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4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편지 내용을 전달한 뒤 편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윤창원기자
‘보수결집’을 주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가 자유공화당과 친박신당 등 미래통합당 안팎의 친박계에겐 거꾸로 용퇴 압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 4일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결집이라고 꼬집어 언급하면서 컷오프(공천배제)돼 탈당 및 무소속 출마를 계획했던 당내 친박 의원들과 바깥의 '친박 신당들'은 반발할 명분이 오히려 줄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박 전 대통령 최측근 유영하 변호사와 자유공화당 간 자중지란, 통합당 내부 개혁세력의 ‘도로 새누리당’ 우려를 담은 반발 등이 겹치면서 옥중서신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朴 메시지, 태극기 잠재웠지만…혁신 분위기엔 찬물
박 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보수단일 대오를 촉구하면서 이탈을 노렸던 당 바깥의 친박계 및 태극기세력은 급속히 힘이 빠지는 분위기다. 당초 이들이 2016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에 불복하며 세(勢)를 불린 점을 감안하면,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오면서 이같은 상황은 예고된 수순이라는 분석이다.
통합당 내 공천 심사에서 탈락한 원조친박 윤상현 의원을 비롯한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공천관리위원회 결정에 불복, 무소속 출마 강행 의지를 밝혔지만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로 인해 동력을 상실했다는 게 중론이다.
당 바깥의 자유공화당과 친박신당 등 태극기세력도 일단 박 전 대통령의 뜻을 따르겠다고 밝힌 상태다. 독자 행보를 고수할 명분을 상실하자, 이들은 통합당에 선거연대 및 후보 단일화 등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5일 태극기세력의 지분 요구엔 선을 긋는 동시에 선거연대는 향후 검토해보겠다고 애매한 답변을 내놨다. 박 전 대통령의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뭉치라며 통합당에 힘을 실어준 이상 주도권은 통합당으로 넘어왔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당내 친박계와 중진, TK(대구‧경북) 의원들에 대한 고강도 물갈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상승세를 탔던 혁신 분위기는 다소 주춤해졌다. 탄핵 사태 이후 ‘친박 색깔’을 빼지 못한 상황에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치른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은 참패를 당한 바 있다.
총선을 앞두고 공관위가 대대적인 물갈이로 혁신 의지를 보이자, 중도 표심이 정권 심판론에 동조하며 서서히 통합당 쪽으로 이동하는 조짐이 일었다. 이 와중에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오히려 박근혜 전 정권에 반감을 갖고 있는 중도층의 이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영하 vs 자유공화당 ‘친박팔이’ 논쟁…통합당 내부선 “친박 백의종군”박 전 대통령의 ‘통합’ 메시지가 나온 지 하루 만에 태극기세력은 분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전날 서한을 대독하기도 했던 유 변호사와 이날 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입당과 함께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했다. 유 변호사는 아울러 언론 인터뷰에서 자유공화당 등을 겨냥해 “자기 지분을 노리거나 ‘박근혜 팔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자유공화당 등 태극기세력은 즉각 반발했다. 유 변호사가 태극기세력을 ‘박근혜 팔이’를 내몰면서 정작 자신은 미래한국당 비례대표직을 받기 위해 ‘친박팔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공화당 김문수 공동대표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유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 목소리를 듣지 않고, 미래한국당의 창문을 두드리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며 “이런 사람을 유일한 소통 창구로 만들면 박 전 대통령이 잘못된 정보를 접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통합당 내부에서도 태극기세력과 연대 방식 등을 두고 잡음이 나오고 있다.
이날 통합당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당직자가 자유공화당이 미래한국당과 합당을 제안한 사실을 보고 하자, 새로운보수당 출신 최고위원들이 이에 강력 반발하는 등 소란이 일었다. 논란이 커지자 황 대표는 해당 논의를 회의 안건에서 빼기로 하고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합당에 합류한 한 청년정당도 ‘도로 새누리당’ 조짐에 우려를 표했다. 조성은 전 브랜드뉴파티 대표는 이날 입장문에서 “탄핵으로 비극적 결말을 맞았던 박근혜 정부와 지금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며 청사진이라며 제시하는 것이 통합당의 미래냐”며 “(통합당을) 다시 권력으로 선택했을 때 저 정당이 또다시 나쁜 일로 국민을 절망하게 하지 않을까 우려가 든다”고 밝혔다.
통합당 내부에선 당 안팎의 친박계 인사들이 백의종군(白衣從軍)으로 박 전 대통령의 ‘보수결집’ 뜻을 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불과 몇백표 차이로도 당락이 좌우되는 수도권 선거판을 고려하면, 친박계 인사들의 솔선수범이 ‘적폐 프레임’에 엮이지 않으면서 보수통합을 이뤄 총선 승리에 도달하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당내 수도권 중진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 메시지를 받은 이상 단순히 통합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고 인적혁신까지 해야 한다”며 “국민들은 지금 보수진영이 통합과 함께 혁신하는 걸 원한다”고 말했다.
TK 중진의원도 통화에서 “아직도 ‘박근혜 팔이’로 의원직 한 번 더 해먹으려고 하는 이들 때문에 당이 어려운 것”이라며 “엉뚱한 조건 달지 말고 백의종군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