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일상 부수는 스토킹…처벌은 고작 '1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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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범죄 단속·처리 건수 5년 새 2배 증가
관련 법 없어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경범죄 처벌·사안별 형법 등에 의율
스토킹 피해자 지원도 '사각지대'
스토킹 처벌 관련 법안 국회에 계류…"스토킹 처벌법 제정해야"
경찰청, '스토킹 처벌법 입법' 박차…연구사업 입찰

(일러스트=연합뉴스)

 

"스토킹 범죄는 현행법상 담배꽁초를 버린 행위와 마찬가지로 취급된다. 과태료를 부과할 뿐, 마땅히 처벌할 법이 없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스토킹 범죄가 어떻게 처벌되는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경찰은 최근 바둑기사 조혜연(35) 9단을 1년 넘게 스토킹한 남성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도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한 수사관은 이에 대해 "들끓는 여론의 힘을 받아 가능한 처벌"이라고 평가했다.

스토킹 범죄 피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 단속·처리 건수는 2014년 297건에서 지난해 583건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스토킹 관련 법안 5건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그사이 스토킹 가해자들은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해 "법대로 하라"며 피해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 스토킹에 시달려 무너진 피해 여성들의 삶

여성 A씨는 수개월 동안 전 남자친구의 스토킹에 시달렸다. 집 앞을 찾아왔고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보냈다. A씨를 불법 촬영한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A씨를 때리고 그녀의 가족에게까지 연락했다.

A씨의 일상은 무너졌다. 하루 3시간도 못 잤고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앓게 됐다. 밤에도 방 불을 켤 수 없었다. 불이 켜지면 가해 남성이 또 찾아와 A씨를 위협했다. 세탁기도 돌리지 못했다. 소리를 듣고 자신이 집에 있는 것을 남성이 알게 될까 하는 두려움에서다.

용기를 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사안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남성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수사기관이 영장을 재청구하고 변호인이 "누구도 몸과 일상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호소한 끝에 법원은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스토킹은 온·오프라인 경계를 넘나든다. 가해자들은 온라인에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거나, 피해 여성의 가족까지 위협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이에 피해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신고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10년 넘게 스토킹 피해를 보다가 상담소를 찾아 처벌이 가능한지 묻는 여성들도 있다.

◇ '스토킹 처벌법' 없어 가해자 처벌·피해자 지원 모두 無

스토킹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은 통상적으로 경범죄 처벌법을 적용해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경범죄 처벌법 제3조 제41호는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해 면회나 교제 요구,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해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에게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나 과료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바둑기사 조혜연씨도 이달에만 경찰에 3차례 신고했지만, 남성은 과태료 5만 원만을 냈다.

현재 스토킹 행위 자체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은 없다. 사안에 따라 협박, 명예훼손, 모욕 등의 혐의를 의율한다.

경찰 관계자는 "스토킹 신고가 처음에 들어오면 경고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며 "행위가 반복되면 과태료를 부과하고, 여러 차례 스토킹하거나 언론에 보도되는 등 사안이 심각하면 형법 등을 적용해 영장을 신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만 "스토킹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 없어 수사관이 자체 판단해야 한다"며 "피의자 인권도 보호해야 하고 영장을 신청해도 기각되는 비율이 높아 현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처벌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관련 법률이 없다 보니 스토킹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또한 제한적이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해선 3년마다 실태 조사가 이뤄지고 현행 지침상 의료비를 지원하지만, 스토킹 피해자들은 사각지대에 있다.

스토킹 범죄를 바라보는 수사기관의 안일한 인식도 문제로 꼽힌다. 피해 여성들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사귀었던 사이 아니냐", "당신을 너무 좋아해서 그러는 거다"와 같은 말을 수사관에게 들었다고 전했다.

법무법인 온세상 김재련 변호사는 "가해자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10만 원 미만의 벌금형에 그친다면 누가 경각심을 갖겠느냐"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최선혜 소장은 "벌금 부과에 그쳐도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기억해내 가해 남성의 혐의를 증명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3일 조혜연 9단이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글

 

◇ 관련 법안 국회 계류…경찰, '스토킹 처벌법' 입법 박차 가하나

스토킹 처벌 관련 법안 5개가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여전히 잠자고 있다. 5월 임시국회 내에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정춘숙 의원이 2016년 대표 발의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은 상대방의 동의 없이 반복적으로 행위를 해 자유로운 생활을 침해하는 행위를 스토킹으로 규정하고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적극적인 임시보호 조치 등을 촉구했다.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사위는 당시 검토 보고서에서 "스토킹 방지를 통해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한다는 제정 목적은 다소 포괄적이라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스토킹은 행위 유형이 다양하고 단순한 애정표현이나 구애와 구분하기 어려우며, 심각한 스토킹은 형법상 폭행죄, 협박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어 별도 법률을 신중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그사이 스토킹 범죄가 늘면서 경찰은 스토킹 처벌법 입법을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경찰청은 최근 '스토킹 처벌법 관련 쟁점 및 개선방안 연구사업'에 착수했다.

경찰은 '경찰→검찰→법원' 3단계 결정구조로 피해자 보호 조치가 지연되는 점 등을 고려해 개선안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호주·미국 등 영미법 국가에서는 '스토킹 방지법'을 제정해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주변을 배회하는 행위 등을 범죄로 보고 처벌하고 있다. 또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지, 초대하지 않았지만 일주일에 3번 이상 찾아온 적이 있는지 등 스토킹 여부를 구분할 수 있는 체크 리스트를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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