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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계'가 n번방 빌미? 또 '순결한' 피해자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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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딥이슈] "n번방 피해자들 '일탈계'로 음란물 유포" 주장
변호사 "n번방으로 정상참작 가능성…피해자 빌미삼으면 안돼"
시민단체들 "가해자에게는 면죄부 주고 피해자는 낙인찍어 입막음"

텔레그램에 '박사방'을 열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박사' 조주빈(25)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가운데 경찰서 앞에서 조주빈 및 텔레그램 성착취자의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미성년자·여성에 대한 가학적 성착취가 발생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두고 또 한 번 '순결한 피해자'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다.

반이정 미술평론가는 최근 SNS에서 n번방 70여명의 피해 여성들에 대해 "'피해자'로 퉁쳐지는 70여명 여성들은 보도처럼 순진하고 무고한 여성들이 아니다. 지금 한쪽으로 쏠린 분위기 때문에 여성의 잘잘못이 거론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 근거로는 피해 여성들이 '일탈계'를 운영했다는 사실을 내세웠다.

'일탈계'는 성별 구분없이 주로 10대~20대 초반 이용자들이 SNS에 성적 욕망을 표출하는 계정이다. 이들은 신상을 노출하지 않은 채, 자신의 신체 일부 촬영물을 게시하거나 공유한다.

반 평론가는 이를 주로 젊은 여성들이 운영하는 계정으로 규정하면서 "음란물유포죄로 실정법 위반이다. 그런 점을 악용해 '방'을 개설한 남성들이 협박을 하거나 혹은 고액알바 거래에 응하다가 걸려든 사람들이 '피해자'의 실상"이라고 꼬집었다.

'음란물 유포죄'라고 통칭해서 부를 뿐, 실제로 이런 명칭의 죄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내 불법정보의 유통금지 조항이 정보통신망을 통해 음란물을 유통·배포·판매·전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김보람 변호사는 26일 CBS노컷뉴스에 "물론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나 정통법(정보통신만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 소지가 있을 수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당연히 n번방 피해로 인해 정상참작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10대 청소년이라면 더욱 그렇다"라고 밝혔다.

또 "피해자를 빌미삼아 n번방 성범죄와 연결시켜 그런 주장을 펼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완벽한 피해자일 때만 보호하겠다는 사회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피해자들도 '음란물 유포 범죄자'라는 비난은 여성과 남성 신체에 대한 성적 소비의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탈계' 운영방식만 봐도 남성들은 아예 얼굴을 노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성은 거의 그렇지 않다. 같은 '일탈계'를 운영했어도 남성들은 n번방 성착취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김여진 피해지원국장은 "음란물 유포 관련 현행법은 젠더 위계, 젠더 권력 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를 반영해 바뀔 필요가 있다. 유포된 음란물이 어떻게 소비되느냐 그 맥락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남성의 성기사진에 여성은 모욕감을 느껴 신고하고, 여성의 성기사진을 남성은 성적으로 소비한다. 왜 누구의 신체는 폭력이 되고, 누구의 신체는 성적인 전시로 취급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이 사회가 여성과 남성의 몸 자체를 다른 관점에서 소비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래픽=안나경 기자)

 

특히 청소년들의 '일탈계'는 성적 호기심의 결과물이거나 또래나 가정에서 소외된 10대가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단순히 '일탈계'를 운영했다고 해서 이런 10대 청소년의 '취약함'을 이용한 가학적 성범죄가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아동·청소년·여성을 위한 단체 탁틴내일 이현숙 상임대표는 "정상적인 어른이라면 이런 청소년들을 '그루밍'하거나 성적으로 착취하지 않는다. 안전하게 돌보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일탈계'를 운영했기 때문에 함부로 취급돼도 된다는 논리, 피해자에 초점을 맞춰 탓하는 논리는 정당하지 않다"라고 비판했다.

성범죄 피해자에게 순결성·순수성을 검증하는 흐름은 이미 예전부터 존재해왔다. '미투' 운동 당시에도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가거나 가해자는 '무고를 당했다'는 식의 동정 여론이 일기도 했다. 결국 피해 여성들을 향해 사회적으로 낙인을 찍으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계속된다는 분석이다.

이 상임대표는 "남성들의 시선에서 생산되는 포르노나 게임은 여성을 폭력적으로 재현한다. 그렇다보니 여성에 대한 성인식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며 "그 결과, 막상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는 입을 닫고, 피해자에게는 '빌미를 준다'며 비난한다.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문화가 지금도 만연하다"라고 전했다.

피해자를 향한 이 같은 시선은 2차 가해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성범죄를 낳는다. n번방 주범인 운영자들이 성적 사진을 올린 피해자의 신상을 확보해 '협박'·'강요'할 수 있었던 자신감 역시 여기에서 비롯됐다.

이 상임대표는 "낙인효과는 또 다른 피해자들의 공포를 키운다. 성적으로 불합리한 협박이나 강요를 당했을 때, 왜 그들은 말하지 못했을까. 엄연히 여성과 남성의 성표현을 다르게 바라보는 사회의 차별적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순결 프레임으로 완성되는 사회적 입막음이 가해자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피해자는 침묵하도록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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