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에 설탕물을 왜?…제주 명상수련원 사건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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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취재 토대로 사건 재구성

시신 방치 사건이 벌어진 명상수련원. (사진=고상현 기자)

 


지난해 제주시 한 명상수련원에서 심근경색으로 숨진 50대 남성 시신이 45일 동안 방치된 사건과 관련해 시설 원장이 27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을 보면 피고인은 망인이 깊은 명상에 빠졌고,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 때문에 시신을 매일 알코올로 닦고, 시신 주변에 향을 피웠다.

판결문과 취재 내용을 토대로 '제주 명상수련원 사건'의 전말을 전한다.

◇ "살릴 수 있다"며 유족‧경찰관 출입 막아

피해자 김모(57)씨의 연락이 두절된 건 지난해 9월 1일 밤부터다. 전남에 거주하던 김 씨가 아내에게 제주시 노형동 A 명상수련원에 수련하러 가겠다고 말하며 집을 떠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사건 초반 아내는 평소 피해자 부부와 친분이 있었던 시설 원장 홍모(59)씨와 계속 연락이 닿았던 터라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한 달이 넘도록 남편과 연락할 수 없자 아내는 급기야 제주에 내려왔다.

지난해 10월 9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피해자 아내가 남편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명상수련원을 찾아갔을 때 홍 씨는 아내를 가로막았다. "남편이 심장마비로 죽은 것을 지금 살려서 치료에 매달리고 있다" "일단 집에 가서 기다려라"라고 말하며 돌려 세웠다.

급기야 15일 피해자 아내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이 명상수련원에 들어가려고 하자 "현재 망인이 45일째 깊은 명상에 빠져 있는데 충격을 주거나 소란을 피우면 사망에 이를 수 있으니 망인을 보여 줄 수 없다"고 말하며 경찰관의 출입마저 통제했다.

◇ 45일 동안 무슨 일이

지난해 10월 15일 오후 경찰이 명상수련원 3층 수련실에서 피해자를 발견했을 때 시신은 상당 부분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시신 부검 결과 피해자 김 씨는 45일 전인 9월 1일 밤 심근경색으로 숨진 것으로 나왔다.

피해자가 숨진 직후부터 45일 동안 홍 씨를 비롯한 시설 관계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인다. 피해자 유가족과 119에 피해자의 상태를 알리기보다는 철저히 은폐하고, '수상한' 처방을 한다.

먼저 수련실로 올라가는 계단에 '출입금지' 표지를 부착해 사람의 출입을 통제했다. 매일 망인의 시신을 알코올로 닦았다. 시신 주변에 향을 설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신 부패 냄새가 번지는 것을 막았다.

아울러 피해자가 연명할 수 있게 설탕물을 적신 솜을 피해자 입가에 올려놨다. 또 한방 침으로 수시로 피해자 몸에 편 수포를 터뜨렸고, 모기장을 쳐 벌래가 꼬이는 것을 막았다.

명상수련원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수련시간 안내글 갈무리.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 주화입마가 뭐 길래

피고인 홍 씨가 이런 행위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피고인 홍 씨는 재판 과정에서 "당시 피해자가 '주화입마' 상태에 빠졌고, 기 치료의 도움을 받아 조만간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주화입마는 심리적인 원인 등으로 몸속의 기가 뒤틀려 통제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깊은 명상에 빠지다보면 주화입마 상태를 자주 보이는데, 홍 씨는 피해자가 곧 일어날 거라고 믿고 매일 시신을 알코올로 닦고, 설탕물을 먹이는 등의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1심 재판부는 '혹세무민'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피고인을 강하게 비판했다. 혹세무민은 그릇된 이론이나 믿음을 이용해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재판부는 "망인의 배우자는 남편이 사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강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인데, 피고인의 허황된 말을 믿고 기다리기만 했다는 죄책감과 고통을 함께 느끼며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수차례 탄원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유족에게서 망인에 대한 충분한 애도와 추모의 표할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았다"라고 지적했다.

제주지방법원. (사진=고상현 기자)

 


한편 27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유기치사와 사체은닉 혐의로 구속기소 된 홍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피해자를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유기치사)는 무죄로 판단했다. 검찰의 증거만으로 홍 씨가 피해자를 발견했을 때 이미 숨져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사체를 장기간 방치한 혐의(사체은닉)만 유죄로 인정했다.

홍 씨와 함께 재판에 넘겨진 시설 관계자 3명도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 또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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