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는다면 '파라다이스'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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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 외화 '파라다이스 힐스'(감독 앨리스 웨딩턴)

(사진=㈜올스타엔터테인먼트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나의 모습이 내가 아닌 타인과 사회가 정한 법칙에 따라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온전한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의 삶이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정해지고 따라야 한다면, 그것은 나의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

'파라다이스 힐스'는 아름다움이 완성되는 고립된 그곳 '파라다이스 힐스'에서 벌어지는 판타지하고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다.

영화는 자신도 모르게 파라다이스 힐스라는 낯선 곳에서 깨어난 우마(엠마 로버츠)의 당혹스러운 모습에서 시작한다. 어떻게, 누구에 의해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 섬에서 우마가 아는 것이라고는 통제된 일상이다. 초대된 모두에게 아름다움을 완성해주는 곳이라고만 알고 있던 낙원(파라다이스)이 비밀을 품고 있다는 데 반전이 있다.

여성 감독 앨리스 웨딩턴과 엠마 로버츠를 비롯해 아콰피나, 밀라 요보비치, 에이사 곤살레스 등 할리우드 여성 배우들이 만나 주목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파라다이스 힐스라 불리는 고립된 섬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초대받은 여성들은 자신의 색을 빼앗기고 흰색 옷만 입게 된다. 섬에서 색을 지닐 수 있는 것은 공작부인(밀라 요보비치)과 화려한 색을 지닌 꽃 등 자연뿐이다. 공작부인은 파라다이스 힐스에 온 여성들을 의뢰인의 입맛에 맞춰 개인의 개성을 빼앗고 재구성하는 인물이다.

여성들이 색을 되찾고 섬의 규율이 정한 흰색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섬을 빠져나갈 때다. 그리고 섬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곧 '자신'을 잃는다는 의미이다.

흰색 의상을 입은 이들은 마치 연구실에 갇힌 흰색의 모르모트(실험용 쥐)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순히 아름다움과 여성성을 배우고 강요받는 듯한 파라다이스 힐스의 숨겨진 비밀은 타인을 개조시켜 새로운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원래의 '나'는 나를 대체할 누군가를 위한 매뉴얼일 뿐이다.

(사진=㈜올스타엔터테인먼트 제공)

 

현실에서도 여성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재하기보다 결혼을 위해, 부모의 요구에 의해, 사회가 만든 기준에 의해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고, 단장하고 원하는 바를 포기한다. 날씬하고 아름답고, 순종적인 '여성상'을 바라는 이와 사회로 인해 '나'라는 존재를 잃어간다. 타인의 욕망을 위해 '나'는 버려진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세상에 유입된 여성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공작부인이 만든 섬의 규율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우마만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을 바꾸려는 규율에 끊임없이 반항하고, 파다라이스 힐스에 의문을 제기한다. '나'의 존재를 지우려는 강압에 반기를 든다. 그렇게 우마는 영화 마지막까지 자신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우마를 대체할, 일종의 복제품인 '누군가' 역시 마지막에는 공작부인이 만들어 준 대로 살지 않고 파라다이스 힐스의 법칙에서 벗어난다. 처음에는 가족을 위해 나를 버리고 타인이 되고자 했지만, 복제품으로서의 삶을 살길 거부한다. 외적으로는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렸지만, 내면만큼은 자신을 지켜낸다.

이러한 점에서 '파라다이스 힐스'는 페미니즘적인 영화이자, 인간이 '나'로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 영화다. "너 자신을 바꾸진 않아도 돼"라고 말하는 아마르나(에이사 곤살레스)의 말처럼 말이다. 동시에 여성들로 이뤄진 등장인물이 보여주는 연대는 현실의 여성들에게도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다양한 색과 건축, 의상의 향연은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하다. 광고업계에서 일한 바 있는 감독의 경력이 영화에 묻어난다. 화려하고 아름답기에 섬이 가진 비밀이 더욱더 끔찍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문제는 영상이 이야기를 압도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주제 의식이 지나치게 화려한 영상에 묻히면서 잘 드러나지 않는 점, 내러티브가 단순하고 촘촘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3월 19일 개봉, 95분 상영, 12세 이상 관람가.
(사진=㈜올스타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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