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이 묻는다,'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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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김지은입니다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신간 김지은입니다(사진=봄알람제공)

 

텔레그램에서 여성들의 성 착취물 영상을 제작하고 유포한 이른바 'n번방'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2차 가해가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의 신상이 인터넷 상에 오르고, 포털사이트 댓글창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텔레그램 성범죄 피해자의 행실 등을 문제 삼는 '2차 가해'가 이뤄졌다.

성폭력 사건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피해자다움'.

'피해자다움'이라는 프레임의 대표적인 피해자인 김지은은 묻는다.

과연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인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을 폭로해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판결을 끌어낸 김지은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고발을 시작한 2018년 3월 5일부터 2019년 9월 9일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판결을 받기까지 554일간을 기록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왜 네 번이나 당해?"
나는 이것을 안희정에게 묻고 싶다.

"왜 그렇게 당하면서까지 일에 목을 맸느냐?"
"정조보다 무엇이 더 중요했습니까?"
"피해자답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가 아니다"


저자는 안희정과 싸워온, 유죄 판결 이후에도 '피해자다움'과 싸워온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녀는 또 다른 감옥에 갇힌 것 같았다. 항상 검은 마스크에, 모자에, 온몸을 꽁꽁 싸메고 다니고, '김지은'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는 것이 고통스러워 세탁소에도 가지고 못했다. 피해자가 재판 중에 밝은 색깔 옷을 입으면 구설수에 오를까 봐 검정색 계통의 옷만 입었다. '피해자다움'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갇혀 살 수 밖에 없었던 지난 시간을 술회한다.

"성폭행은 성폭행대로, 2차 가해는 2차 가해대로, 사생활 침해는 사생활 침해대로, 언어폭력은 언어폭력대로, 괴롭힘은 괴롭힘대로, 모욕은 모욕대로, 명예훼손은 명예훼손대로 각기 다른 화살들이 모두 다 내 심장을 정확히 관통했다. 죽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p235~236

"성폭력이 신체와 정신에 가하는 살인이라면, 2차 가해는 현재의 삶, 과거와 미래, 자아, 인격에 대한 살인이었다. 성폭력이 비공개 살인이라면, 2차 가해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칼로 난도질하는 살인 같았다"
p275

"지금 내 삶은 선인장의 삶이다. 누군가의 취미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상품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눈요기가 되기도 한다. 페이스북,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에 나는 매일 매시간 진열된다. 악성 댓글로 스트레스를 푸는 대상이 되기도 하고, 낚시 글, 낚시 영상으로 광고 수익 요인이 되기도 한다. 희희락락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성적 대상화가 되어 외모며 몸매 품평을 당한다. 나를 보호해주던 가시조차 뽑혀 피가 뚝뚝 흘러내린다"
p265


"성폭력 피해자의 조건을 만들어놓는 것이 옳은 일일까? 성폭력 가해자의 수단과 방법에 집중해서 그걸 예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왜 모두가 피해자의 잘못이 되는 걸까?"
p271


2차 피해의 고통으로 자해를 하고 정신과 입원까지 했던 저자는 자신이 진실을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며 살아 남는다.

"나는 생존자이자 치유자로 남고 싶다. '단편적인 피해자다움'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말투, 표정, 행동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피해자다움의 형태도 물론 다를 수 밖에 없다. 피해자는 자기의 언어로 표현한다. 각기 다른 형태의 자신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예요." "잘 고발하셨어요"라며 손잡아 주고 싶다."
pp255~256


최초의 JTBC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인터뷰 이후 언론에 절대 드러내지 않았던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나의 경험을 '피해자'의 언어로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들이 말하지 못했던, 감춰야만 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적어도 피해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출판사인 봄알람 관계자는 "저자가 오랜 침묵을 깨고 용기 내 이제야 피해사실을 말하기 시작했다"면서도 "여전히 계속 조심하고 밖에도 잘 못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책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 역시 '재판'이라는 시스템을 통한 '2차 가해'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며 "그의 기억은 이제 우리 모두의 기억이 되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취업준비생인 김모(26)씨는 "피해자의 언어로 정리된 기록을 보니 '피해자다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법정 증언과 2차 가해가 더 무섭다는 것을 느꼈다"며 "그러함에도 저자가 '피해자다움'을 정면으로 깨부수려는 거 같아 굉장히 가슴이 벅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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