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장', 평범한데 강력한 가부장제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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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개봉한 영화 '이장' (사진=㈜인디스토리 제공)

 

첫째 딸 혜영(장리우 분), 둘째 딸 금옥(이선희 분), 셋째 딸 금희(공민정 분), 넷째 딸 혜연(윤금선아 분), 막내 승락(곽민규 분). 영화 '이장'(감독 정승오) 속 오 남매 구성은 이렇다. 승락은 태어났을 때부터 서열 1위였다. 누나들은 뭘 할 때 늘 넷이 나눠야 했지만, 승락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언제나 온전한 자기 몫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도 옷도 따로 썼다. 오 남매 중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유일한 인물이 승락이다. 단지 '장남'이란 이유로.

영화 '이장'에 나오는 오 남매 모습은 크게 파격적이거나 독특하지 않다. 한국사회의 평범한 집안 하나를 파고들어 바라본 느낌이다. 어쩌다 돈 잘 버는 남편과 결혼한 금희 말고는 대부분 근근이 살아서 돈 한 푼이 아쉽다. 각자 살기에 바빠 자주 만나지 않는다. 친밀도가 제각각이라 다섯 명이 서로 고른 빈도로 연락하지도 않는다.

쉴 새 없이 훅하고 들어와 신경을 건드리는 것은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말과 행동과 태도다. 여자들은 일하는 재주가 있어도 있으나 마나 한 존재란 뜻인지, 큰아빠(유순웅 분)는 어떻게 장남도 없이 무덤을 파냐고 역정을 낸다. 혜연이 "우리는 자식 아니에요? 우리도 자식이에요!"라고 맞서봐야 소용이 없다. '장남이 있어야 일이 된다'고 믿는 큰아빠 으름장에 왔던 길을 돌아간다.

등장인물들은 선인이나 악인이 아니다. 적당히 세속적이고 이기적이다. 여자 담임 선생님 말과 엄마 말을 특히 더 귓등으로 듣는 초등학생 아들(강민준 분), 혼외 연인에게 선물까지 사 들고 가는 사람, 곤란한 일이 벌어졌다는 이유로 문제를 회피하고 모든 연락을 끊은 사람, 생활비가 부족하다면서 여자친구에게 자기 부모님 생신은 따로 안 챙겨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 장남에게만 술을 따라주고 발언권을 주는 사람… 전혀 새롭지 않은 꼴인데도 제한된 시간에 압축적으로 보니 방어력이 달렸다.

한국사회에 그득한 '가부장제'의 흔적을 부지런히 모아 영화 곳곳에 배치한 솜씨가 탁월하다. 어떤 것도 '영화를 위해 동원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다. "여자가 아들 낳는 게 중요하지, 안 중요하냐?", "집구석에서 살림만 하는 게 힘들면 얼마나 힘들다고!" 등 짧은 대사만으로도 감정을 자극한다.

어찌 보면 속 터지는 상황을 매우 태연한 자세로 관찰하는 영화의 태도가 흥미롭다. 거기다 이 모든 풍경은 뿌리 깊은 제도의 폐해에서 비롯됐다는 걸 보여준다. 어긋나거나 모자란 '개인'을 탓하며 문제를 사소화하지 않는 미덕을 갖췄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모두를 조금쯤은 이해하게 된다.

배우들은 아주 대중적으로 알려진 얼굴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 더 잘 녹아든다. 정말 저런 이모와 삼촌이, 큰아빠와 큰엄마가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배우는 짓궂은 장난을 많이 치는 초등학생 동민 역을 맡은 강민준이었다. 영화 시작 5분도 안 돼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정도로만 귀띔하겠다.

내 감상보다는 타인의 감상이 궁금해 여럿이 보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싶은 영화.

25일 개봉, 상영시간 94분 16초, 12세 이상 관람가, 한국, 드라마·가족·코미디·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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