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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화 거목' 김병상 몬시뇰, 인천에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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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인천 답동성당서 장례미사 거행

고(故) 김병상 필립보 몬시뇰. (사진=천주교 인천교구 제공)

 

고(故) 김병상 필립보 몬시뇰(원로사목)이 27일 오전 장례미사를 끝으로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이날 오전 10시 인천시 중구 답동성당에서 열린 장례미사에는 독재정권 하에서 민주화운동을 위해 온 몸을 던진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민생당 손학규 상임선대위원장, 더불어민주당 홍영표·윤관석·박찬대 의원, 동료 신부·수녀, 신도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정신철 천주교 인천교구 주교는 강론에서 "고 김병상 몬시뇰은 사제 생활 51년 동안 모든 것을 바쳐 사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삶 전체로 보여줬다"며 "정의구현사제단 활동을 통해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투신했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노력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이어 정 주교는 고인에 대해 "우리 국민이 진보·수구, 영남·호남, 기득권·소외계층으로 갈라지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하나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회상했다.

고인은 1932년 충남 공주에서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1969년 늦은 나이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48년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 때 폐결핵에 걸려 학업을 중단했다가 1963년 병마를 이겨내고 가톨릭신학대에 재입학했다.

고인은 반평생을 민주화운동을 하며 사회운동의 현장을 지켰다.

1974년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유신독재 비판 뒤 구속된 사건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눈을 뜬 고인은 1976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창립 회원으로 참여했다. 1977년에는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는 기도회를 주도하다 구속됐다.

1976~1980년에는 인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긴급대책위원장을 맡아 노동자들과 연대했으며, 1989~1995년 정의구현사제단 공동대표를 지냈다. 또 같은 기간 인천에서 양심적인 지식인 40여명과 함께 창립한 '목요회'의 초대 회장을 맡아 인천시민운동의 주춧돌을 마련했다.

이후 인천 굴업도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대책위원회 상임대표,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초대 위원장,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을 지내며 사회적 약자와 정의·평화를 위한 운동에 앞장섰다.

고인은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몬시뇰은 주교품을 받지 않은 가톨릭 고위성직자에게 부여하는 칭호다.

고인은 2018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투병하다 25일 새벽 88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정부는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국민훈장 모란장(2등급)을 추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답동성당에 전달한 애도의 글을 통해 "신부님은 늘 따뜻했던 사제이면서 유신 시기부터 길고 긴 민주화의 여정 내내 길잡이가 되어주셨던 민주화운동의 대부였다"며 "오랫동안 병고를 겪으셨는데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미사가 끝난 뒤 고인의 시신은 후배 사제들의 손으로 인천 백석 하늘의 문 묘원 내 성직자 묘역으로 옮겨져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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