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윤미향 후보 제공)
더불어시민당 비례명부에 7번으로 이름을 올린 윤미향 후보가 '반미 성향을 보인 윤 후보의 자녀가 미국 유학 중'이라는 보도 탓에 곤욕을 치렀다. 조선일보가 윤 후보의 과거 발언을 문제 삼아 자녀 유학과 엮은 것인데, 윤 후보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가 반미에 앞장섰다고 여길 만한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조선일보는 지난 30일 '[단독]反美 구호 외친 시민당 비례, 자녀는 미국 유학'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 소속으로 4·15 총선에 출마하는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의 딸이 미국 명문대에서 유학중인 것으로 30일 확인됐다"고 전했다.
특히 "시민당 비례대표 7번에 배치돼 당선이 유력한 윤 후보는 그동안 여러 차례 반미(反美)적 목소리를 내왔다. 정치권에선 "반미를 외치면서 자식은 미국 유학 보낸 건 좌파적 내로남불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우선 윤 후보의 자녀가 미국 유학 중이란 보도 내용은 사실이다. 윤 후보의 자녀는 2018년 9월 미국 UCLA 대학에 합격해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하지만 "윤 후보가 진보 시민단체 대표로 있으면서 평소 반미 구호를 앞장서서 외쳐왔다"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조선일보가 '진보 시민단체'라고 일컬은 단체도 일본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워온 정의기억연대(정의연)다.
조선일보가 윤 후보의 성향을 '반미'로 정의하며 기사에 제시한 근거는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 다였다. 윤 후보는 지난 2017년 4월 본인의 페이스북에 '사드 배치 이틀 만에 날아온 '10억불 청구서''란 기사를 공유하며 "대선 주자들. 이래도 국익 때문이고 안보 때문이냐. 미국의 무기 장사 시장바닥일 뿐인 거야"라고 썼다.
윤 후보가 공유한 기사는 사드 정국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약속을 깨고 한국 정부에 사드 장비 비용까지 부담하라고 압박하고 나섰다는 내용이다. 윤 후보가 페이스북에 남긴 수많은 글들 중 미국을 비판한 게시물 하나를 꼬투리 잡아 '반미에 앞장섰다'고 보도한 셈이다.
실제로 윤 후보가 남긴 글 대부분은 정의연 활동과 관련한 내용들이다. 정의연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통합한 단체로, 윤 후보가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윤 후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앞장서 왔다.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뒤 정대협 간사로 활동하며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배상, 피해 할머니의 인권 회복 운동에 몸담았다. 정대협 사무국장, 사무총장에 이어 상임대표를 지내면서 매주 수요집회를 열어 왔다. 조선일보가 지적한 반미 운동과는 거리가 멀다.
과거 수요집회에 참여한 윤미향 후보(당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와 故김복동 할머니. (사진=윤미향 후보 페이스북 갈무리)
조선일보는 또 윤 후보의 남편 김삼석 수원시민신문 대표가 겪은 간첩조작 사건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미 간첩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판결나고 국가 배상까지 이루어진 사건이다.
김 대표와 동생 김은주씨 남매는 지난 1993년 국가안전기획부가 조작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남매간첩단'으로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김씨 남매는 20년이 지난 2014년 재심을 청구했고, 핵심 혐의였던 반국가단체인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관계자들에게 국내 동향이나 군사기밀이 담긴 문서 등을 넘겼다는 혐의에서 무죄를 인정받았다. 다만 한통련 의장 등을 만나고 이 단체에서 금품을 받은 사실에 대해선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재심 확정 이후 윤 후보와 김씨 남매 등은 "불법 수사로 남매간첩단이라는 오명을 쓰고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심 재판부는 2018년 7월 "안기부 수사관들이 영장 없이 김씨 남매를 체포해 가혹 행위로 자백을 강요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국가는 총 1억8천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조선일보 기사로 윤 후보가 반미주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자 중앙대 이나영 사회학과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들 가족을 18년간 지켜본 사람으로 침묵할 수 없어 한 자 남긴다"며 보도를 반박했다.
이 교수는 "윤 후보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다. 민족의 자존심, 독립국가로서의 자주권을 일관되게 주장해왔을 뿐"이라며 "낡아빠진 '반미 프레임'을 씌워 낙인 찍으려는 조선일보는 과연 누구를 대변하는 신문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후보 자녀에 대해선 "사회운동을 하는 부모덕에 어려서부터 건강한 사회의식을 기르며 독립적으로 성장해왔다"고 회상하며 "바쁜 부모는 자칫 넘어갈 수도 있었던 재능을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발견하고 스스로 역량을 길러 기적같이 음대 입시를 통과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가진 재능을 더 큰 일을 하는 데 쓰고자 넓은 세상에 나가고자 했다. 역시 혼자서 준비하고, 장차 하고픈 일에 가장 적합한 학교에 지원해 장학금을 받고 진학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윤 후보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제가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다고 딸이 희생양이 될 줄은 몰랐다"며 "저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딸이 대견하기만 한데 조선일보 등은 딸의 유학이 마치 큰 도덕적 결함인 것처럼 공격하고 있다. 비인간적으로 기사를 쓰는 일부 언론에 대해 뭐라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반미' 지적에 대해선 "페이스북에 남긴 글은 우리나라에 지나친 국방비를 요구하는 미국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비판한 것일 뿐"이라며 "저는 주로 미국에서 활동을 해왔다. 미국 정치권에서 위안부 문제에 나서주기를 바라면서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수많은 미국 정치인들을 만나고 언론과 인터뷰했다. 그렇게 목소리를 내왔다. 저는 한 번도 반미·반일과 같은 표현을 입 밖으로 꺼내본 적 없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메시지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