별한 사람으로 바라보게끔 만드는 가장 큰 장벽은 바로 '시선'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지나가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바라보고, 도와줘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매체에서 불편함과 불쌍함을 강조했기에 그런 생각이 든다고 생각해요. 사실 잘 몰라서 그런 거죠. 사람들이 충분히 자주 마주치고, 알게 되고, 다르게 생각한다면 자연스럽게 장애인들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보리'는 바라보는 형태로 구성이 돼 있어요. 보리네 가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느끼고, 농인을 만났을 때 조금은 편해지면 좋겠어요."

(사진=파도, ㈜영화사 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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